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직원들이 불법 복제 프로그램을 쓰고 있었습니다. 대표이사인 저도 처벌받나요?”
이 질문, 생각보다 많은 기업 대표들이 가슴 졸이며 묻는 질문입니다. 직원이 불법 프로그램 설치한 사건
서울동부지방법원의 최신 판결이 그 답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사실관계 요약
피고인 A는 전자·전기부품 설계 및 제조업 등을 영위하는 피고인 주식회사 B의 대표이사입니다.
검사는 피고인 A가 2020. 9. 29.경부터 2021. 11. 10.경까지 회사 서울 지사 사무실에 있는 8대의 컴퓨터에 피해자 D의 저작물인 ‘E’ 프로그램과 피해자 주식회사 F의 저작물인 ‘G’, ‘H’, ‘I’ 프로그램을 피해자들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복제·사용하여 저작재산권을 침해하였다고 기소하였습니다 (저작권법 제136조 제1항 제1호).
피고인 회사에 대해서는 대표이사인 A가 회사 업무에 관하여 위와 같은 위반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양벌규정에 따라 함께 기소되었습니다 (저작권법 제141조).
제1심(서울동부지방법원 2023. 11. 1. 선고 2022고정550 판결)은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고, 검사가 사실오인을 이유로 항소하였으나 항소심(서울동부지방법원 2024. 12. 12. 선고 2023노1591 판결) 역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였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
쟁점 정리
본 사건의 핵심 쟁점은 하나입니다.
피고인 A가 직원들의 불법 복제 프로그램 설치를 ‘묵인’하거나 ‘설치 과정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저작재산권 침해에 가담하였는가?
검사는 피고인 A가 직원들이 불법 복제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을 묵인하고 그 설치 과정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저작권법위반 범행을 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원심과 항소심 모두 피고인 A가 저작재산권을 직접 침해하였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저작재산권 침해죄는 저작재산권, 그 밖에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되는 재산적 권리를 복제, 공연, 공중송신, 전시, 배포, 대여, 2차적저작물 작성의 방법으로 침해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으로 (저작권법 제136조 제1항 제1호), 단순한 묵인이나 방조만으로는 직접 침해의 정범이 되기 어렵다는 점이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판시 내용
가. 원심의 판단 — 직접 침해 불인정
원심은 피고인 A가 피해자들의 저작재산권을 직접 침해하였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저작권법위반죄의 공동정범이 성립하려면 공동가공의 의사와 공동의사에 의한 기능적 행위지배를 통한 범죄의 실행사실이 필요합니다 (대전지방법원 2015. 2. 11. 선고 2013노525 판결). 단순히 직원들의 불법 프로그램 설치를 알고 있었거나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공동정범의 주관적 요건인 공동가공의 의사가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또한 피고인 회사에 대한 공소사실은 대표이사인 A의 저작재산권 침해를 전제로 한 것인데, A에 대한 공소사실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이를 전제로 한 피고인 회사에 대한 공소사실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저작권법 제141조).
나. 항소심의 판단 — 원심 정당, 항소 기각
항소심은 원심의 판단을 기록에 비추어 면밀히 살펴본 결과,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수긍하였습니다.
검사는 피고인 A가 직원들의 불법 복제 프로그램 설치를 묵인하고 설치 과정에 관여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항소심은 이러한 주장이 사실오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였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
결론적으로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한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25조).
다. 저작재산권 침해죄의 죄수 관계
참고로, 수개의 저작물에 대한 저작재산권 침해행위는 저작권자가 같더라도 저작물별로 침해되는 법익이 다르므로 각각의 저작물에 대한 침해행위는 원칙적으로 각 별개의 죄를 구성합니다. 다만 단일하고도 계속된 범의 아래 동일한 저작물에 대한 침해행위가 일정기간 반복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포괄하여 하나의 범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12. 5. 10. 선고 2011도12131 판결 저작권법위반방조·저작권법위반).
핵심 포인트 — 반드시 알아야 할 3가지
① ‘묵인’만으로는 저작권법위반의 직접 정범이 되지 않습니다.
대표이사가 직원들의 불법 프로그램 사용을 알고 있었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저작재산권 침해의 직접 정범으로 처벌받지 않습니다. 직접 침해가 인정되려면 복제·배포 등 침해행위를 직접 실행하거나 공동가공의 의사에 기한 기능적 행위지배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저작권법 제136조 제1항 제1호).
② 법인의 양벌규정은 대표자의 위반행위를 전제로 합니다.
저작권법 제141조의 양벌규정에 따라 법인이 처벌받으려면 대표자 또는 종업원의 위반행위가 먼저 인정되어야 합니다. 대표자의 위반행위가 인정되지 않으면 법인에 대한 처벌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저작권법 제141조). 다만, 종업원의 위반행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법인이 그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처벌받을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③ 그러나 민사상 책임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형사상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다고 하여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작권자는 별도로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민사소송에서는 형사소송보다 낮은 증명 기준이 적용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형사 무죄와 별개로 정품 소프트웨어 사용 정책을 철저히 수립·관리하는 것이 민사 분쟁 예방의 핵심입니다.

마치며 – 대표이사라는 이유만으로 처벌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판결은 형사책임의 개인성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한 사례입니다. 직원이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대표이사가 자동으로 저작권법위반의 정범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판결을 “직원들이 불법 프로그램을 써도 대표는 괜찮다”는 의미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검사가 공동정범이나 방조범으로 공소사실을 구성하거나, 저작권자가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은 형사·민사 양면에서 기업에 심각한 법적 리스크를 초래합니다. 정품 소프트웨어 사용 정책 수립과 정기적인 내부 감사, 이것이 이 판결이 기업에게 주는 진짜 교훈입니다.
(서울동부지방법원 2024. 12. 12. 선고 2023노1591 판결, 저작권법 제136조 제1항 제1호, 제141조, 형사소송법 제325조, 제364조 제4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