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심사위원이 신인 작가의 시나리오를 보고 작가계약을 제안했습니다. 계약이 해지된 후, 그 심사위원은 작가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저작권 등록을 마쳤습니다. 시나리오 저작권 분쟁
작가는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인정한 금액은 500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작권 등록 말소는 인정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 판결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계약, 저작재산권의 귀속, 저작인격권(성명표시권) 침해, 그리고 약관법·민법상 계약 무효 주장이 한꺼번에 다투어진 복잡한 사건입니다. 신인 작가와 영화 제작사 사이의 권력 불균형, 저작권 등록의 법적 의미, 그리고 성명표시권의 실질적 보호 범위에 관한 중요한 법리를 담고 있습니다.

1. 사실관계 요약
원고 A는 2018. 3. 29. D재단이 주최한 시나리오 작가 공모전에 ‘F'(가제)라는 제목의 트리트먼트(이하 ‘최초 트리트먼트’)로 응모하였습니다. 피고 B는 위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여 최초 트리트먼트를 접하였습니다.
원고와 피고 회사(주식회사 C)는 2018. 7. 19. 최초 트리트먼트를 시나리오로 개발하기 위한 작가계약(이하 ‘이 사건 작가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계약 보수는 총 3,000만 원이었고, 작가2023계약 제9조는 원고가 제공한 모든 용역의 결과물이 피고 회사에 영구적으로 귀속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원고는 2018. 7. 21.부터 2018. 11. 23.까지 트리트먼트 수정고 및 시나리오 총 5개 버전을 피고 B에게 이메일로 전달하였습니다.
원고와 피고 회사는 2018. 12. 13. 이 사건 작가계약을 합의해지하였고(이하 ‘이 사건 해지합의’), 해지합의 제3조는 영화의 일체의 모든 저작권이 피고 회사에 영구 귀속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런데 피고 B는 2018. 11. 22. 원고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피고 시나리오 초고를 작성하였고, 2018. 12. 28.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자신을 저작자로 하여 저작권 등록을 마쳤습니다(이하 ‘이 사건 저작권등록’). 이후 피고들은 원고의 이름을 표시하지 않은 채 영화제작사 H, 영화진흥위원회, I 주식회사에 시나리오를 배포하였고, 피고 회사는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4,000만 원의 지원금을 수령하였습니다.
2. 쟁점 정리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가. 이 사건 작가계약 및 해지합의의 무효 여부
원고는 ① 약관법 위반(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6조 제2항 제1호, 제16조), ② 민법 제104조(불공정한 법률행위), ③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 행위)를 근거로 이 사건 작가계약 및 해지합의가 무효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계약이 무효라면 저작재산권은 원고에게 귀속되고, 피고들의 모든 행위가 저작권 침해가 됩니다.
나. 이 사건 등록저작물이 원고 시나리오의 복제물인지 여부
이 사건 작가계약 및 해지합의가 유효하더라도, 피고 B이 등록한 저작물이 원고의 2018. 11. 23.자 시나리오의 복제물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피고 B이 독자적으로 창작한 2차적저작물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되었습니다.
다. 저작인격권(성명표시권) 침해 여부 및 손해배상액
피고들이 원고의 이름을 표시하지 않은 채 시나리오를 배포하고 저작권 등록을 마친 행위가 원고의 성명표시권을 침해하는지, 그리고 그 손해배상액이 얼마인지가 문제되었습니다(저작권법 제12조 제2항, 제127조).

