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내가 오래 일하면서 만든 도면인데, 가져가도 되지 않나요?” 20년 넘게 거래해온 협력업체까지 끌어들이고, 회사 홈페이지와 이메일을 폐쇄하고, 보석으로 풀려난 뒤에도 전 직장 거래처에 영업 메일을 보낸 영업팀장이 있었습니다. 설계도 영업비밀 분쟁
그는 퇴사하기도 전에 경쟁사를 차리고, 설계도면 1,336개를 외장하드에 통째로 복사해 나갔습니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 3년 실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집행유예도 없었습니다.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지, 이 판결을 통해 정확히 살펴보겠습니다.

1. 사실관계 요약
피해회사는 업소용 튀김기를 제조·판매하는 회사입니다. 이 사건에는 총 다섯 명의 피고인이 등장합니다.
피고인 A는 피해회사의 영업팀장이었던 자로, 퇴사하기도 전에 피해회사와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는 G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피고인 A는 피해회사 임직원 몰래 설계담당자 I의 업무용 PC에 저장되어 있던 업소용 튀김기 설계도면 전부(1,336개 파일)를 자신의 외장하드에 복사하여 무단 반출한 다음 G회사의 PC에 복사하여 계속 보유하였습니다. 나아가 자신이 관리하던 피해회사의 홈페이지와 이메일을 퇴사 후 폐쇄하여 피해회사의 업무를 방해하였습니다.
피고인 B는 피해회사의 생산부 대리로, A와 공모하여 태국 업체 K로부터 피해회사의 튀김기를 납품해달라는 요청을 받자 피해회사의 자재를 빼돌려 A가 만든 튀김기를 대신 납품하고 대금을 수령하였습니다.
피고인 C는 20년 이상 피해회사에 철판구조물을 납품해온 협력업체 E를 운영하는 자이고, 피고인 D는 E 회사의 현장 관리 담당자입니다. C와 D는 A, B의 요청을 받아 피해회사의 도면을 이용해 동일한 튀김기 구조물을 제작하였습니다.
피고인 E 합자회사는 C가 운영하는 협력업체로, 법인으로서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하는 행위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판결 결과는 피고인 A 징역 3년(실형), 피고인 B 징역 1년 6개월(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240시간), 피고인 C 징역 1년(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180시간), 피고인 D 징역 6개월(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 피고인 E 합자회사 벌금 1,000만 원(가납명령)이었습니다.
2. 쟁점 정리
가. 업소용 튀김기 설계도면의 영업비밀 해당 여부 — 비밀관리성
피고인 A는 두 가지 이유로 설계도면이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첫째, 설계도면 파일에는 독립된 경제적 가치가 있는 기술상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둘째, 설계도면 파일은 직원 I의 노트북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비밀번호 설정 등 보안조치가 되어 있지 않아 누구든지 열람·복사할 수 있었으므로 합리적인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 정보라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쟁점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의 영업비밀 요건 중 비밀관리성 충족 여부가 핵심이었습니다.
나. 양형의 적정성 — 실형 선고가 불가피한지 여부
피고인 A에 대하여 집행유예 없이 징역 3년 실형을 선고하는 것이 적정한지, 그 근거가 무엇인지가 두 번째 쟁점입니다.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실형이 선고된 구체적인 이유가 중요합니다.

3. 판시 내용
가. 비밀관리성 인정 — 설계도면은 영업비밀이다
법원은 다음 다섯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피해회사는 이 사건 자료를 영업비밀로 관리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첫째, 피고인 A는 피해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비밀유지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습니다. 입사 시 비밀유지서약서를 제출한 이상, 피고인은 해당 정보가 비밀로 관리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피해회사가 ‘개발도면관리규정’을 두고 있었습니다. 내부 규정을 통해 도면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 비밀관리성 인정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셋째, 이 사건 자료는 모두 피해회사의 개발부 부장인 I가 관리하는 PC에 저장되어 있었고, I는 비밀번호를 설정하여 보안을 유지하였으며 타인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피고인 A는 I의 PC에 비밀번호가 없었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넷째, 피해회사는 외부에 기술 개발을 의뢰할 경우 비밀유지협약을 체결하고, 판매처와 공급계약 시에는 영업상 비밀유지의무를 명기하였습니다.
다섯째, 피해회사는 피고인 E 회사에 대해서만 유일하게 설계도면을 제공하였는데, 두 회사의 높은 신뢰성에 기반한 거래관계의 특수성에 비추어 E 역시 이 사건 자료가 비밀로서 보호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피고인 C도 수사기관에서 이와 같은 취지로 진술하였습니다.
나. 피고인 A에 대한 실형 선고 — 중형이 불가피한 이유
법원은 피고인 A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로 중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① 직접적 손해 발생: 피해회사에 수주 사실을 알리지 않고 직접 물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피해회사의 거래기회를 빼앗거나 피해회사의 자재를 횡령하는 등으로 피해회사에 직접적인 손해를 끼쳤습니다.
② 영업비밀 이용 수익 창출: 피해회사의 영업비밀을 무단 반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이용해 피해회사와 동일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방식으로 상당한 수익을 얻는 반면, 피해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입혔습니다.
③ 업무방해 및 협력업체 가담: 피해회사의 홈페이지와 이메일을 폐쇄하여 업무를 방해하고, 피해회사의 핵심 거래업체인 E 회사 및 C까지 범행에 가담시켰습니다.
④ 증거인멸 시도: 압수수색 과정에서 피고인 노트북의 자료를 삭제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하였습니다.
⑤ 보석 후에도 침해 행위 지속: 민사재판 과정에서 영업비밀금지 가처분결정을 받았음에도, 이 사건 재판 진행 과정에서 보석으로 석방된 것을 기화로 다시 피해회사의 종전 거래처에 피해회사와 동일한 제품을 판매하겠다는 메일을 보내는 등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지속하였습니다.
다. 피고인 B에 대한 집행유예 — 자진 신고와 수사 협조가 참작되다
법원은 피고인 B에 대하여, A의 범행에 가담하여 피해회사에 상당한 피해를 발생시킨 점은 불리한 정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범행 가담 중에 스스로 범행을 중단하고 피해회사에 범행 사실을 알렸으며, 수사 과정에서도 수사에 적극 협조하였음을 참작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하였습니다.

