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를 입히려는 의도는 없었어요, 그냥 자랑하고 싶었을 뿐인데요”
자동차 부품 협력사 직원이 업무상 받은 완성차 회사의 신차개발일정표 네이버 카페 자유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신차개발일정표 공유 사건
동호회 회원들에게 자신의 정보력을 과시하고 싶었을 뿐, 회사에 손해를 입히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원심 법원도 이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그런데 항소심은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과시욕과 손해에 대한 미필적 인식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 판결은 영업비밀 누설죄에서 ‘부정한 목적’이 어떻게 인정되는지, 그리고 ‘손해를 입힐 의도가 없었다’는 항변이 왜 통하지 않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1. 사실관계 요약
피고인은 완성차 회사(피해자 회사)의 2차 협력사인 F의 경영지원실장이었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 회사의 1차 협력사인 E의 직원 D로부터 업무상 피해자 회사의 신차개발일정표를 교부받았습니다. 이 자료에는 ‘대외비’라는 표시가 명확히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이 신차개발일정표를 F 사무실에서 스캔하여 JPG 파일로 만든 다음, 인터넷 네이버 카페 ‘H’의 자유게시판에 게시하였습니다. 해당 카페는 가입 신청을 하면 별다른 조건이나 제한 없이 가입이 수락되어 사실상 누구나 게시물을 열람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제3자가 해당 자료를 다운로드하여 또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 I 게시판에 재게시하기도 하였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의 정보력을 과시하려는 과시욕에서 게시하였을 뿐, 피해자 회사에 손해를 가한다는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원심(대구지방법원 2016. 11. 11. 선고 2016고단3229)은 피고인에게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영업비밀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이 미필적으로라도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고, 이에 검사가 항소하였습니다.
항소심은 원심을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하였습니다.
2. 쟁점 정리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하나였습니다.
피고인에게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상 영업비밀 누설죄의 구성요건인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영업비밀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이 인정되는가?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 세부 쟁점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첫째, 피고인이 ‘과시욕’에서 자료를 게시하였다는 사정이 손해를 입힐 목적의 인정을 배제하는지입니다.
둘째, 손해를 입힐 목적은 확정적 고의가 필요한지, 아니면 미필적 고의로도 충분한지입니다. 원심과 항소심이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 핵심 분기점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3. 판시 내용
가. 부정한 목적 인정 — 원심 파기
항소심은 다음 네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인에게 부정한 목적을 인정하였습니다.
① 자료의 대외비 표시와 피고인의 인식
피고인이 D로부터 신차개발일정표를 교부받을 당시 해당 자료에는 ‘대외비’라고 명확히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D는 증인으로 출석하여 “자료에 대외비 도장이 찍혀 있었기 때문에 이를 외부에 유출하면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하므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피고인이 이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피고인이 해당 자료의 비밀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② 협력사 보안교육을 통한 사전 인지
피해자 회사는 수회에 걸쳐 각 협력사를 대상으로 보안관리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이 사건 이전에 이미 ‘피해자의 영업비밀인 신차 출시일정이 2차 협력사 직원에 의하여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된 사례’, ‘피해자의 대외비 자료가 인터넷 카페에 무단 업로드되어 유출된 사례’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1차 협력사에 대하여 이를 2·3차 협력사에게도 지속적·반복적으로 공유·전파할 것을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2차 협력사의 경영지원실장인 피고인이 이러한 보안교육 내용을 전혀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③ 인터넷 카페의 개방성과 확산 위험성
해당 네이버 카페는 가입 신청만 하면 사실상 누구나 게시물을 열람할 수 있는 곳이었고,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속성상 일단 자료가 게시되면 손쉽게 복사하여 다른 인터넷 공간에 재게시되어 급속히 유출·확산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도 제3자가 해당 자료를 다운로드하여 또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 재게시하였습니다.
④ 과시욕과 미필적 고의의 양립 가능성 — 핵심 판시
법원은 피고인의 ‘과시욕’ 항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습니다. 영업비밀은 공개되어 피해자 회사가 원하지 않는 시기에 일반인이 지득하게 되는 경우 그 자체가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 내지 그 발생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설령 과시욕에서 자료를 게시하였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나머지 ‘피해자 회사가 손해를 입을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누설행위를 한 것이라면, 그와 같은 행위의 동기와 손해에 대한 미필적 인식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피고인이 주장하는 과시욕은 영업비밀 누설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는 데 장애가 되는 사정에 해당하기 어렵다고 판시하였습니다.
4. 핵심 포인트
이 판결에서 실무적으로 반드시 기억해야 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구분 | 내용 |
|---|---|
| ‘부정한 목적’은 미필적 고의로 충분 | 손해를 입히겠다는 확정적 의도가 없어도,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인식 + 그래도 상관없다는 용인’이 있으면 목적 인정 |
| 과시욕 ≠ 면책 사유 | 과시욕이라는 동기와 손해에 대한 미필적 인식은 양립 가능 — 동기가 순수해도 결과에 대한 미필적 인식이 있으면 범죄 성립 |
| 대외비 표시의 법적 의미 | 자료에 ‘대외비’ 표시가 있으면 수령자는 비밀성을 인식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별도의 구두 경고가 없어도 비밀유지 의무 인정 |
| 인터넷 게시의 위험성 | 개방형 인터넷 카페 게시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개로서 영업비밀 누설에 해당하며, 실제 확산 여부와 무관하게 게시 시점에 누설 완성 |
| 2·3차 협력사도 보안 의무 부담 | 완성차 회사의 직접 계약 상대방이 아닌 2차 협력사 직원도 보안교육 내용을 통해 비밀유지 의무를 인식할 수 있음 |
| 영업비밀 공개 자체가 손해 | 피해자 회사가 원하지 않는 시기에 영업비밀이 공개되는 것 자체가 손해 — 실제 경쟁사 유출이나 금전적 피해 발생을 별도로 입증할 필요 없음 |

“그냥 자랑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말이 법정에서 통하지 않는 이유
이 판결은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원칙을 확인하였습니다. 범죄의 성립에 필요한 ‘목적’은 확정적 의도일 필요가 없습니다.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행동하였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업무상 취득한 회사의 대외비 자료를 SNS, 카페, 커뮤니티에 올리는 행위는 설령 악의가 없더라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협력사 직원이라면 완성차 회사나 원청 회사의 보안정책이 자신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하여야 합니다.
대외비 자료를 받았다면 그 순간부터 비밀유지 의무가 시작됩니다. “나는 손해를 입히려 한 게 아니었다”는 말은, 이 판결이 보여주듯, 법정에서 유효한 방어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