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벽화 저작권 분쟁-내 디지털 그림과 유사하다면?

“내 그림이 카페 벽에 그대로 그려져 있었다” — 현대미술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무단으로 대형 카페 벽화로 복제된 사실을 발견했을 때, 그 충격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단순한 ‘참고’와 ‘침해’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5년 10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렸습니다. 지금부터 이 판결을 하나씩 풀어드리겠습니다.

카페 벽화 저작권 분쟁-내 디지털 그림과 유사하다
카페 벽화 저작권 분쟁-내 디지털 그림과 유사하다

1. 사실관계 요약

가. 등장인물

  • 원고(작가 A): 미국 유학 후 퍼포먼스·회화·사진을 아우르는 현대미술작가로, 2019년 ‘대한민국에 마지막 살아남은 호랑이’라는 콘셉트로 디지털 회화 작품(울트라크롬 HDR 프린트, 150×150cm)을 제작하였습니다. 파란색·분홍색·노란색·보라색·초록색 등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색채 조합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호랑이 얼굴을 표현하고, 나비 네 마리를 배치한 것이 특징입니다.
  • 피고 영농조합법인 B(피고 법인): 안동시에서 ‘G’라는 대형 카페를 운영하는 법인입니다.
  • 피고 C: ‘H’라는 상호로 벽화 제작업을 영위하는 사람입니다.

나. 사건의 경위

2022년 7월, 피고 법인 대표의 지인이 원고에게 이메일을 보내 “푸른 호랑이를 카페 콘셉트에 맞게 그려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구했습니다. 원고는 “상업시설이라면 저작권료를 받고 진행하길 희망한다”고 명확히 거절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피고 법인은 2022년 9월, 피고 C에게 벽화 제작을 의뢰하였고, 피고 C는 원고의 작품 속 호랑이를 그대로 모사한 뒤 나비 대신 까치 네 마리를 삽입하고 민화풍 요소를 추가하여 대형 벽화를 완성하였습니다. 피고 법인은 이 벽화를 카페 계단 벽면에 전시하며 영업에 활용하였고, 김치 제품 홍보에도 사용하였습니다.

원고는 2022년 10월 내용증명을 발송하여 즉각적인 전시 중단을 요구하였으나, 피고들은 이를 무시하고 약 2년 6개월간 벽화를 유지하다가 관련 형사판결(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이후에야 벽화를 수정하였습니다.

2. 쟁점 정리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크게 네 가지였습니다.

쟁점내용
① 저작물성원고의 작품이 저작권법상 보호받는 저작물인가?
② 실질적 유사성이 사건 벽화가 원고 작품과 실질적으로 유사한가?
③ 저작인격권 침해벽화의 상업적 이용이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였는가?
④ 손해배상액구체적인 손해액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

3. 판시 내용

가. 저작물성 인정

법원은 원고의 작품이 저작권법상 보호받는 저작물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저작권법상 창작성은 완전한 독창성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단순한 모방이 아닌 저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표현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원고의 작품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색채 조합, 독특한 배색 패턴, 나비의 배치 등을 통해 다른 작품과 구별되는 창작적 개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보았습니다.

나. 실질적 유사성 및 의거성 인정

법원은 두 작품을 면밀히 대비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실질적 유사성을 인정하였습니다.

  • 정면을 응시하는 호랑이 얼굴의 구도, 눈·코·입·귀의 위치와 형태, 줄무늬 형상이 거의 일치
  • 파란색·분홍색·노란색·보라색·초록색의 동일한 색채 조합과 배색 패턴 반복 사용
  • 콧등·입 부분의 보라색·분홍색 조합, 볼과 귀 주변의 푸른색 음영 등 세부 표현이 거의 일치하거나 명도·채도만 일부 조정한 수준

까치 삽입, 민화풍 요소 추가, 페인트 사용 등의 차이점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사소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피고 C가 수사기관에서 “원고가 호랑이 작품으로 유명해진 것을 알고 있었고, 그 그림을 보았다”고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의거관계도 인정하였습니다.

