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직원이 회사 자료를 해외 거래처에 유출했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그 자료가 영업비밀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2019년 법 개정으로 영업비밀 요건이 완화되었는데도 왜 영업비밀로 인정받지 못했을까요?”-영업비밀 비밀관리성 인정 쉽지 않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경법’)은 2019년 개정을 통해 영업비밀의 비밀관리성 요건을 대폭 완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판결은 법이 완화되었다고 하여 아무런 관리 조치 없이도 영업비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회사 자료를 영업비밀로 보호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사실관계 요약
피해회사는 레진(Resin) 제품을 제조·판매하는 회사이고, 피고인 A는 피해회사의 전 부장으로 근무하다 퇴사한 자입니다. 피고인은 퇴사 후인 2019. 12. 6.경 피해회사의 해외거래처 리스트에 기재된 107개 업체를 상대로 “나는 피해회사의 전 부장인데 현재는 퇴사했다. 피해회사의 레진과 동일한 제품을 제공할 수 있고, 원재료 정보도 공개할 수 있으며 구매하면 저렴한 제품을 구할 수 있고 혼합 비율도 알 수 있다”는 내용의 영문 이메일을 전송하였습니다.
이후 이메일을 보고 연락한 멕시코 및 미국 회사 관련자에게 피해회사의 가격리스트와 MSDS(물질안전보건자료) 파일을 이메일로 전송하였습니다. 또한 피고인은 2019. 11. 26.경 피해회사 사무실에서 위 자료들을 취득한 후 퇴사 시 피해회사에 반환하거나 폐기하지 않고 계속 보관하였습니다.
원심(서울동부지방법원 2022. 10. 13. 선고 2021고단3562 판결)은 MSDS 자료는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는 해당하지만 영업비밀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고, 가격리스트는 영업비밀은 물론 영업상 주요자산으로 인정하기에도 부족하다고 보아 부경법위반의 점에 관하여는 주문무죄로, 이유무죄 부분은 이유무죄로 판단하였습니다.
항소심인 서울동부지방법원은 2023. 11. 10. 원심판결 중 유죄부분(이유무죄 부분 포함)을 파기하였습니다 (서울동부지방법원 2023. 11. 10. 선고 2022노1404 판결).
쟁점 정리
첫째, MSDS 자료 및 가격리스트의 비공지성 및 경제적 유용성이 인정되는가
영업비밀이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비공지성)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경제적 유용성) 비밀로 관리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말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비공지성이란 그 정보가 간행물 등의 매체에 실리는 등 불특정 다수인에게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보유자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그 정보를 통상 입수할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대법원 2008. 2. 15. 선고 2005도6223 판결). 경제적 유용성이란 그 정보의 보유자가 그 정보의 사용을 통해 경쟁자에 대하여 경쟁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거나 또는 그 정보의 취득이나 개발을 위해 상당한 비용이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대법원 2008. 2. 15. 선고 2005도6223 판결). (이윤원, 『영업비밀보호법』, 박영사(2012년), 57-58면 (이윤원, 『영업비밀보호법』, 박영사(2012년), 57-58면))
둘째, 2019년 부경법 개정으로 비밀관리성 요건이 완화된 이후에도 일정한 비밀관리조치가 필요한가
부경법은 2015년 개정으로 비밀관리성 요건을 ‘상당한 노력’에서 ‘합리적인 노력’으로 완화하였고, 2019년 개정으로 ‘합리적인 노력’ 요건마저 삭제하여 단순히 ‘비밀로 관리된’ 것으로 족하도록 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그렇다면 이제는 아무런 관리 조치 없이도 영업비밀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일반정보와 구별되는 최소한의 비밀관리조치가 필요한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도13791 판결). (조균석, 『형법주해 Ⅹ – 각칙(7)』, 박영사(2023년), 525-526면 (조균석, 『형법주해 Ⅹ – 각칙(7)』, 박영사(2023년), 525-526면))

판시 내용
가. 비공지성 및 경제적 유용성 — 인정
항소심 법원은 원심과 달리 MSDS 자료 및 가격리스트의 비공지성과 경제적 유용성을 모두 인정하였습니다.
① 비공지성: 위 자료들은 간행물에 실리거나 피해회사 홈페이지에 게시되는 등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바 없고, 통상 고객사가 피해회사의 담당 직원을 통하여 입수해야 하는 자료들인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한 자료에 해당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대법원 2008. 2. 15. 선고 2005도6223 판결).
② 경제적 유용성: 위 자료들은 피해회사의 직원들이 자료수집, 실험, 개발 등의 과정을 거쳐 작성한 문서인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진다고 봄이 상당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대법원 2008. 2. 15. 선고 2005도6223 판결).
