20만 건 파일 빼돌렸다 모두 삭제 – 영업비밀 침해금지도, 손해배상도 X

“전 대표이사가 퇴사하면서 회사 자료관리 시스템에서 무려 20만 건의 파일을 다운로드했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영업비밀 침해금지청구도, 손해배상청구도 모두 기각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요? 파일을 반출한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삭제했다’는 피고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이 판결 – 영업비밀 소송의 구조적 한계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영업비밀 침해금지 파일 모두 삭제
영업비밀 침해금지 파일 모두 삭제

사실관계 요약

원고 주식회사 A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화학산업에 필요한 장비의 부품을 제작·판매하는 회사입니다. 피고 B는 2009. 12. 24. 원고에 입사하여 2020. 7. 31.부터 원고의 대표이사로 근무하다가 2021. 4. 9. 퇴사한 자입니다.

자료 반출 경위

피고는 퇴사 직전인 2021. 1.경부터 2021. 4. 8.까지 원고의 자료관리 시스템으로부터 약 20만 건의 파일을 다운로드받았습니다. 원고는 피고 퇴사 이후인 2021. 6.경 자료관리 시스템을 조사하여 이 사실을 인지하고, 2021. 7. 19. 경찰에 피고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업무상배임 혐의로 고소하였습니다. 2021. 9.경 피고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루어졌습니다.

피고의 주장

피고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 해당 파일들을 모두 폐기하였다고 진술하였고,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에서도 해당 파일들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피고는 퇴사 이후 동종 영업을 하는 경쟁사에 취업하거나 동종 영업을 영위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은 2024. 10. 29. 원고의 침해금지청구 및 손해배상청구를 모두 기각하였습니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24. 10. 29. 선고 2022가합102539 판결).

쟁점 정리

첫째, 피고가 현재 파일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경우에도 영업비밀 침해금지청구가 인정되는가?

영업비밀 보유자는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하거나 하려는 자에 대하여 그 행위에 의하여 영업상의 이익이 침해되거나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 법원에 그 행위의 금지 또는 예방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0조 제1항). 피고가 파일을 이미 삭제하였다면 ‘침해 우려’가 인정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둘째, 영업비밀 등을 반출하였으나 실제로 사용하지 않고 삭제한 경우에도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가?

회사 직원이 경쟁업체 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할 의사로 무단으로 자료를 반출하는 행위는 그 자료가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영업상 주요한 자산인 경우 업무상배임죄를 구성하고, 반출 시점에 손해가 발생합니다 (대법원 2008. 4. 24. 선고 2006도9089 판결 참조). 그러나 이후 파일을 모두 삭제한 경우 손해가 소멸하는지, 손익상계가 적용될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습니다.

영업비밀 침해금지 삭제했다면
영업비밀 침해금지 삭제했다면

판시 내용

가. 영업비밀 침해금지청구 — 기각

법원은 변론종결 시점을 기준으로 피고가 해당 파일들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여 침해금지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대한 금지청구는 그 성질상 금지청구권 행사 당시 영업비밀의 침해 또는 침해 우려가 존재하여야 합니다. 금지청구 사건에서 그 대상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사실심 변론 종결일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0조 제1항). (정상조, 『부정경쟁방지법 주해[제2판]』, 박영사(2024년), 612-613면)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가 이미 파일들을 삭제하여 현재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인정하였습니다.

① 피고가 검찰 수사 단계에서 위 파일들을 모두 폐기하였다고 진술한 점

②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에도 불구하고 해당 파일들이 발견되지 않은 점

③ 피고가 퇴사 이후 동종 영업을 하는 경쟁사에 취업하거나 동종 영업을 영위하는 등 해당 자료들을 사용하였다고 볼 정황을 찾지 못한 점

따라서 법원은 이 사건 변론종결 시점 기준으로 더 이상 피고가 해당 파일들을 사용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그 영업비밀 해당 여부에 관하여 살펴볼 필요 없이 원고의 금지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0조 제1항).

나. 손해배상청구 — 기각

법원은 손해배상청구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기각하였습니다.

