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비밀 공동보유자의 사용 권한-내 기술인데 상대방도 쓴다

“우리가 함께 만든 기술인데, 내 동의 없이 다른 업체에 넘겨줬습니다.” 이 주장, 법원에서 받아들여졌을까요? 영업비밀의 ‘공동보유’라는 개념이 실무에서 얼마나 복잡한 문제를 낳는지, 대법원 판결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 영업비밀 공동보유 사건

영업비밀 공동보유-상생 권리침해
영업비밀 공동보유-상생 권리침해

■ 사실관계 요약

이 사건은 OLED 디스플레이 생산용 진공이송시스템(VTS) 도면을 둘러싼 영업비밀 침해 분쟁입니다.

디스플레이 제조사 E는 피고 주식회사 B와 VTS 총 66대 공급 계약을 체결하였고, 피고는 VTS 제조업체인 원고 A 주식회사와 1차분 23대 제작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원고와 피고는 상대방의 기술자료 중 업무상 비밀을 계약 기간 및 종료 후에도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약정하였습니다.

원고는 기존에 F사로부터 제공받은 VTS 도면을 기초로 변경·추가 작업을 통해 이 사건 기술정보를 작성하였고, 이에 대해 다운로드 이력 관리, 접근자 통제, 임직원 비밀유지서약서 징구, 거래업체와의 비밀유지계약 체결 등 비밀관리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그런데 2016년 7월경 원고가 1차분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추가 비용 보전 협의가 결렬되자 나머지 2·3차분 제작을 포기하였고, 피고는 다른 거래업체들(주식회사 R 등)과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한 뒤 이 사건 기술정보가 포함된 도면을 사용하여 나머지 43대를 제작·공급하였습니다.

원고는 이것이 영업비밀 침해에 해당한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 쟁점 정리

본 사건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 사건 기술정보의 영업비밀 보유자는 누구인가?

원고와 피고 중 누가 이 사건 기술정보의 영업비밀 보유자인지, 또는 양자가 공동보유자인지가 문제되었습니다. 영업비밀로 인정되려면 비공지성, 독립된 경제적 가치, 비밀관리성이 모두 충족되어야 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둘째, 피고의 행위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3호 (라)목의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하는가?

(라)목은 “계약관계 등에 따라 영업비밀을 비밀로서 유지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자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그 영업비밀의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그 영업비밀을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영업비밀 침해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라목). 피고가 거래업체에 이 사건 기술정보를 사용하게 한 행위가 이에 해당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 판시 내용

가. 영업비밀 보유자 판단

법원은 이 사건 기술정보가 원고의 영업비밀에는 해당하지만, 피고의 영업비밀로는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원고는 F 도면을 기초로 변경·추가 작업을 통해 이 사건 기술정보를 작성하였고, 이는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지 않았으며, 다운로드 이력 관리·접근자 통제·비밀유지서약서 징구 등 합리적인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되어 왔으므로 원고의 영업비밀에 해당합니다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도13791 판결).

반면 피고에 대해서는, 이 사건 기술정보가 원고와 피고에게 공동으로 귀속되는 정보이기는 하나, 피고가 거래업체와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피고가 합리적인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피고의 영업비밀로는 평가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원심이 피고의 비밀관리 여부를 살피지 않은 채 피고를 영업비밀의 공동보유자로 판단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대법원은 지적하였습니다. 영업비밀의 공동보유자가 되려면 단순히 해당 정보에 관여하였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스스로도 비밀관리 노력을 기울였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나. (라)목 영업비밀 침해행위 해당 여부

법원은 피고의 행위가 (라)목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사용제한 약정의 부존재

원고와 피고 사이의 계약에서 비밀유지의무는 약정하였으나, 이 사건 기술정보의 사용 자체를 제한하는 별도의 약정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피고가 반드시 원고의 동의를 받고 이 사건 기술정보를 사용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영업비밀 보유자가 거래 상대방에게 영업비밀을 사용하도록 승낙하는 의사표시는 묵시적으로도 가능하며, 그 존재는 계약의 내용, 관련 분야의 거래 실정, 당사자의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합니다 (대법원 2019. 1. 31. 선고 2017다284885 판결 손해배상(기)).

② 피고의 행위는 자신의 계약상 의무 이행을 위한 것

피고는 원고가 2·3차분 제작을 포기하자 E에 대한 공급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거래업체에 비밀유지의무를 부과하고 이 사건 기술정보를 사용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피고 스스로 이 사건 기술정보를 사용한 것과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③ 부정한 목적의 부존재

(라)목 침해행위가 성립하려면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영업비밀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라목). 피고의 행위는 계약상 공급의무 이행을 위한 것으로, 이러한 부정한 목적이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다. 대법원의 결론

대법원은 원심이 피고의 비밀관리 여부를 살피지 않은 채 공동보유자로 판단한 부분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도, 피고의 행위가 (라)목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정당하다고 보아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대법원 2024. 11. 14. 선고 2021다289399 판결).

영업비밀 공동보유 법률 쟁점
영업비밀 공동보유 법률 쟁점

■ 핵심 포인트 — 반드시 알아야 할 3가지

① 영업비밀의 공동보유자가 되려면 ‘비밀관리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해당 기술정보의 작성에 관여하였거나 그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영업비밀의 공동보유자가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도 합리적인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하였어야 비로소 공동보유자로 인정됩니다. 거래업체와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이 판결은 명확히 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② 비밀유지의무와 사용제한의무는 다릅니다.

계약에서 비밀유지의무를 약정하였다고 하여 자동으로 사용제한의무까지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용 자체를 제한하려면 별도의 명시적 약정이 필요합니다. 영업비밀 관련 계약을 체결할 때 비밀유지의무와 함께 사용범위·사용목적·제3자 제공 금지 등을 구체적으로 약정해 두지 않으면 분쟁 발생 시 보호받기 어렵습니다 (대법원 2019. 1. 31. 선고 2017다284885 판결 손해배상(기)).

③ (라)목 침해행위는 ‘부정한 목적’이 핵심입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3호 (라)목의 영업비밀 침해행위는 단순한 비밀유지의무 위반이 아니라,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이라는 주관적 요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계약상 의무 이행을 위한 불가피한 사용은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라목).

■ 마치며 — 계약서 한 줄이 수억 원의 분쟁을 막습니다

이 판결이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계약 단계에서의 철저한 준비입니다.

원고는 비밀유지의무를 약정하였지만, 정작 “이 기술정보를 제3자에게 사용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용제한 조항을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자신이 공들여 만든 기술이 다른 업체에 의해 사용되는 상황을 법적으로 막지 못하였습니다.

영업비밀을 거래 상대방에게 제공할 때는 반드시 ① 비밀유지의무, ② 사용목적 및 범위 제한, ③ 제3자 제공 금지, ④ 계약 종료 후 반환·폐기 의무를 계약서에 명확히 규정해야 합니다.

기술은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계약서 한 줄의 차이가 수억 원의 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 이 판결이 다시 한번 일깨워 줍니다.

(대법원 2024. 11. 14. 선고 2021다289399 판결,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제3호 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