다. 저작인격권 침해 불인정

원고는 벽화를 카페 및 김치 제품 홍보에 사용한 행위가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방법으로 저작물을 이용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아 이 부분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카페 벽화 저작권 분쟁-손해배상
카페 벽화 저작권 분쟁-손해배상

라. 손해배상액 산정 — 저작권법 제126조 적용

원고는 저작권법 제125조 제2항에 따라 8,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으나, 법원은 원고가 이 작품에 관하여 이용계약을 맺고 이용료를 받은 사례가 없고, 청구 금액이 업계에서 일반화된 이용료라고 볼 증거도 없다는 이유로 제125조에 따른 손해액 산정이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법원은 저작권법 제126조(손해액의 인정)를 적용하여 다음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손해액을 5,000만 원으로 인정하였습니다.

  • 피고 C가 벽화 제작 대가로 2,600만 원을 수령하였고, 이마저도 저렴하게 제작해준 것이라고 진술한 점
  • 이 사건 작품 원화가 2020년 약 1,671만 원에 낙찰되었고, 현재 호가가 5,000만 원에 달하는 점
  • 원고가 유사한 창작 표현 방법의 작품에 대해 Q호텔 전시 1억 원, 김천시 납품 6,500만 원, R 신제품 홍보 3,000만 원 등의 계약을 체결한 점
  • 벽화가 대형 카페 계단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의 대형 작품이었고, 내용증명 수령 후에도 약 2년 6개월간 침해 상태를 유지한 점

4. 핵심 포인트

가. “까치를 추가했으니 새로운 저작물”이라는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

피고들은 까치 삽입, 민화풍 요소 추가 등으로 새로운 창작성이 부가된 독자적 저작물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러한 수정이 사회통념상 새로운 저작물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수정·증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습니다. 원저작물의 창작적 핵심 — 독특한 색채 조합과 호랑이 얼굴의 표현 방식 — 이 그대로 유지된 이상, 부분적인 추가·변형만으로는 저작권 침해를 피할 수 없습니다.

나. 내용증명 수령 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고의·과실이 인정된다

피고 법인은 “이 사건 벽화가 저작권을 침해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항변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내용증명을 수령한 이후에는 적어도 저작권 침해 가능성을 알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내용증명에 작품 사진이 첨부되지 않았다거나, 피고 C로부터 “침해가 아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는 사정도 고의·과실 인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저작권 침해 의심 통보를 받은 이상, 스스로 진위를 확인하고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다. 이용료 산정 사례가 없어도 법원이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다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피해자가 해당 저작물에 관한 이용계약 사례를 입증하지 못하면 손해액 산정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법원은 제125조에 따른 손해액 산정이 어렵다고 보았지만, 저작권법 제126조의 재량적 손해액 인정 규정을 활용하여 작품의 시장 가치, 침해 기간, 침해 규모, 유사 작품의 이용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5,000만 원을 인정하였습니다. 이용료 사례가 없다고 해서 손해배상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실무적으로 확인해 주는 판결입니다.

그림 저작권 변호사 김정민
그림 저작권 변호사 김정민

마치며

이 판결은 단순히 “벽화 하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허락을 구했다가 거절당한 뒤 몰래 제작한 벽화, 내용증명을 받고도 2년 6개월간 방치한 태도, 형사 유죄 판결 이후에야 이루어진 수정 — 이 모든 사정이 법원의 판단에 고스란히 반영되었습니다.

창작자의 권리는 등록 여부나 유명세와 무관하게 작품이 완성된 순간부터 보호됩니다. 반대로, 타인의 창작물을 활용하려는 사업자라면 반드시 사전에 저작권자의 명시적 동의와 적정한 이용료 지급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이 판결은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조금 바꿨으니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얼마나 큰 법적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는지, 이 사건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