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냥 자동 등록 시스템을 썼을 뿐인데, 저작권 침해라고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소매업자라면 한 번쯤 이런 상황을 마주칠 수 있습니다. 도매 플랫폼의 자동 상품 등록 기능을 이용해 제품 정보를 그대로 올렸는데, 알고 보니 그 상세페이지가 타인의 저작물이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울산지방법원 2026. 3. 25. 선고 2025나10921 판결은 바로 이 상황에서 “몰랐다”는 항변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2,000,000원을 청구했지만 300,000원만 인정된 이 사건,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사실관계 요약 — 당사자가 직면한 위기와 문제
가. 원고의 저작물과 저작권 등록
원고 주식회사 A는 소형가전제품·주방용품 등을 수입·제조·판매하는 회사로, 자체 웹사이트를 통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원고는 2019년 1월 1일 콘텐츠 개발업자 E과 용역계약을 체결하였고, 계약 제5조에 따라 E이 제작하는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 등 일체의 권리를 원고에게 양도받기로 하였습니다.
E은 2020년 10월 23일경 이 사건 용역계약에 따라 ‘F’ 제품의 판매 상세페이지(이 사건 저작물)를 제작하여 원고에게 제공하였고, 원고는 2020년 12월 14일 이를 한국저작권위원회에 편집저작물로 등록하였습니다.
나. 피고의 무단 게시와 원고가 직면한 위기
피고 B는 2021년 11월 29일경 자신이 운영하는 11번가 오픈마켓 ‘H’에 이 사건 제품을 판매하면서, 도매·소매 중개 플랫폼 ‘I’의 자동 상품 등록 시스템을 이용하여 이 사건 저작물을 함께 게시하였습니다.
원고가 직면한 위기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형사 절차에서의 좌절입니다. 원고는 피고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하였으나, 경남양산경찰서는 2022년 7월 8일 “저작권 침해에 대한 고의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불송치결정을 하였습니다. 형사 절차를 통한 구제가 막힌 것입니다.
둘째, 민사 소송에서의 손해액 입증 문제입니다. 원고는 2,000,000원을 청구하였으나, 이 사건 저작물의 제작비용이나 피고가 얻은 이익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1심에서는 원고가 전부 패소하였고, 항소심에서도 300,000원만 인정받는 데 그쳤습니다.
2. 핵심 쟁점 Q&A
Q1. 상세페이지는 저작권법상 어떤 저작물에 해당하나요?
A. 법원은 이 사건 저작물이 저작권법상 편집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편집저작물이란 편집물로서 그 소재의 선택·배열 또는 구성에 창작성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창작성은 반드시 높은 수준의 예술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복제한 것이 아니고 최소한도의 창작성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다만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할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라면 창작성이 인정되지 않습니다.편
이 사건 저작물은 제품의 기능, 작동원리, 장점 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창작자가 사진, 영상, 문구 등을 나름대로 배치·나열한 집합물로서, 소재의 분류·선택·배열에 최소한도의 창작성이 인정된다고 보았습니다.

Q2. 저작권 등록이 되어 있으면 과실이 추정된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A. 저작권법 제125조 제4항은 “등록되어 있는 저작권을 침해한 자는 그 침해행위에 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합니다. 이는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매우 중요한 조항입니다.
일반적인 불법행위 소송에서는 피해자(원고)가 가해자(피고)의 고의 또는 과실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작권이 등록되어 있는 경우에는 이 입증 책임이 역전됩니다. 즉, 피고 스스로 자신에게 과실이 없었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과실이 있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는 자동 상품 등록 시스템을 이용하였으므로 고의·과실이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이 주장만으로는 과실 추정이 번복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Q3. “자동 등록 시스템을 썼으니 몰랐다”는 항변은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나요?
A. 법원이 피고의 항변을 배척한 근거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이 사건 저작물에는 저작권 보호 표시가 명확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미지 중간에 워터마크가 비교적 촘촘한 간격으로 표시되어 있었고, 이미지 하단에는 “저작권법에 의거. 이미지 무단사용을 금지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민·형사상 처벌 가능성을 경고하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법원은 피고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이 사건 저작물이 원고의 저작물임을 알 수 있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둘째, 자동 상품 등록 시스템 자체의 특성입니다. 피고가 사용한 ‘I’의 자동 등록 시스템은 업로드 전에 편집을 통해 복사할 범위를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즉, 피고는 저작권 침해 우려가 있는 이미지를 복사 범위에서 언제든지 제외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동화된 시스템을 이용하였다는 사정이 주의의무를 면제해 주지는 않습니다.
Q4. 원고가 전시권과 저작인격권 침해도 주장했는데,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나요?
