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전송된 파일인데, 웹하드에 저장된 줄 몰랐어요.” 이 한 마디가 법정에서 통할까요? 회사가 영업비밀 파일을 지워달라고 요청했는데 삭제하지 않고 보관했다면, 그것만으로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영업비밀 계속 보유 행위!
이 판결은 영업비밀을 ‘훔친’ 것도 아니고 ‘유출’한 것도 아닌, 단순히 ‘계속 보유’한 행위에 대해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사건입니다. 부정경쟁방지법이 2019년 개정되면서 신설된 ‘계속 보유’ 처벌 조항이 실제 형사재판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판결입니다.

1. 사실관계 요약
피고인 A는 3D프린터 신소재 관련 레진(Resins) 제품을 제조·판매하는 피해 회사에서 해외 영업 등을 담당하던 직원이었습니다.
제1범행(영업비밀 계속 보유)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해 회사 직원 D가 원재료의 혼합비율 등의 정보가 담긴 영업비밀 파일 4개를 피고인의 이메일로 잘못 전송하였고, D는 피고인에게 해당 파일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피고인은 이메일에서는 파일을 삭제하였으나, 자신의 이메일 계정과 연동되는 웹하드에 저장된 파일은 삭제하지 않은 채 계속 보관하였습니다. D에게도 이메일이 웹하드와 연동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습니다.
제2범행(영업상 주요자산 미반환)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인은 업무상 취득한 피해 회사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파일 19개를 자신의 이메일 계정과 연동되는 웹하드에 저장하여 보관하다가, 퇴사 후 사용할 목적으로 퇴사 시 이를 피해 회사에 반환하거나 폐기하지 않고 2020. 7.경까지 계속 보관하였습니다.
특히 피고인은 퇴사 3일 후 동거녀에게 “B파일을 모두 정리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법원은 피고인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하였습니다.
2. 쟁점 정리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가. 피고인에게 영업비밀 침해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
피고인은 이메일에 연동된 웹하드에 영업비밀 파일이 저장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여 삭제하지 않은 것에 불과하므로, 영업비밀을 취득한다는 인식이 없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적용된 구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8조 제2항, 제1항 제1호 다목은 “영업비밀 보유자로부터 영업비밀을 삭제하거나 반환할 것을 요구받고도 이를 계속 보유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으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8조 제1항 제1호 다목), 피고인이 이 요건을 충족하는 고의가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나. MSDS 파일이 ‘영업상 주요자산’에 해당하는지 여부
피고인은 MSDS 파일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자료이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도 없으므로 영업상 주요자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업무상배임죄로 의율하기 위해서는 해당 자료가 적어도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하여야 하는데 (대법원 2008. 4. 24. 선고 2006도9089 판결), MSDS 파일이 이 요건을 충족하는지가 두 번째 쟁점이었습니다.
3. 판시 내용
가. 고의 인정 — 정황 증거의 종합적 판단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피고인에게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첫째, 피고인은 D로부터 영업비밀 파일을 지워줄 것을 요청받았음에도 이메일에 연동된 웹하드에 저장된 파일을 지우지 않았고, D에게도 이메일이 웹하드와 연동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위 사건으로 D가 징계처분을 받았고 피고인도 이를 인식하였음에도 웹하드에 저장된 영업비밀 파일을 삭제하지 않았습니다. D가 징계를 받을 정도로 중요한 사안임을 알면서도 파일을 보유한 것은 단순한 부주의로 보기 어렵습니다.
셋째, 피고인이 퇴사 3일 후 동거녀에게 “B파일을 모두 정리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사실은, 피고인이 영업비밀 파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퇴사 후 이를 이용할 목적이 있었음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자신이 이 사건 영업비밀 파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퇴사 후 피해 회사의 영업비밀을 이용할 목적으로 이를 삭제하지 않고 보유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고의가 없었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대법원 2016. 6. 23. 선고 2014도11876 판결).
나. MSDS 파일의 영업상 주요자산 해당 여부 — 인정
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MSDS 파일이 영업상 주요자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첫째, 피해 회사는 안전보건공단에 MSDS 자료를 등록한 바 없고, 비밀보호협약을 체결한 고객들에게만 MSDS 자료를 제공하였으므로, 이 사건 파일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둘째, 이 사건 각 파일에는 피해 회사가 생산하는 레진 제품의 구성부분, 대략적인 성분비, 경화조건, 사용방법, 물질안전데이터 등이 기재된 것으로, 그 작성에 있어 피해 회사의 비용과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면, MSDS 파일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지 않았고 사용자가 상당한 시간, 노력 및 비용을 들여 제작한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대법원 2008. 4. 24. 선고 2006도9089 판결).
다. 적용 법조 — ‘계속 보유’ 처벌 조항의 적용
이 사건에서 제1범행에 대해서는 구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8조 제2항, 제1항 제1호 다목(“영업비밀 보유자로부터 영업비밀을 삭제하거나 반환할 것을 요구받고도 이를 계속 보유하는 행위”)이 적용되었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8조 제1항 제1호 다목). 이는 2019. 1. 8. 법률 제16204호로 개정된 부정경쟁방지법에서 신설된 조항으로, 종전에는 처벌의 공백이 있었던 ‘삭제·반환 요구 불응 후 계속 보유’ 행위를 명시적으로 처벌 대상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제2범행에 대해서는 업무상배임죄가 적용되었습니다. 회사 임직원이 영업비밀이나 영업상 주요한 자산인 자료를 적법하게 반출하여 그 반출행위가 업무상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도, 퇴사 시에 그 영업비밀 등을 회사에 반환하거나 폐기할 의무가 있음에도 스스로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할 목적으로 이를 반환하거나 폐기하지 아니하였다면 업무상배임죄에 해당합니다 (대법원 2016. 6. 23. 선고 2014도11876 판결, 대법원 2008. 4. 24. 선고 2006도9089 판결)