나. 비밀관리성 — 부정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비밀관리성을 부정하여 결국 영업비밀 해당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핵심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비밀 표시 및 결재의 부재: 피해회사의 대표이사는 수사기관 및 원심 법정에서 ‘피해회사의 영업비밀은 Confidential 표시라든지 비밀 취급에 관한 담당자들이 사인을 해서 서류를 따로 관리한다’고 진술하였는데, 위험관리보고서 등 자료에는 ‘Confidential’ 표시가 되어 있고 품질관리부, 품질관리부서장, 연구소장, 최고경영자의 결재가 있는 반면, 가격리스트나 MSDS 자료에는 위와 같은 표시나 결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② 물리적·기술적 관리의 한계: 피해회사에 지문인식장치,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등의 사정은 외부인의 회사 출입을 통제하고 범죄나 사고 발생 등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들이지, 영업비밀로 분류된 특정 문서의 접근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없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③ 취업규칙상 영업비밀 누설 금지 조항의 한계: 피해회사의 취업규칙에 규정된 ‘영업비밀 누설 금지 조항’은 일반적·추상적 조항에 불과하여 특정 자료에 대한 비밀관리조치로 보기 어렵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법원은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여, 부경법 개정으로 더 이상 비밀유지를 위한 ‘합리적인 노력’을 요구하지 않게 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일반정보들과는 구별되는 일정한 수준의 비밀관리조치는 있었어야 할 것인데, MSDS 자료 및 가격리스트가 피해회사에서 비밀로 유지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서울동부지방법원 2023. 11. 10. 선고 2022노1404 판결,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도13791 판결).
다만 법원은 피해회사의 가격리스트는 피해회사의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는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핵심 포인트 — 반드시 알아야 할 4가지
① 2019년 부경법 개정으로 ‘합리적인 노력’ 요건은 삭제되었지만, 최소한의 비밀관리조치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현행 부경법 제2조 제2호는 영업비밀의 비밀관리성 요건을 단순히 ‘비밀로 관리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그러나 이 판결은 법이 완화되었다고 하여 아무런 관리 조치 없이도 영업비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일반정보들과 구별되는 일정한 수준의 비밀관리조치, 즉 비밀 표시, 접근 제한, 담당자 결재 등이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도13791 판결).
② 비밀관리조치는 회사 전체에 대한 일반적 보안 조치가 아니라 특정 자료에 대한 구체적 조치이어야 합니다.
이 판결에서 법원은 지문인식장치, CCTV 설치 등의 물리적 보안 조치는 외부인의 출입 통제를 위한 것이지 특정 문서에 대한 접근 제한 조치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취업규칙상의 일반적·추상적 영업비밀 누설 금지 조항만으로는 비밀관리성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영업비밀로 보호받으려는 자료에는 ‘Confidential’ 등의 비밀 표시, 담당자 결재, 접근 권한 제한 등 해당 자료에 특화된 비밀관리조치가 필요합니다.
③ 비공지성과 경제적 유용성이 인정되더라도 비밀관리성이 없으면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이 사건에서 항소심 법원은 MSDS 자료와 가격리스트의 비공지성과 경제적 유용성은 인정하면서도 비밀관리성을 부정하여 영업비밀 해당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영업비밀의 세 가지 요건(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은 모두 충족되어야 하며,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대법원 2008. 2. 15. 선고 2005도6223 판결).
④ 영업비밀로 보호받지 못하더라도 ‘영업상 주요한 자산’으로서 업무상배임죄의 객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 판결에서 법원은 가격리스트가 영업비밀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피해회사의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는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영업비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자료라도 업무상배임죄의 객체인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퇴사 시 이를 반환하거나 폐기하지 않고 보관하는 행위는 업무상배임죄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 기업 입장에서는 영업비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자료에 대해서도 업무상배임죄를 통한 보호를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며 — “법이 완화되었다고 해서 관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 영업비밀은 스스로 지키는 자만이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이 판결은 부경법 개정으로 영업비밀의 비밀관리성 요건이 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반정보와 구별되는 최소한의 비밀관리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비밀 표시, 담당자 결재, 접근 권한 제한 등 해당 자료에 특화된 비밀관리조치 없이는 아무리 중요한 자료라도 영업비밀로 보호받기 어렵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① 영업비밀로 보호받으려는 자료에 ‘Confidential’ 등의 비밀 표시 부착, ② 해당 자료에 대한 접근 권한 제한 및 담당자 결재 체계 구축, ③ 임직원에 대한 구체적인 비밀유지서약서 징구, ④ 퇴사 시 자료 반환·폐기 확인 절차 마련이 필수적입니다.
“회사의 중요한 자료가 영업비밀로 보호받으려면, 그 자료를 영업비밀로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인식 가능한 상태이어야 합니다. 법이 완화되었다고 해서 관리를 소홀히 하면, 법원은 그 자료를 영업비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서울동부지방법원 2023. 11. 10. 선고 2022노1404 판결,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제11조·제18조 제2항, 형법 제356조·제355조 제2항, 대법원 2008. 2. 15. 선고 2005도6223 판결,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도13791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