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료는 어차피 협력회사에도 공유된 것 아닌가요?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 신고를 위해 사용하려 했을 뿐인데 왜 범죄가 됩니까?” 피고인들의 주장은 언뜻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실적자료 영업비밀 분쟁
그런데 법원은 협력회사에 공유된 자료라도 비밀유지의무가 부과된 경우에는 영업비밀의 비공지성이 유지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공정위 신고 목적이라는 주장도 배임의 고의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판결은 영업비밀의 세 가지 요건인 비공지성·비밀관리성·경제적 유용성이 실무에서 어떻게 판단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1. 사실관계 요약
피해자 D 주식회사는 TV 모니터를 생산하여 세계시장에 유통하는 회사입니다. 피고인 A는 피해자 회사의 TV 모니터 협력회사 생산지원팀 책임으로 근무하던 사람이고, 피고인 B는 피해자 회사의 협력사인 G 주식회사의 대표, 피고인 C는 G의 경리 차장이었습니다.
피고인 B, C는 피해자 회사와의 협력관계가 종료된 후 H 주식회사를 운영하면서, 피해자 회사에서 협력사 관리를 담당하던 피고인 A와 공모하였습니다. 피고인 A는 자신의 개인 이메일 계정에 미리 보관해 둔 ‘협력사 생산실적’ 파일을 다운로드하고, 업무용 노트북 화면을 카메라로 동영상 촬영한 후 캡처하거나 사진 촬영하는 방법으로 ‘중장기 전략보고’ 등 피해자 회사의 영업비밀 자료를 유출하였습니다.
이 사건 실적자료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협력회사별 생산수량, 매출금액, 발주비율, 생산 Capacity, 모델별 생산가공비 정보, 인원정보, 인당매출액, 사업장별 단가정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사내한(Internal Use Only)’ 등급의 문건이었습니다.
법원은 피고인 A에게 징역 1년(2년간 집행유예), 피고인 B에게 징역 8월(2년간 집행유예), 피고인 C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하였습니다.
2. 쟁점 정리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세 가지입니다.
가. 이 사건 자료가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
피고인들은 이 사건 자료가 G를 비롯한 협력회사에 이미 알려진 것이거나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므로 영업비밀 또는 영업상 주요자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의 영업비밀 요건인 비공지성·경제적 유용성·비밀관리성이 모두 충족되는지가 첫 번째 쟁점입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나. 업무상배임죄의 성립 여부 — 목적과 고의의 인정 여부
피고인들은 공정거래위원회 신고를 목적으로 하였으므로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피해자 회사에 손해를 입힐 목적’이나 ‘배임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자료 유출로 인하여 피고인들이 이익을 취득하거나 피해자 회사에 손해가 발생한 바도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
다. 자료 취득자인 피고인 B, C에 대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및 업무상배임 공동정범 성립 여부
피고인 B, C는 피해자 회사의 직원이 아닌 외부인으로서 자료 유출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이를 취득한 행위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및 업무상배임의 공동정범에 해당하는지가 세 번째 쟁점입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라목, 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

3. 판시 내용
가. 영업비밀 해당 여부 — 비공지성·비밀관리성·경제적 유용성 모두 인정
법원은 이 사건 각 자료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첫째, 비공지성 — 이 사건 각 자료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피해자 회사의 고유한 것으로서 제품 생산 및 판매 등의 사업운영 과정에서 작성된 자료입니다. 협력회사에 공유되었으나 협력회사는 비밀유지의무를 부담하고 임가공계약이 종료되면 해당 자료를 전부 폐기하여야 하므로, 피해자 회사와 협력회사 사이에만 내부적으로 공유된 자료일 뿐 동종업계에 자유롭게 유포된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상 비공지성이 상실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7도6772 판결, 대법원 2009. 3. 16. 선고 2008마1087 결정).
둘째, 비밀관리성 — 피해자 회사는 ① ‘전사 정보보안규칙’을 제정하고 임직원들로부터 ‘비밀유지서약서’ 및 ‘개인정보보호서약서’를 작성받고 정기적으로 보안교육을 실시한 점, ② 기업비밀을 ‘비밀(Confidential)’, ‘사내한(Internal Use Only)’, ‘일반정보’ 등급으로 분류하여 관리한 점, ③ 노트북 등의 정보자산을 외부로 반출하기 위해서는 정보보안 책임자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점, ④ 모든 PC에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외부로 발송되는 파일에 대하여 정기적으로 온라인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비밀관리성을 인정하였습니다 (대법원 2020. 1. 9. 선고 2019마6016 결정).
