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변호사-출판권 설정계약이 저작권 양도계약으로 해석

“계약서 제목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입니다”
삽화 작가가 출판사와 체결한 계약서에는 분명 “출판권 설정계약”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이 계약이 실제로는 “저작권 양도계약”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계약서의 제목과 실제 내용이 다를 수 있다는 이 판결은 창작자와 출판사 모두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오늘은 서울고등법원 2025. 6. 19. 선고 2024나2057904 판결을 통해 출판권 설정계약과 저작권 양도계약의 차이, 그리고 계약 해석의 기준을 살펴보겠습니다.

출판권 설정계약이 저작권 양도계약으로 해석
출판권 설정계약이 저작권 양도계약으로 해석

1. 사실관계 요약

계약 체결의 배경

원고 A는 2006년 3월경 피고 B가 운영하는 출판사와 “출판권 설정계약”이라는 제목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당시 원고는 제1심 증인 N이 운영하는 화실에 다닌 지 몇 개월 안 된 학생 신분이었습니다.

계약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 계약 기간: 출판일로부터 3년
  • 화료(저작권료): 250만 원
  • 계약 제10조: “출판 후, 원고가 필요로 할 시 원화(原畵)를 돌려줄 수 있다”

분쟁의 발생

원고는 계약 체결 후 약 16년이 지난 2022년 9월, 피고들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고는 이 계약이 “출판권 설정계약”이므로 계약 기간인 3년이 지난 2009년 6월 이후에는 출판권이 소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원고는 피고들이 출판권 소멸 이후에도 원고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출판·판매했다며 다음을 청구했습니다:

  1. 출판물의 출판·판매 등 금지
  2. 출판물의 완제품·반제품 및 디지털 파일 폐기
  3. 손해배상금 지급

피고들의 주장

피고들은 이 계약이 “저작권 양도계약”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원고가 250만 원을 받고 저작권 전체를 피고 B에게 양도했으므로, 피고들이 원고의 저작물을 계속 출판·판매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2. 쟁점 정리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2006년 3월경 원고와 피고 B 사이에 체결된 계약이 “출판권 설정계약”인지, 아니면 “저작권 양도계약”인지 여부입니다.

출판권 설정계약과 저작권 양도계약의 차이

출판권 설정계약은 저작권자가 출판사에게 일정 기간 동안 저작물을 출판할 수 있는 권리를 설정해주는 계약입니다. 이 경우 저작권은 여전히 저작권자에게 남아 있고, 계약 기간이 종료되면 출판권도 소멸합니다(저작권법 제63조).

반면 저작권 양도계약은 저작권자가 저작권 자체를 출판사에게 완전히 넘겨주는 계약입니다. 이 경우 저작권은 출판사에게 이전되며, 저작권자는 더 이상 저작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저작권법 제45조).

만약 이 계약이 출판권 설정계약이라면, 계약 기간인 3년이 지난 2009년 6월 이후 피고들의 출판·판매 행위는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됩니다. 반대로 저작권 양도계약이라면, 피고들은 원고의 저작물을 계속 출판·판매할 권리가 있습니다.

저작권 손해배상_2024나2057904
저작권 손해배상_2024나2057904

3. 판시 내용

계약 해석의 기준

법원은 먼저 계약 해석의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당사자 사이에 계약 해석을 둘러싸고 다툼이 있어 처분문서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약정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약정으로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18. 7. 20. 선고 2015다207044 판결).

또한 “처분문서라 할지라도 그 기재 내용과 다른 명시적, 묵시적 약정이 있는 사실이 인정될 경우에는 그 기재 내용과 다른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작성자의 법률행위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경험법칙과 논리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로운 심증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06. 4. 13. 선고 2005다34643 판결).

