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비밀변호사-고객사 제안서 산업기술 유출?

“고객사에 제안서를 드렸는데, 그 안에 우리 기술 내용이 일부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술은 이미 공개된 것 아닌가요?”
고객사 제안서 영업비밀 분쟁
많은 기업들이 영업 활동 과정에서 기술 정보가 담긴 제안서를 고객사에 제공합니다. 그런데 이 판결은 충격적인 사실을 보여줍니다. 고객사에 제공한 제안서에 산업기술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그 기술이 산업기술보호법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회사의 설계팀장이 퇴사하면서 14,913개의 파일을 유출한 이 사건은, 영업자료와 산업기술의 관계, 그리고 산업기술보호법의 보호 범위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지금부터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고객사 제안서가 산업기술 유출-영업비밀 변호사
고객사 제안서가 산업기술 유출-영업비밀 변호사

1. 사실관계 요약

피해회사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관련 장비를 개발·생산하는 회사로, 피해회사의 「패널 마스크 세정공정 기술」은 산업통상자원부 고시에 의해 첨단기술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피고인 A는 피해회사의 설계팀장으로 근무하다가 피해회사의 협력업체인 주식회사 D로 이직하였습니다. 이직 과정에서 피고인 A는 피해회사의 장비 설계도, 개선 방법, 사양서, 구성도 등 기술파일을 개인 소유 외부저장장치에 담아 유출하였습니다. 나아가 피고인 A는 동종업체로의 이직을 준비하면서 피해회사의 영업비밀 내지 영업상 주요한 자료 합계 14,913개의 파일을 이메일 첨부 또는 해외 출장 명목으로 피해회사 공용 노트북을 이용하여 개인 외부저장매체로 옮기는 방법으로 유출하였습니다. 유출한 산업기술을 이용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이를 주식회사 I의 운영자 J에게 송부하는 방법으로 산업기술을 사용함과 동시에 누설하기도 하였습니다.

피고인 B는 피해회사 설계팀 소속으로 주로 도면 작성 업무에 종사하였습니다. 피고인 B는 해외 출장용으로 지급받은 피해회사의 공용 노트북에 있는 영업비밀인 도면을 외부저장장치를 이용하여 다운받고, 퇴사 후 피해회사의 협력업체인 D의 컴퓨터에 저장하는 방법으로 반출하는 등 총 71개의 도면을 반출하였습니다.

법원은 피고인 A와 B 모두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습니다.

2. 쟁점 정리

가. 이 사건 기술파일이 산업기술보호법상 산업기술에 해당하는지 여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기법’) 제2조 제1호는 산업기술을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관련 산업의 성장잠재력이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 및 국민경제의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로 정의합니다. 이 사건 기술파일이 이러한 산업기술에 해당하는지, 특히 고객사에 제공한 제안서에 그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는 사정이 산업기술 해당성에 영향을 미치는지가 첫 번째 쟁점입니다.

나. 영업자료에 산업기술이 포함된 경우 산기법의 보호 대상이 되는지 여부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자료 중 일부는 고객사에 제공한 제안서 등 영업자료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업자료로서의 성격을 가진 자료가 동시에 산기법의 보호 대상인 산업기술에 해당할 수 있는지, 즉 영업자료와 산업기술의 성격이 양립 가능한지가 두 번째 쟁점입니다.

다. 산업기술의 유출 및 누설·사용 행위가 성립하는지 여부

피고인 A가 보안정책 해제 요청서를 제출하지 않은 채 기술파일을 개인 USB에 옮기고 퇴사 후에도 삭제하지 않은 행위, 그리고 이를 제3자에게 송부한 행위가 산기법상 산업기술의 유출 및 누설·사용에 해당하는지가 세 번째 쟁점입니다.

라. 이 사건 자료가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에도 해당하는지 여부

산기법상 산업기술과 달리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경법’)상 영업비밀은 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이 사건 자료가 부경법상 영업비밀의 요건도 충족하는지가 네 번째 쟁점입니다.

고객사 제안서 분쟁-2018고단2059
고객사 제안서 분쟁-2018고단2059

3. 판시 내용

가. 산업기술 해당성 — 인정

법원은 먼저 산기법상 산업기술의 보호 요건에 관한 법리를 정리하였습니다.

산기법상 보호받는 산업기술은 비밀을 유지하거나 보호할 가치가 있는 대상기관 고유의 산업기술이어야 하고, 이미 적법하게 공개되어 비밀을 유지하거나 보호할 가치가 없는 기술은 산기법상 산업기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산업기술은 부경법상 영업비밀과 달리 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을 별도로 요구하지 않고, 산기법 제2조 제1호 각 목의 요건을 갖춘 이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밀유지의무의 대상이 됩니다.