A. 원고는 복제권 침해 외에 전시권과 저작인격권 침해도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두 가지 이유로 이를 모두 배척하였습니다.
전시권에 관하여, 저작권법 제19조에 따른 전시권은 미술저작물 등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에 대해 인정되는 권리입니다. 이 사건 저작물과 같은 편집저작물에도 전시권이 인정된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저작인격권에 관하여, 저작인격권은 저작자의 인격과 결합된 일신전속적 권리로서 양도하거나 이전할 수 없습니다. 원고는 E으로부터 저작재산권을 양수하였을 뿐이므로, 저작인격권까지 취득하였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저작인격권은 여전히 실제 창작자인 E에게 귀속됩니다.
이 부분은 저작권 소송에서 자주 혼동되는 지점입니다. 저작재산권은 양도 가능하지만, 저작인격권은 창작자에게 영구히 귀속된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Q5. 손해액은 어떻게 산정되었나요? 왜 300,000원에 그쳤나요?
A. 법원은 이 사건 저작물이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등록되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저작권법 제125조의2에 따른 법정손해배상 조항을 적용하여 손해액을 300,000원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법원이 원고가 청구한 2,000,000원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을 인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손해액 감액 사유 | 내용 |
|---|---|
| 통상 사용료 산정 불가 | 이 사건 저작물은 제품 판매 목적으로 창작된 것으로 통상적인 사용료 산정 기준이 없음 |
| 사용 기간·판매량 자료 미제출 | 피고가 저작물을 게재한 기간과 그 기간 판매한 제품 수 등 자료가 제출되지 않음 |
| 견적서의 증명력 부족 | 원고가 제출한 편집디자인 작업의뢰 견적서가 이 사건 저작물에 관한 것인지 불분명하고, 견적서에 불과하여 실제 제작비로 보기 어려움 |
| 용역대금의 특정 불가 | 계약서상 용역대금은 일정 기간 제작한 저작물 전체에 관한 것이고, 이 사건 저작물 제작 이전에 지급된 금액이어서 이 사건 저작물의 제작비용으로 인정 불가 |
결국 이 사건에서도 손해액 입증의 어려움이 최종 인용 금액을 크게 낮추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습니다.
Q6. 이 소송에서 전략적으로 잘한 점과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A. 이 소송의 전략적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잘한 점 ✅
① 저작권 등록을 통한 과실 추정 활용 원고가 이 사건 저작물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사전 등록해 둔 것은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였습니다. 등록이 없었다면 원고가 피고의 과실을 직접 입증해야 했고, 형사 절차에서 불송치결정이 난 상황에서 이는 매우 어려운 과제였을 것입니다. 저작권 등록이 민사 소송에서 과실 추정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된 것입니다.
② 저작물 내 워터마크 및 경고 문구 삽입 이미지에 워터마크를 촘촘하게 삽입하고 하단에 저작권 경고 문구를 명시한 것은 피고의 “몰랐다”는 항변을 무력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습니다. 저작물에 대한 권리 표시는 단순한 경고를 넘어 소송에서 중요한 증거로 기능합니다.
③ 법정손해배상 조항의 활용 저작권 등록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법원이 저작권법 제125조의2의 법정손해배상 조항을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실손해액 입증이 어려운 상황에서 법원이 재량으로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입니다.
아쉬운 점 ❌
① 손해액 입증 자료의 부족 이 사건에서도 가장 큰 패인은 손해액 입증 자료의 부족이었습니다. 원고가 제출한 견적서는 이 사건 저작물에 관한 것인지 특정되지 않았고, 용역대금 지급 내역도 이 사건 저작물 제작 이전에 지급된 것이어서 제작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저작물별로 제작 단가를 특정할 수 있는 발주서, 납품 확인서, 개별 정산 내역 등을 갖추었다면 더 높은 손해액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② 전시권·저작인격권 주장의 무리한 확장 원고는 복제권 침해 외에 전시권과 저작인격권 침해까지 주장하였으나 모두 배척되었습니다. 편집저작물에 전시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 저작인격권은 양도가 불가능하다는 점은 저작권법의 기본 원칙입니다. 승소 가능성이 낮은 주장을 무리하게 병행하는 것은 소송의 집중도를 낮출 수 있습니다.

마치며
“자동 시스템을 썼으니 내 책임이 아니다”는 주장, 앞으로도 통할까요? 이 판결의 답은 명확합니다. 통하지 않습니다. 자동화된 시스템을 이용하더라도 업로드 전에 저작권 침해 여부를 확인할 의무는 사용자에게 있습니다. 특히 워터마크와 경고 문구가 명시된 이미지를 그대로 올렸다면, “몰랐다”는 항변은 설득력을 잃습니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시는 분이라면 지금 당장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도매 플랫폼에서 자동으로 가져온 상품 이미지에 타인의 워터마크나 저작권 표시가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사용하고 있는 상세페이지는 없는지 말입니다. 저작권 침해는 고의가 없어도 성립할 수 있고, 등록된 저작물이라면 과실까지 추정됩니다. 주의 한 번이 소송 한 번을 막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