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인터넷에 다 있는 자료인데, 내가 정리한 것도 있는데, 가져가면 안 되나요?” 퇴사한 강사가 회사 강의교재 파일을 들고 나가면서 했을 법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법원은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공개된 자료를 모아 만든 교재 파일이 어떻게 업무상배임죄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이 판결은 ‘영업상 주요한 자산’의 범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1. 사실관계 요약
피고인 A는 응급처치·심폐소생술 및 안전보건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피해 회사에 강사로 입사하여 일반 학교의 학생 및 교직원 등을 상대로 응급처치 및 심폐소생술 교육 업무를 담당하다가 퇴직한 사람입니다.
피고인은 재직 중 피해 회사 사무실에서 응급처치 및 심폐소생술 강의교재를 만들기 위해 자신과 다른 강사들이 각자 맡은 분야에 대하여 작성한 컴퓨터 파일 4개를 압축한 ‘교재원본내용.zip’ 파일을 자신의 개인용 노트북에 저장하여 보관하다가 그 노트북을 집으로 가져가 위 파일 4개를 무단으로 반출하였습니다. 피고인은 퇴사 후에도 위 파일을 계속 보유하였습니다.
나아가 피고인은 피해 회사를 퇴사하여 더 이상 사내 전산시스템에 접속할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 회사의 강의 계약 상황 등을 확인하기 위하여 개발자 테스트용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는 방법으로 피해 회사의 강의통합관리시스템에 총 10회에 걸쳐 무단으로 접속하였습니다.
피고인과 변호인은 ① 이 사건 파일은 일반에 공개된 학술자료나 관련 기관 제공 자료를 선별·취합한 것에 불과하여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하지 않고, ② 피고인이 이를 이용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피해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가한 바 없으며, ③ 피해 회사의 양해에 따라 파일을 반출·보관한 것으로 배임의 고의도 없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2. 쟁점 정리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가. 이 사건 파일이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하는지 여부
업무상배임죄로 의율하기 위해서는 무단 반출된 자료가 반드시 영업비밀에 해당할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적어도 ‘영업상 주요한 자산’ 에 해당하여야 합니다 (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 일반에 공개된 자료를 선별·취합하여 만든 강의교재 파일이 이 요건을 충족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나. 배임의 고의 여부
피고인이 파일을 반출할 당시 피해 회사의 양해가 있었다거나, 퇴사 후 파일을 보유한 것에 대하여 배임의 고의가 없었다는 주장이 인정될 수 있는지가 문제되었습니다 (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

3. 판시 내용
가. 영업상 주요한 자산 — 인정
법원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이 사건 파일이 피해 회사의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① 일반에 공개·유통되지 않은 점
피고인이 이 사건 파일을 반출·보관할 당시 이 사건 파일은 일반인에게 공개·유통되지 않았습니다. 파일의 기초가 된 개별 자료들이 공개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 자료들을 선별·편집하여 완성한 파일 자체가 공개되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②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된 편집물인 점
이 사건 파일은 피해 회사가 수년간의 영업 경험을 바탕으로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각종 응급처치에 관한 여러 자료와 정보들을 수집·선별하여 구성한 것으로, 그 자료의 내용과 양, 편집 형태와 방식 등에 비추어 파일 작성의 기초가 되는 자료의 수집·선별 및 편집에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또한 피해 회사에서 진행하는 각종 강의에 직접 활용됨으로써 교육 서비스의 질적·양적 확충에 기여할 여지가 충분하였습니다.
③ 핵심 가치는 편집적 요소에 있는 점
설령 이 사건 파일에 담긴 내용이 일반에 공개된 학술자료나 관련 기관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토대로 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피해 회사는 수년간의 영업 경험에 따른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반에 공개된 방대한 자료와 정보들 중에서 특정 소재들을 배열·편집하여 강의 활용에 적합한 형태로 구성하였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 파일의 핵심적인 가치는 바로 이와 같은 자료의 선별과 취합, 배열과 구성 등의 편집적 요소에 있다고 명확히 판시하였습니다.