3. 판시 내용
가. 작가계약 및 해지합의 무효 주장 — 전부 기각
1) 약관법 위반 주장 — 불인정
법원은 이 사건 작가계약이 약관법상 약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피고 회사가 유사한 내용의 계약서를 다른 작가들과도 사용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원고는 계약 체결 전 피고 B과 적어도 두 차례 만나 계약 내용을 논의하였고, 원고의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 피고 B이 제안한 일부 조건이 최종 계약에서 삭제되었습니다. 법원은 원고에게 계약 조항에 대하여 검토 및 교섭할 기회가 부여되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8다16950 판결 참조).
2) 민법 제104조 불공정 법률행위 주장 — 불인정
법원은 원고가 계약 체결 당시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원고는 독립 단편 영화 조연출, 다큐영화팀 조연출 등의 경력이 있었고, 영화 제작 비용은 전적으로 피고 회사가 부담하는 구조였으므로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에 법률행위를 절대적 무효로 할 정도의 현저한 불균형이 있었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00. 7. 7. 선고 2000다15784 판결 참조).
3) 민법 제103조 반사회질서 행위 주장 — 불인정
법원은 피고 회사가 원고의 저작권을 탈취하기 위하여 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원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23. 2. 23. 선고 2022다287383 판결 참조).
나. 이 사건 등록저작물 — 원고 시나리오의 복제물로 인정
법원은 이 사건 등록저작물이 2018. 11. 23.자 시나리오에 의거하여 작성된 복제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의거관계 인정 근거:
- 피고 B은 이 사건 등록저작물 창작일(2018. 12. 12.) 이전에 원고의 시나리오를 이미 수령하여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이 사건 등록저작물에는 트리트먼트에는 없었으나 원고 시나리오에만 등장하는 장면들(사망 미신고 과태료 고지서 전달 장면, 굿 제안 장면, 특정 노래를 부르는 장면 등)이 동일하게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 두 시나리오에는 트리트먼트에는 없는 대사들이 동일·유사하게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2차적저작물 해당 여부 — 부정:
법원은 이 사건 등록저작물이 원고 시나리오에 다소의 수정·증감을 가한 것에 불과하고, 작품의 전개, 주요 사건, 인물 묘사, 분위기, 결말 등에 실질적인 변경이 없으므로 사회통념상 새로운 저작물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창작성이 부가되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02. 1. 25. 선고 99도863 판결, 대법원 2012. 2. 23. 선고 2010다66637 판결 참조).
다. 저작권 등록 말소 — 인용
이 사건 등록저작물이 원고 시나리오의 복제물에 불과하므로 그 저작자는 원고임에도, 피고 B이 자신을 저작자로 하여 저작권 등록을 마침으로써 원고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따라서 피고 B은 저작권법 제123조 제1항에 따라 이 사건 저작권등록의 말소등록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라. 성명표시권 침해 및 손해배상 — 500만 원 인정
법원은 피고들이 원고의 이름을 표시하지 않은 채 시나리오를 배포하고 저작권 등록을 마친 행위가 성명표시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저작권법 제12조 제2항). 피고들이 추후 영화 크레딧에 원고 이름을 표시할 예정이었다거나 관계자들에게 원고의 참여 사실을 고지하였다는 사정은 성명표시권 침해 판단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하였습니다.
손해배상액은 ① 피고 B이 원고 시나리오에 의거하여 저작권 등록을 마친 점, ② 경력을 막 시작하는 원고에게 각본가로 표시되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점, ③ 피고들이 영화 개봉 시 원고의 이름을 각본가로 기재할 것을 예정하고 있었던 점 등을 종합하여 5,000,000원으로 인정하였습니다.
4. 핵심 포인트
가. 작가계약의 저작재산권 귀속 조항 — 유효하다
이 판결은 영화 작가계약에서 저작재산권을 제작사에 귀속시키는 조항이 원칙적으로 유효하다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유사한 형식의 계약서를 여러 작가와 체결하였더라도, 개별 교섭의 기회가 부여되었다면 약관법의 규율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작가 지망생이라는 사정만으로 궁박·무경험이 인정되지 않으며, 제작사가 제작 비용과 흥행 위험을 전부 부담하는 구조는 급부 불균형 판단에서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됩니다.
나. 저작재산권 귀속과 저작인격권은 별개다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저작재산권이 제작사에 귀속되더라도 저작인격권(성명표시권)은 여전히 원저작자에게 귀속된다는 것입니다. 저작인격권은 저작자의 인격적 이익을 보호하는 권리로서 양도가 불가능하며, 저작재산권 양도 계약이 있더라도 저작물을 이용하는 자는 저작자의 성명을 표시하여야 합니다(저작권법 제12조 제2항). 제작사가 시나리오를 배포할 때 작가의 이름을 표시하지 않으면 성명표시권 침해가 됩니다.
다. 복제물과 2차적저작물의 구별 — 실질적 창작성 부가 여부
법원은 등장인물 구성, 줄거리, 주요 장면, 대사의 동일·유사성을 근거로 이 사건 등록저작물이 2차적저작물이 아닌 복제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원저작물에 수정·증감을 가하더라도 작품의 전개, 주요 사건, 인물 묘사, 분위기, 결말 등에 실질적인 변경이 없다면 새로운 창작성이 부가된 2차적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이는 저작권 등록 말소 청구의 핵심 근거가 되었습니다.
라. 저작권 등록 말소 청구의 근거 — 저작권법 제123조 제1항
법원은 저작권법 제55조의3 제1항은 ‘저작권 등록자’가 변경등록 등을 신청할 수 있는 조항으로서 제3자가 말소등록절차 이행을 구하는 청구권원이 될 수 없다고 명확히 하였습니다. 저작인격권 침해를 이유로 한 말소등록 청구의 근거는 저작권법 제123조 제1항이 되어야 합니다. 실무에서 저작권 등록 말소 청구 시 청구권원을 정확히 특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 실무적 시사점 — 영화·콘텐츠 작가계약 체크리스트
| 쟁점 | 이 사건에서의 결과 |
|---|---|
| 작가계약의 약관 해당 여부 | 개별 교섭 기회 있으면 약관 아님 |
| 저작재산권 귀속 조항의 효력 | 유효 |
| 저작인격권(성명표시권) 보호 | 저작재산권 귀속과 무관하게 보호 |
| 복제물 vs. 2차적저작물 | 실질적 창작성 부가 없으면 복제물 |
| 말소등록 청구권원 | 저작권법 제123조 제1항 |

마치며 — 저작재산권을 넘겼어도, 이름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이 판결은 영화·콘텐츠 산업에서 작가와 제작사 사이의 권리 관계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작가계약으로 저작재산권을 제작사에 귀속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저작자의 이름을 지우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저작인격권은 계약으로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신인 작가라면 계약서에 성명표시권 보호 조항을 명시하고, 시나리오 배포 시 반드시 자신의 이름이 표시되도록 요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제작사라면, 작가의 이름을 표시하지 않은 채 시나리오를 배포하는 행위가 저작인격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