법원은 이 사건 기술파일들에 대하여 ① 산업통상자원부가 발급한 첨단기술제품 확인서, ② 첨단기술 및 제품의 범위 해당 여부 질의에 대한 회신, ③ 감정인의 감정결과를 종합하여 이 사건 기술파일들이 첨단기술로서 산기법의 보호 대상이 되는 산업기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 제안서 공개와 산업기술 해당성의 관계 — 산업기술성 유지

법원은 고객사에게 제공한 제안서에 그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는 사정만으로 산업기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이는 대법원 2013도12266 판결의 법리를 따른 것으로, 산업기술의 내용 일부가 제안서 등을 통해 외부에 공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산업기술이 전부 공개된 것이 아닌 이상 산기법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 영업자료와 산업기술의 양립 가능성 — 인정

법원은 영업자료라고 하더라도 그 내부에 산업기술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면 산기법의 보호 대상이 되는 ‘산업기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아가 영업자료로서의 성격과 산업기술의 성격이 반드시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명시적으로 판시하였습니다. 즉, 하나의 자료가 영업자료인 동시에 산업기술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라. 산업기술의 유출 및 누설·사용 행위 성립

법원은 피해회사가 카드인식 방식의 시건장치가 설치된 문서고에 오프라인 문서를 보관하고, PC 서버에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여 개인 USB 내지 외장하드의 쓰기 기능을 차단하는 등 보안 조치를 취하고 있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피고인 A는 보안정책 해제 요청서를 제출하지 않은 채 피해회사 보안정책에 반하여 기술파일을 본인 소유 USB에 옮겼고, 퇴사 후에도 이를 삭제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유출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아가 피고인 A가 업무 중 메일의 ‘내게쓰기’ 기능을 이용하여 파일을 전송한 후 퇴사 시 삭제하지 않고 보관한 행위도 유출로 인정되었습니다. 유출한 산업기술을 이용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제3자에게 송부한 행위는 산업기술의 사용 및 누설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기업 영업비밀 김정민 변호사
기업 영업비밀 김정민 변호사

4. 핵심 포인트

가. 산기법상 산업기술은 부경법상 영업비밀보다 보호 요건이 완화되어 있다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산기법상 산업기술과 부경법상 영업비밀의 보호 요건이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부경법상 영업비밀은 비공지성·경제적 유용성·비밀관리성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지만, 산기법상 산업기술은 이러한 요건을 별도로 요구하지 않습니다. 산기법 제2조 제1호 각 목의 요건을 갖춘 이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밀유지의무의 대상이 됩니다. 따라서 첨단기술로 지정된 기술은 비밀관리 조치가 다소 미흡하더라도 산기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나. 제안서·영업자료에 기술 정보를 담을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 판결은 고객사에 제공한 제안서에 산업기술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더라도 그 기술의 산업기술성이 유지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첫째, 제안서에 핵심 기술 정보를 담을 때는 그 공개 범위와 방법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둘째, 경쟁사의 제안서에 자사 기술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면 그것이 산기법 위반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다. ‘내게쓰기’ 기능을 이용한 파일 전송도 유출이 될 수 있다

이 판결은 업무 중 이메일의 ‘내게쓰기’ 기능을 이용하여 파일을 전송한 후 퇴사 시 삭제하지 않고 보관하는 행위도 산업기술 유출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많은 직원들이 ‘내게쓰기’는 자신에게 보내는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퇴사 후에도 삭제하지 않고 보관하면 유출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라. 산업기술 보호를 위한 기업의 실무적 체크리스트

관리 항목이 사건에서의 조치추가 권장 조치
물리적 보안카드인식 시건장치 문서고접근 이력 기록·관리
디지털 보안USB 쓰기 기능 차단이메일 외부 발송 모니터링
퇴사자 관리보안정책 해제 요청서퇴사 전 보유 파일 전수 점검
제안서 관리미흡제안서 내 기술 정보 공개 범위 설정
비밀유지서약확인 필요입사·퇴사 시 서약서 징구
기술 지정 관리첨단기술 확인서 보유정기적 산업기술 목록 갱신

마치며 — 영업자료와 산업기술, 그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가깝습니다

이 판결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기술 분야의 기업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고객사에 제안서를 제공하는 것은 일상적인 영업 활동이지만, 그 제안서에 산업기술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 기술은 여전히 산기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영업자료와 산업기술의 성격은 양립 가능하며, 하나의 자료가 동시에 두 가지 성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이 판결은 퇴사를 준비하는 직원이 ‘내게쓰기’ 기능이나 개인 USB를 이용하여 파일을 반출하는 행위가 얼마나 심각한 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기업은 평소에 철저한 보안 체계를 구축하고, 특히 퇴사자 관리와 제안서 내 기술 정보 공개 범위 설정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산업기술 보호는 사후 소송이 아니라 사전 예방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