저작권 양도계약으로 판단한 이유

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계약이 “저작권 양도계약”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첫째, 제1심 증인 N의 증언 제1심 증인 N은 “이 사건 계약을 비롯하여 자신과 원고 등 학생들이 피고 B와 사이에 체결한 계약들은 모두 일정 금액의 목돈을 받고 자신의 저작물에 관한 모든 권리를 넘겨주는 계약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법원은 “제1심 증인 N이 법률전문가가 아니어서 ‘매절계약’과 ‘저작권 양도계약’의 법적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채 이 사건 계약이 ‘매절계약’이라고 증언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신빙성을 배척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둘째, 다른 작가들의 사실확인서 피고 B, C은 원고와 마찬가지로 피고 B와 사이에 2006년 3월경 ‘출판권 설정계약’을 체결한 여러 삽화 작가들이 작성한 사실확인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들은 “해당 계약의 내용과 의미는 일단 저작물을 인도하면 한 번에 다액의 화료를 받으며, 그 후에는 피고 B 등 출판하는 사람이 저작권(소유권)을 가지고 자유롭게 출판한다는 일종의 양도계약이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법원은 “만일 이 사건 계약 등이 저작권 양도계약이 아닌 출판권 설정계약에 해당할 경우, 원고가 제출한 사실확인서의 작성자들은 피고 B 등을 상대로 자신의 저작권을 주장할 수도 있게 되어 원고에게 유리한 쪽으로 진술할 유인이 있다고 보이는 반면, 피고 B, C이 제출한 사실확인서의 작성자들은 그와 같은 유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 계약 등이 저작권 양도계약이었다고 일치하여 진술하고 있으므로, 피고 B, C이 제출한 사실확인서의 작성자들의 진술이 원고가 제출한 사실확인서의 작성자들의 진술에 비해 그 신빙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평가했습니다.

셋째, 화료의 금액 법원은 “이 사건 계약이 체결된 2006년 3월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19년 전으로 그 시간적 간격이 상당한 점, 원고는 이 사건 계약 체결 당시 제1심 증인 N이 운영하는 화실에 다닌 지 몇 개월 안 된 학생 신분이었던 점, 피고 B의 출판업체 규모, 당시의 저작권에 관한 권리의식과 화폐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피고 B가 이 사건 계약 체결 당시 원고에게 지급한 화료 250만 원은 원고가 이 사건 저작물에 관하여 기간(출판일로부터 3년) 등을 한정하여 출판권만을 설정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보기에 상당히 과다한 금액으로 보인다”고 판시했습니다.

넷째, 계약 제10조의 의미 법원은 “이 사건 계약 제10조에서는 ‘출판 후, 원고가 필요로 할 시 원화(原畵)를 돌려줄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데, 이는 피고 B가 원칙적으로 출판 후 이 사건 저작물의 원화를 가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조항이므로, 원고 주장처럼 이 사건 계약이 기간 등을 정한 출판권 설정계약이었다면 위 조항을 두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다섯째,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법원은 “위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 계약 당사자들인 원고와 피고 B의 의사는 단지 ‘출판권 설정 계약서’ 양식을 빌려 ‘저작권 양도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원고 주장의 배척

법원은 “처분문서인 이 사건 계약서의 ‘출판권 설정’이라는 등 일부 기재, ‘출판권 설정’과 ‘저작권 양도’의 법적 차이, 다른 작가들의 권리행사가 원고의 권리행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거나 원고가 장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고 하여 그 저작권을 양도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 등을 비롯하여 원고가 주장하는 사정들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앞서 본 판단과 달리 이 사건 계약 당사자들의 의사가 이 사건 저작물에 관하여 기간 등을 정한 출판권을 설정하는 것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결론

법원은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모두 기각하여야 한다”고 판시하며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5. 6. 19. 선고 2024나2057904 판결).

4. 핵심 포인트

계약서 제목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계약서의 제목이나 형식보다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18. 7. 20. 선고 2015다207044 판결).

계약서에 “출판권 설정계약”이라고 적혀 있더라도, 당사자들의 진정한 의사가 “저작권 양도”였다면 법원은 이를 저작권 양도계약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창작자와 출판사는 계약 체결 시 계약서의 제목뿐만 아니라 계약의 실질적 내용을 명확히 이해하고 합의해야 합니다.

