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정보보안 관리규정이 있고, 보안등급 분류 기준도 있고, 퇴사 시 영업비밀 보호서약서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퇴사한 이사가 자료를 빼돌려 경쟁사를 차렸는데 영업비밀 침해가 아니라고요?” 법원의 답은 “규정은 있지만 실제로 그 규정대로 관리하지 않았다”였습니다. 정보보안 관리규정의 존재 자체가 비밀관리성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규정대로 실제로 분류하고, 표시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사실관계 요약
원고 주식회사 A는 온라인 취업 정보 제공업, 교육 컨설팅 사업 등을 영위하는 법인입니다. 피고 C는 원고에서 영업활동과 프로그램 기획 등을 담당하는 이사로 재직하다가 퇴사한 후 피고 회사 B에서 이사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고, 피고 D는 피고 C의 배우자로 원고의 취업컨설팅 관련 외부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하였고 피고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피고 C는 원고 재직 중 대학별 취업캠프 사업 관련 사업제안서, 견적서, 결과보고서 등(이하 ‘이 사건 반출자료’)을 무단으로 반출하였고, F대학교 측으로부터 취업캠프 사업을 위한 사업제안서와 견적서 제출을 요청받았음에도 이를 원고에게 알리지 않고 피고 회사로 하여금 위 사업을 진행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퇴사 후 이 사건 반출자료를 반환하거나 폐기하지 않고 피고 D와 함께 피고 회사를 설립·운영하며 이를 이용하여 원고의 거래처를 빼앗아 갔습니다.
원고는 피고들을 상대로 ① 업무상 배임의 공동불법행위(주위적), ② 영업비밀 침해행위(제1예비적), ③ 성과 등 도용행위(제2예비적)를 주장하며 50,000,000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4. 7. 18. 영업비밀 침해는 부정하였으나 업무상 배임의 불법행위를 인정하여 30,000,000원을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7. 18. 선고 2018가합515239 판결).
쟁점 정리
첫째, 이 사건 반출자료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가 — 비밀관리성 충족 여부
영업비밀이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밀로 관리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말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원고가 정보보안 관리규정, 보안등급 분류 기준, 영업비밀 보호서약서 등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이 사건 반출자료에 대하여 실제로 비밀관리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비밀관리성이란 정보가 비밀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표지를 하거나 고지를 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대상자나 접근 방법을 제한하거나 정보에 접근한 사람에게 비밀준수의무를 부과하는 등 객관적으로 그 정보가 비밀로 유지·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인식 가능한 상태인 것을 뜻합니다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도13791 판결). 비밀관리성 인정을 위해서는 ① 물리적·기술적 관리, ② 인적·법적 관리, ③ 조직적 관리가 이루어졌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되, 각 조치가 ‘합리적’이었는지 여부는 영업비밀 보유 기업의 규모, 해당 정보의 성질과 가치, 해당 정보에 일상적인 접근을 허용하여야 할 영업상의 필요성이 존재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의정부지방법원 2016. 9. 27. 선고 2016노1670 판결).
둘째, 이 사건 반출자료가 영업상 주요 자산에 해당하는가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의 성과 등 도용행위 또는 업무상 배임의 불법행위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차목).

판시 내용
가. 영업비밀 해당 여부 — 비밀관리성 부정
법원은 원고가 다음과 같은 보안 조치를 갖추고 있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① 복무규정에 직원의 비밀 엄수 규정, ② 정보보안 관리규정 제정·운영, ③ 보안등급 및 관리책임 기준표를 통한 ‘극비’, ‘대외비’, ‘일반’ 분류, ④ 퇴사 직원에 대한 영업비밀 보호서약서 징구, ⑤ 사무실 CAPS 지문리더기와 CCTV 설치, ⑥ 서버 컴퓨터 접근 시 암호 입력.
그러나 법원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사정을 들어 비밀관리성을 부정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① 반출자료에 비밀 표시 없음
이 사건 반출자료에는 당해 자료가 비밀이라는 취지의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비밀관리성 인정을 위해서는 정보가 비밀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표지를 하거나 고지를 하여야 하는데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도13791 판결), 이 사건 반출자료에는 그러한 표시가 전혀 없었습니다.
② 정보보안 관리규정이 영업비밀의 개념을 추상적으로 서술한 것에 불과
원고 정보보안 관리규정 제3조 제1항의 영업비밀은 부정경쟁방지법과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영업비밀의 개념을 다시 서술한 것에 불과하여, 구체적으로 어떠한 자료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규정이 있더라도 그 규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를 영업비밀로 특정하지 않으면 비밀관리성 인정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③ 보안등급 분류 규정이 있으나 실제로 분류하지 않음
원고 정보보안 관리규정 제6조, 제7조에 따르면 영업비밀은 ‘극비’, ‘대외비’, ‘일반’으로 구분하고, ‘극비’와 ‘대외비’ 자료를 사용하거나 반출 시에는 반드시 부서장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원고가 이 사건 반출자료를 ‘극비’, ‘대외비’로 분류하여 관리하였다거나 임직원들이 이 사건 반출자료를 사용함에 있어 위와 같은 절차를 거치도록 하였다고 볼 자료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이 사건의 핵심 패인입니다. 규정은 있었지만 그 규정대로 실제로 분류하고 관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의정부지방법원 2016. 9. 27. 선고 2016노1670 판결).