④ 경쟁업자에 대한 경제상 이익으로 작용하는 점
피해 회사와 동종 업종에 종사하는 피고인으로서는 이 사건 파일을 영업에 이용할 경우, 영업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인 강의 자료 준비에 소요되는 비용과 노력을 대폭 감축할 수 있고, 이는 경쟁업자에 대한 경제상의 이익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나. 배임의 고의 — 인정
법원은 설령 피고인이 이 사건 파일을 적법하게 반출하였다거나 그 반출행위에 대해 배임의 고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퇴사 후 이 사건 파일을 피해 회사에 반환하거나 폐기할 의무를 위반한 행위는 배임행위에 해당하고, 이에 관하여 피고인에게 미필적으로나마 배임의 고의가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다. 저작권법 위반의 점 — 무죄
한편 저작권법 위반의 점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이는 업무상배임죄의 성립과 저작권법 위반의 성립은 별개의 요건을 충족하여야 하기 때문으로, 이 사건 파일이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곧바로 저작권법상 보호되는 저작물에 해당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4. 핵심 포인트
가. ‘영업상 주요한 자산’은 영업비밀보다 넓은 개념이다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업무상배임죄에서 보호되는 ‘영업상 주요한 자산’은 영업비밀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비공지성·경제적 유용성·비밀관리성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지만, 업무상배임죄에서는 그보다 완화된 요건인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하면 충분합니다. 따라서 영업비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자료라도 업무상배임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나. 공개된 자료를 모아 만든 편집물도 보호받는다
이 판결은 개별 자료의 공개 여부와 편집물 자체의 보호 여부는 별개라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인터넷에서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자료들이라도, 그것을 수년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선별·취합·배열·구성한 결과물은 그 편집적 요소 자체에 독자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강의교재, 영업 매뉴얼, 고객 응대 가이드라인 등 업무 현장에서 흔히 사용되는 편집물들이 모두 이 범주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다. 퇴사 후 반환·폐기 의무 위반도 배임행위다
이 판결은 반출 당시의 적법성과 무관하게, 퇴사 후 자료를 반환하거나 폐기하지 않은 행위 자체가 독립적인 배임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재직 중 업무상 필요에 의해 자료를 보유하고 있었더라도, 퇴사 후에는 반드시 반환하거나 폐기하여야 합니다. 퇴사 시 자료 반환·삭제 의무는 단순한 사내 규정의 문제가 아니라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법적 의무입니다.
라. 무단 시스템 접속은 정보통신망법 위반이다
피고인은 퇴사 후 개발자 테스트용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이용하여 피해 회사의 강의통합관리시스템에 10회 무단 접속하였습니다. 이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합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8조 제1항). 퇴사 후에는 회사 시스템에 대한 접근 권한이 소멸하므로, 이전에 알고 있던 계정 정보를 이용한 접속도 무단 접속에 해당합니다.
마. 실무적 시사점 — 퇴직자 자료 관리 체크리스트
| 점검 사항 | 이 사건에서의 시사점 |
|---|---|
| 편집물의 영업상 자산 해당 여부 | 공개 자료 기반이라도 편집적 요소 있으면 인정 |
| 반출 당시 적법성 | 반출이 적법해도 퇴사 후 미반환은 배임 |
| 퇴사 후 시스템 접속 | 기존 계정 이용도 정보통신망법 위반 |
| 영업비밀 vs. 영업상 주요 자산 | 영업비밀 불인정이라도 배임죄 성립 가능 |
| 저작권법 위반 | 영업상 자산 인정과 별개로 판단 |

마치며 — “공개된 자료인데 괜찮겠지”는 가장 위험한 착각입니다
이 판결은 퇴직자의 자료 반출 문제를 다루는 형사 실무에서 매우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개별 자료의 공개 여부가 아니라, 그 자료를 선별·취합·배열·구성하는 데 투입된 노력과 시간, 그리고 그 결과물이 경쟁업자에게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익이 ‘영업상 주요한 자산’ 해당 여부의 핵심 기준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퇴직자 관리 시 자료 반환·삭제 확인 절차를 철저히 갖추어야 하고, 퇴직 예정자 입장에서는 업무 중 접한 회사 자료를 퇴사 후에도 보유하는 것이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