4. 핵심 포인트
가. 비밀관리성은 완벽한 보안이 아니라 ‘합리적 노력’으로 충분하다
이 판결은 영업비밀의 비밀관리성 요건이 완벽한 보안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노력에 의한 비밀 관리로 충분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비밀유지서약서, 내부 도면관리규정, 담당자 PC의 비밀번호 설정, 외부 거래 시 비밀유지협약 체결 등의 조치가 종합적으로 인정되어 비밀관리성이 충족되었습니다. 단 하나의 완벽한 보안 조치가 아니라, 여러 조치들의 종합적 운용이 중요합니다.
나. 협력업체에 도면을 제공한 경우에도 비밀관리성이 유지될 수 있다
이 판결은 외부 협력업체에 설계도면을 제공하였더라도 비밀관리성이 상실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법원은 두 회사 간의 높은 신뢰성에 기반한 거래관계의 특수성, 그리고 협력업체 대표 C 스스로 비밀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진술을 근거로 비밀관리성을 인정하였습니다. 협력업체에 도면을 제공할 때는 반드시 비밀유지협약을 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
이 판결은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실형이 선고되는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줍니다. ① 단순 반출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용하여 수익을 창출한 경우, ② 증거인멸을 시도한 경우, ③ 가처분결정에도 불구하고 침해 행위를 지속한 경우, ④ 제3자를 범행에 가담시킨 경우가 모두 해당되면 실형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라. 자진 신고와 수사 협조는 강력한 양형 감경 요소다
피고인 B는 A와 함께 범행에 가담하였음에도 스스로 범행을 중단하고 피해회사에 신고하였으며 수사에 적극 협조한 결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공범 관계에서 자진 신고와 수사 협조는 실형과 집행유예를 가르는 결정적인 양형 감경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마. 이 사건 피고인별 죄명 및 양형 요약
| 피고인 | 주요 죄명 | 선고 형량 | 핵심 양형 사유 |
|---|---|---|---|
| A | 영업비밀누설, 업무상배임, 업무상횡령, 업무방해 | 징역 3년(실형) | 계획적 범행, 증거인멸, 침해 지속 |
| B | 영업비밀누설, 업무상배임, 업무상횡령 | 징역 1년 6개월(집행유예 3년) | 자진 신고, 수사 협조 |
| C | 영업비밀누설, 업무상배임, 업무상횡령 | 징역 1년(집행유예 3년) | 협력업체 대표로 가담 |
| D | 영업비밀누설 | 징역 6개월(집행유예 2년) | 현장 관리자로 가담 |
| E 합자회사 | 부정경쟁방지법위반 | 벌금 1,000만 원 | 법인 책임 |
마치며 — 설계도면 1,336개를 빼돌린 대가는 징역 3년이었습니다
이 판결은 영업비밀 침해가 단순한 민사 분쟁이 아니라 실형이 선고되는 중대한 형사범죄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특히 영업비밀을 반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실제로 이용하여 경쟁 사업을 영위하고, 증거를 인멸하며, 법원의 가처분결정에도 불구하고 침해 행위를 지속한다면 집행유예 없는 실형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밀유지서약서, 도면관리규정, 접근 권한 제한, 협력업체와의 비밀유지협약 등 사전적 비밀관리 체계를 갖추는 것이 분쟁 예방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퇴직 예정인 임직원이라면, 회사의 핵심 자산을 무단으로 반출하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 판결이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