계약 해석의 종합적 고려 요소

법원은 계약을 해석할 때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1. 문언의 내용: 계약서에 적힌 문구
  2. 약정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계약을 체결하게 된 배경
  3. 약정으로 달성하려는 목적: 계약을 통해 이루고자 한 목표
  4.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당사자들이 실제로 원했던 것
  5. 화료의 금액: 지급된 대가의 적정성
  6. 계약 조항의 의미: 각 조항이 전제하는 바
  7. 당사자의 지위: 계약 체결 당시 당사자들의 상황

증인 증언과 사실확인서의 신빙성

법원은 증인 증언이나 사실확인서의 신빙성을 평가할 때 진술자가 특정 방향으로 진술할 유인이 있는지를 고려합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들이 제출한 사실확인서의 작성자들은 계약이 저작권 양도계약이라고 진술할 유인이 없었음에도 일치하여 그렇게 진술했으므로, 법원은 이들의 진술을 더 신빙성 있게 평가했습니다.

화료의 적정성

법원은 지급된 화료가 출판권 설정의 대가로 보기에 과다한지 여부를 중요하게 고려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250만 원이라는 화료는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원고가 3년간의 출판권만을 설정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보기에 상당히 과다한 금액이었으므로, 법원은 이를 저작권 양도의 대가로 판단했습니다.

계약 조항의 해석

법원은 계약 조항이 전제하는 바를 통해 계약의 성격을 파악합니다.

이 사건에서 계약 제10조는 “출판 후, 원고가 필요로 할 시 원화를 돌려줄 수 있다”고 정하고 있었는데, 이는 피고 B가 원칙적으로 출판 후 원화를 가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조항입니다. 만약 이 계약이 출판권 설정계약이었다면 이러한 조항을 둘 이유가 없으므로, 법원은 이를 저작권 양도계약의 근거로 판단했습니다.

실무상 유의사항

1. 계약서 작성 시 명확한 표현 사용 창작자와 출판사는 계약서를 작성할 때 자신들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출판권 설정”과 “저작권 양도”는 법적으로 전혀 다른 의미이므로, 어떤 계약을 체결하는지 명확히 해야 합니다.

2. 계약 내용의 일관성 유지 계약서의 제목과 내용이 일치해야 합니다. 제목은 “출판권 설정계약”인데 내용은 저작권 양도에 가깝다면, 법원은 내용을 우선하여 해석할 수 있습니다.

3. 대가의 적정성 고려 출판권 설정계약을 체결할 경우, 대가가 출판권 설정에 적정한 수준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대가가 과다하면 법원이 이를 저작권 양도계약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4. 계약 조항의 정합성 확인 계약서의 각 조항이 계약의 성격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출판권 설정계약인데 원화의 소유권을 출판사에게 넘기는 조항이 있다면, 이는 계약의 성격과 맞지 않습니다.

5. 법률 전문가의 조력 계약 체결 시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창작자는 출판사에 비해 계약 협상력이 약할 수 있으므로, 계약서를 검토받고 자신의 권리를 보호해야 합니다.

6. 권리 행사의 시기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려면 적절한 시기에 권리를 행사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계약 체결 후 약 16년이 지나서야 권리를 주장했는데, 이러한 장기간의 침묵은 법원이 계약을 해석할 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snu_김정민변호사 기업법
snu_김정민변호사 기업법

마치며

“계약은 제목이 아니라 내용으로 판단됩니다”

이 판결은 계약서의 제목이나 형식보다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계약서에 “출판권 설정계약”이라고 적혀 있더라도, 당사자들의 진정한 의사가 “저작권 양도”였다면 법원은 이를 저작권 양도계약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5. 6. 19. 선고 2024나2057904 판결).

창작자와 출판사는 계약 체결 시 자신들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계약서의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대가의 적정성, 계약 조항의 정합성 등을 꼼꼼히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창작자는 출판사에 비해 계약 협상력이 약할 수 있으므로,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약 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적절히 대응하시기 바랍니다. 계약은 제목이 아니라 내용으로 판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