4. 핵심 포인트
가. 2019년 개정 부정경쟁방지법 — ‘계속 보유’ 행위가 독립적 처벌 대상이 되다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2019년 개정 부정경쟁방지법 제18조 제1항 제1호 다목의 ‘계속 보유’ 처벌 조항이 실제 형사재판에서 적용된 사례라는 점입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8조 제1항 제1호 다목). 종전에는 영업비밀을 ‘취득·사용·누설’하는 행위만 처벌 대상이었으나, 개정법은 삭제·반환 요구를 받고도 계속 보유하는 행위 자체를 독립적인 처벌 대상으로 명시하였습니다. 이는 퇴사 직원이 영업비밀을 보유하면서도 아직 사용하지 않은 단계에서도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 ‘웹하드 연동’ 등 기술적 구조를 이용한 고의 부인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
피고인은 이메일에 연동된 웹하드에 파일이 저장된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① 삭제 요청을 받은 사실, ② 관련자의 징계 인식, ③ 퇴사 후 메시지 내용이라는 세 가지 정황 증거를 종합하여 고의를 인정하였습니다. 기술적 구조를 이용한 고의 부인 주장은 주변 정황 증거에 의해 쉽게 배척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다. MSDS 파일도 영업상 주요자산이 될 수 있다 — 비공개 관리가 핵심
이 판결은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와 같이 일반적으로 공개 의무가 있는 자료도, 회사가 비밀보호협약을 체결한 고객에게만 제공하는 방식으로 비공개 관리를 하였다면 영업상 주요자산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자료의 종류보다 실제 관리 방식이 영업상 주요자산 해당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임을 확인한 판결입니다 (대법원 2008. 4. 24. 선고 2006도9089 판결).
라. 퇴사 후 메시지·카카오톡 등 디지털 증거가 결정적 증거가 된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의 고의를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퇴사 3일 후 동거녀에게 보낸 메시지였습니다. 퇴사 전후에 주고받은 메시지, 이메일, SNS 내용은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고의 및 목적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영업비밀 관련 분쟁에서 디지털 포렌식을 통한 증거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마. 실무적 시사점 — 영업비밀 ‘계속 보유’ 분쟁 체크리스트
| 점검 사항 | 이 사건에서의 시사점 |
|---|---|
| 삭제·반환 요구 방법 | 서면 또는 이메일로 명확히 요구하고 증거 보존 |
| 웹하드·클라우드 연동 여부 | 삭제 요구 시 연동 저장소 포함 명시 필요 |
| MSDS 등 공개 의무 자료 | 비밀보호협약 체결 후 제공 시 영업상 주요자산 인정 가능 |
| 퇴사자 디지털 증거 | 메시지·이메일 등 디지털 포렌식 적극 활용 |
| 적용 법조 | 삭제·반환 요구 불응 시 부정경쟁방지법 제18조 제1항 제1호 다목 적용 가능 |
| 업무상배임죄 병합 | 영업상 주요자산 미반환 시 업무상배임죄 병합 적용 가능 |

마치며 — “몰랐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습니다
이 판결은 영업비밀 보호의 전선이 ‘유출’에서 ‘보유’로까지 확장되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2019년 개정 부정경쟁방지법은 삭제·반환 요구를 받고도 계속 보유하는 행위 자체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였고, 이 판결은 그 조항이 실제 형사재판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 중 하나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영업비밀 파일의 삭제·반환 요구를 서면으로 명확히 하고, 웹하드·클라우드 등 연동 저장소까지 포함하여 삭제를 요구하는 절차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퇴직 예정자 입장에서는 회사로부터 삭제·반환 요구를 받은 순간, 그 파일이 어디에 저장되어 있든 즉시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형사처벌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