④ 보안 등급별 분류·관리의 객관적 자료 없음
원고가 이 사건 반출자료를 보안 등급별로 분류하여 관리하였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었습니다. 임직원의 문서별 사용권한을 달리 지정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이 사건 반출자료가 영업비밀로서 관리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도13791 판결).
⑤ 거래처에 대한 비밀유지의무 부과 없음
이 사건 반출자료에 대해 원고가 각 대학에 대하여 계약상 비밀유지의무를 부과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관련 업무가 종료된 후 자료에 대한 반환 내지 폐기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한 사실도 없었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⑥ CCTV·지문리더기는 전반적 보안 강화 조치일 뿐
CAPS 지문리더기와 CCTV 설치 등은 원고의 전반적 보안 강화를 위한 것으로 보일 뿐이고, 이러한 사정만으로 이 사건 반출자료가 구체적으로 비밀로 유지·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인식 가능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도13791 판결).
나. 영업상 주요 자산 해당 여부 — 인정
법원은 이 사건 반출자료가 다른 업체들에 일반적으로 공개되는 자료는 아니며, 피고 D는 이를 이용하여 비교적 적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피고 회사의 사업제안서, 결과보고서 등을 작성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영업상 주요 자산에 해당한다고 인정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차목).
다. 업무상 배임의 불법행위 — 인정, 손해배상 30,000,000원
법원은 피고 C의 이 사건 반출자료 무단 반출 및 사용 행위가 업무상 배임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고, 피고 D의 방조 책임도 인정하여 피고들이 공동하여 원고에게 30,000,000원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

핵심 포인트 — 반드시 알아야 할 4가지
① 정보보안 관리규정의 존재만으로는 비밀관리성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 ‘실행’이 핵심입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정보보안 관리규정, 보안등급 분류 기준, 영업비밀 보호서약서, CCTV, 지문리더기 등 외형상 상당한 보안 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 반출자료에 대하여 실제로 보안등급을 분류하고 그에 따른 접근 통제 절차를 이행하였다는 객관적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비밀관리성을 부정하였습니다. 규정을 만드는 것과 그 규정대로 실제로 관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도13791 판결).
② 영업비밀로 보호받으려면 해당 자료에 직접 비밀 표시를 하여야 합니다.
비밀관리성 인정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해당 정보가 비밀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표지를 하거나 고지를 하는 것입니다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도13791 판결). 사업제안서, 견적서, 결과보고서 등 개별 문서에 ‘대외비’, ‘극비’ 등의 표시를 하는 것이 비밀관리성 인정의 출발점입니다. 보안등급 분류 기준표가 있더라도 개별 문서에 실제로 등급 표시가 없으면 그 기준표는 사실상 무의미합니다 (의정부지방법원 2016. 9. 27. 선고 2016노1670 판결).
③ 영업비밀 침해가 부정되더라도 업무상 배임의 불법행위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영업비밀 침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업무상 배임의 불법행위를 주위적 청구로 함께 제기하여 30,000,000원을 인용받았습니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는 영업비밀 침해, 업무상 배임, 성과 등 도용행위(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를 선택적·예비적으로 병합하여 청구하는 전략이 중요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차목, 제11조).
④ 비밀관리성 인정을 위한 실무적 체크리스트 — 규정 + 실행 + 기록이 필요합니다.
비밀관리성 인정을 위해서는 ① 물리적·기술적 관리(접근 통제, 암호화, CCTV 등), ② 인적·법적 관리(비밀유지서약서, 비밀유지교육, 거래처 비밀유지약정), ③ 조직적 관리(보안등급 분류 및 실제 표시, 반출 시 사전승인 절차 이행, 이행 기록 보존)가 모두 이루어져야 합니다 (의정부지방법원 2016. 9. 27. 선고 2016노1670 판결). 특히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것은 ③ 조직적 관리의 실제 이행 여부였습니다. 보안등급 분류 규정이 있다면 개별 문서에 실제로 등급을 표시하고, 반출 시 부서장 사전승인을 받은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정상조, 『부정경쟁방지법 주해[제2판]』, 박영사(2024년), 393-394면 (정상조, 『부정경쟁방지법 주해[제2판]』, 박영사(2024년), 393-394면)
마치며 — “규정집은 영업비밀을 보호하지 않는다. 실행만이 보호한다”
이 판결은 영업비밀 보호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기업들에게 냉정한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정보보안 관리규정, 보안등급 분류 기준, 영업비밀 보호서약서, CCTV, 지문리더기 —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법원은 비밀관리성을 부정하였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 규정대로 실제로 이 사건 반출자료를 분류하고 표시하고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업비밀 보호는 규정집을 만드는 순간이 아니라, 개별 문서에 ‘대외비’ 도장을 찍는 순간, 반출 승인 기록을 남기는 순간, 거래처와 비밀유지약정을 체결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영업비밀 보호 규정은 실행되지 않으면 종이 한 장에 불과합니다. 규정대로 실제로 관리하고, 그 기록을 남기십시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7. 18. 선고 2018가합515239 판결,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제1호 차목·제11조,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도13791 판결, 의정부지방법원 2016. 9. 27. 선고 2016노1670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