셋째, 경제적 유용성 — 이 사건 실적자료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협력회사별 생산수량, 매출금액, 발주비율, 생산 Capacity, 모델별 생산가공비 정보, 인원정보, 인당매출액, 사업장별 단가정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사내한’ 등급의 문건으로, 피해자 회사가 협력회사와 장기간 거래를 하면서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축적한 자료입니다. 피해자 회사의 제조 및 경영상 경험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것이고, 경쟁업체가 이를 활용하면 시장진입에 있어 시행착오를 줄여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나. 업무상배임죄 성립 — 공정위 신고 목적 주장 배척
법원은 이 사건 각 자료가 모두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하며, 피고인 A는 피해자 회사에 대한 업무상 임무에 위배하여 이 사건 각 자료를 누설하고, 피고인 B 등은 무단 유출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이를 취득함으로써 재산상 이익을 얻고 피해자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가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
피고인들의 공정위 신고 목적 주장에 대하여, 법원은 배임죄의 범의는 자기의 행위가 그 의무에 위배한다는 인식으로 족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려는 의사는 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법리에 따라 이를 배척하였습니다 (서울고등법원 1988. 6. 10. 선고 88노938 판결). 또한 배임죄는 위태범이므로 현실적인 손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에도 성립합니다 (서울고등법원 1988. 6. 10. 선고 88노938 판결).
다. 피고인 B, C에 대한 공동정범 성립
법원은 피고인 B, C가 피해자 회사의 직원이 아닌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A의 무단 유출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이를 취득한 행위에 대하여 업무상배임의 공동정범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의 공동정범을 인정하였습니다 (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라목).
4. 핵심 포인트
가. 협력회사에 공유된 자료도 비밀유지의무가 있으면 비공지성이 유지된다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협력회사에 공유된 자료라도 협력회사가 비밀유지의무를 부담하고 계약 종료 시 폐기의무가 있다면 비공지성이 상실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피고인들이 “이미 협력회사에 알려진 자료”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판결은 공유의 범위와 비밀유지의무의 존재가 비공지성 판단의 핵심임을 보여줍니다 (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7도6772 판결).
나. 비밀관리성 인정을 위한 실무적 요건 — 등급 분류·보안교육·모니터링의 중요성
이 판결은 비밀관리성 인정을 위해서는 ① 정보보안규칙 제정, ② 비밀유지서약서 징구, ③ 정기적 보안교육, ④ 등급별 분류 관리, ⑤ 반출 승인 절차, ⑥ 온라인 모니터링 등 다층적인 보안 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대법원 2020. 1. 9. 선고 2019마6016 결정). 기업 입장에서는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 이러한 보안 체계를 사전에 구축하고 그 실시 내역을 문서로 남겨두는 것이 분쟁 발생 시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다. 공정위 신고 목적이라도 배임의 고의는 부정되지 않는다
이 판결은 공정거래위원회 신고를 목적으로 자료를 유출하였다고 하더라도 배임의 고의가 부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 배임죄의 범의는 자기의 행위가 그 의무에 위배한다는 인식으로 족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려는 의사는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울고등법원 1988. 6. 10. 선고 88노938 판결). 공익적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영업비밀 자료를 무단으로 유출하는 행위는 업무상배임죄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라. 자료 취득자도 공동정범으로 처벌된다 — 외부인도 예외 없다
이 판결은 피해자 회사의 직원이 아닌 외부인이라도 영업비밀 유출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이를 취득한 경우 업무상배임의 공동정범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의 공동정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라목, 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 경쟁사 또는 거래 종료 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전 협력사가 내부 직원을 통해 영업비밀을 취득하는 행위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마. 실무적 시사점 — 영업비밀 보호 및 침해 대응 체크리스트
| 점검 사항 | 이 사건에서의 시사점 |
|---|---|
| 협력사 공유 자료의 비공지성 | 비밀유지의무 + 폐기의무 → 비공지성 유지 |
| 비밀관리성 입증 | 등급 분류·보안교육·모니터링 등 다층적 보안 체계 필수 |
| 공정위 신고 목적 주장 | 배임의 고의 부정 불인정 |
| 현실적 손해 발생 여부 | 위태범이므로 손해 발생 위험만으로 성립 |
| 외부인의 취득 행위 | 유출 유도·취득 → 공동정범 성립 |
| 협력계약서 비밀유지 조항 | 계약 종료 후 폐기의무 명시 → 비공지성 보호 |

마치며 — 협력사에 공유했다고 해서 영업비밀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이 판결은 영업비밀 보호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협력회사에 공유된 자료라도 비밀유지의무와 폐기의무가 부과되어 있다면 영업비밀로서의 비공지성이 유지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협력사와의 계약서에 비밀유지 조항과 계약 종료 후 자료 폐기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내부적으로는 등급별 분류 관리·보안교육·모니터링 등 다층적인 보안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반대로 전 협력사나 경쟁사 입장에서는 내부 직원을 통해 자료를 취득하는 행위가 공동정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공정위 신고라는 명분도 배임의 고의를 부정하는 방패가 되지 못한다는 이 판결의 교훈은, 영업비밀 분쟁에서 목적의 정당성만으로는 형사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