① 반출 시점의 손해 발생 가능성 인정

법원은 반출된 영업비밀 등을 실제 사용하지 않더라도 영업비밀 등의 경제적 가치 손상이 생기므로, 피고가 자료를 사용한 적이 없더라도 이 사건 파일 중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자료를 반출하는 시점에서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였습니다. 영업비밀이 아니더라도 그 자료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공개되지 않았고 사용자가 상당한 시간, 노력 및 비용을 들여 제작한 영업상 주요한 자산인 경우에는 그 자료의 반출행위는 업무상배임죄를 구성합니다 (대법원 2008. 4. 24. 선고 2006도9089 판결 참조). (윤선희, 『영업비밀보호법[제3판]』, 법문사(2019년), 261-262면)

② 손해액 특정 불가

그러나 법원은 별지 목록 기재 각 파일을 제외하고는 이 사건 파일 중 어떤 파일이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특정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손해액수에 관한 증명이 있어야 하는데, 이 사건 파일의 반출에 따른 경제적 가치 손상의 정도에 관한 증거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 (이윤원, 『영업비밀보호법』, 박영사(2012년), 112-114면)

③ 파일 삭제로 인한 경제적 가치 회복 — 손익상계

법원은 가장 핵심적인 판단으로, 가사 이 사건 파일 반출 시점 기준으로는 일부 파일의 경제적 가치가 손상되었다고 하더라도, 이후 피고가 이 사건 파일을 모두 삭제하여 다른 업체가 이를 사용할 가능성 자체가 소멸된 이상, 그 파일의 경제적 가치는 반출 시점 이전으로 회복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이 실제 사용 증거는 없으나 경쟁업체 등에 영업비밀 등이 제공되어 사용이 가능한 상태에 있었던 사안과 구별된다고 명시하였습니다. 사후적으로 피해 회복이 이루어졌으므로 이를 손익상계로 반영하면, 적어도 이 사건 파일의 경제적 가치 측면에서는 현재의 재산상태와 이 사건 파일 반출이 없었더라면 존재하였을 재산상태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어 피고의 손해배상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영업비밀 침해금지_2022가합102539
영업비밀 침해금지_2022가합102539

핵심 포인트 — 반드시 알아야 할 4가지

① 침해금지청구는 변론종결 시점 기준으로 ‘침해 우려’가 존재하여야 합니다.

영업비밀 침해금지청구는 과거의 침해행위가 아니라 현재 및 장래의 침해 우려를 전제로 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0조 제1항). 피고가 파일을 이미 삭제하고 동종 업계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변론종결 시점에서 침해 우려가 인정되지 않아 금지청구가 기각될 수 있습니다. 영업비밀 침해금지청구 소송에서는 변론종결 시점까지 피고가 해당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상조, 『부정경쟁방지법 주해[제2판]』, 박영사(2024년), 612-613면)

② 반출 행위 자체로 손해가 발생하지만, 삭제로 인해 경제적 가치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 판결의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파일 삭제로 인한 경제적 가치 회복을 손익상계로 반영하여 손해배상을 부정한 점입니다. 이는 경쟁업체에 파일이 제공되어 사용 가능한 상태에 있었던 사안과 구별됩니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피고가 파일을 삭제하였다는 사실은 단순한 양형 참작 사유를 넘어 손해배상책임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윤선희, 『영업비밀보호법[제3판]』, 법문사(2019년), 261-262면)

③ 손해배상청구에서는 경제적 가치가 있는 파일의 특정과 손해액 증명이 필수입니다.

법원은 이 사건 파일 중 어떤 파일이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특정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에서는 ① 침해된 파일의 특정, ② 해당 파일의 경제적 가치, ③ 손해액의 증명이 모두 필요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 약 20만 건의 파일 전체를 영업비밀로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특정 부족으로 인해 청구 전체가 기각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윤원, 『영업비밀보호법』, 박영사(2012년), 108-109면)

④ 영업비밀 소송에서 신속한 증거 확보와 보전처분이 핵심입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가 피고의 자료 반출 사실을 인지한 것은 퇴사 후 약 2개월이 지난 시점이었고, 압수수색은 그로부터 다시 2개월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사이에 피고가 파일을 삭제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영업비밀 침해가 의심되는 경우에는 즉시 증거보전신청 및 가처분 신청을 통해 피고가 파일을 삭제하기 전에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0조 제2항; 민사집행법 제300조). (이윤원, 『영업비밀보호법』, 박영사(2012년), 112-114면)

기업 영업비밀 김정민 변호사
기업 영업비밀 김정민 변호사

마치며 — “삭제했으니 괜찮다”는 논리가 법원에서 통한 이유

이 판결은 영업비밀 소송에서 원고가 얼마나 신속하고 정밀하게 대응하여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20만 건의 파일을 반출한 행위는 분명히 위법하지만, 피고가 이를 삭제하고 동종 업계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법원은 현재 시점에서의 침해 우려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손해배상 측면에서도, 파일 삭제로 인해 경제적 가치가 회복되었다는 논리는 영업비밀 소송의 실무에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이 논리가 확산된다면, 영업비밀을 반출한 자가 소송 제기 후 파일을 삭제하는 것만으로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어 향후 상급심의 판단이 주목됩니다.

“영업비밀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입니다. 피고가 파일을 삭제하기 전에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20만 건의 반출도 법정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