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투자한 회사가 위기에 빠졌을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추가 투자에 참여하면 손실이 더 커질 수 있고, 그렇다고 참여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쌓아온 우선주의 권리가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페이투플레이(Pay-to-Play) 조항이 만들어내는 딜레마입니다.
2023년 이후 한국 스타트업 시장은 급격한 냉각기를 맞았습니다. 고금리·고물가·투자 심리 위축이 겹치면서 수많은 기업이 기존보다 낮은 기업가치로 투자를 받는 다운라운드(Down Round) 로 내몰렸구요.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투자계약서 한 켠에 조용히 잠들어 있던 조항이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법체계에서 페이투플레이 조항은 어떻게 설계되고, 어떤 법적 쟁점을 내포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피투자회사와 투자자는 각각 어떤 전략으로 이 조항에 접근해야 할까요?
지금부터 그 답을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1. 들어가며
2023년 이후 한국 스타트업 시장에서 다운라운드가 빠르게 늘면서, 한동안 미국식 투자계약 조항으로만 인식되던 페이투플레이(Pay-to-Play, 이하 ‘PTP’) 조항이 한국 투자계약서에서도 현실적인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PTP 조항은 단순한 투자자 페널티 조항이 아닙니다. 회사가 어려운 국면에서 후속 자금을 조달해야 할 때, 기존 투자자에게 “함께 책임을 부담할 것인지”를 묻고, 그 답에 따라 기존 투자자가 보유한 우선주의 권리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결정되는 지분구조 재편 장치입니다.
이하에서는 PTP 조항의 의의와 법적 구조, 미국과 한국의 구현 방식 차이, 그리고 실무상 법적 쟁점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페이투플레이 조항의 의의
가. 도입 배경
다운라운드나 리캡(Recapitalization) 국면에서는 단순히 회사의 주식 가치가 낮아졌다는 사실보다, 기존에 발행된 우선주에 포함된 전환권·잔여재산분배우선권·상환권 등 여러 겹으로 쌓여 있는 선행 투자자의 권리가 신규 투자자의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투자회사는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해 기존 투자자들도 지분비례(pro rata)로 후속 투자에 참여해 함께 자금을 보태야 한다는 취지로 PTP 권리를 행사하게 됩니다.
나. 조항의 이중적 기능
PTP 조항은 다음과 같은 이중적 기능을 수행합니다.
- 피투자회사 입장: 생존을 위한 신규 자금 유입을 가능하게 하는 투자계약상 장치
- 투자자 입장: 재정적 위기 시 후속 투자 책임을 함께 지는 투자자에게는 권리를 유지시키고, 그렇지 않은 투자자에게는 권리를 축소하는 장치
반대로 후속 투자에 참여하지 않는 투자자는 보유한 우선주를 보통주 또는 권리가 축소된 다운그레이드 우선주로 전환당하거나 특정 권리를 상실하게 됩니다.
다.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에서의 의미
스타트업 투자시장 경색기에는 신규 투자자도 상당한 위험을 부담하면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 투자자가 후속 지원 없이 권리만 유지하는 구조는 신규 투자자 입장에서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PTP 조항은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는 기능을 합니다.
다만, 초기 투자자·엔젤 투자자·창업기획자(액셀러레이터)처럼 추가 투자 여력이 부족한 투자자에게는 과도한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3. 페이투플레이 조항의 법적 구조
가. 핵심 설계 요소 세 가지
PTP 조항을 설계할 때 핵심 쟁점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1) 트리거(Trigger) 조건의 설정
단순히 후속 투자 전반에 적용하면 악용 가능성이 커지고 반발도 심해집니다. 실무에서는 다운라운드 또는 적격투자(Qualified Financing) 와 같은 구체적인 조건을 두어 적용 범위를 좁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특히 소규모 중간투자 라운드인 브릿지 라운드까지 모두 PTP의 트리거로 두게 되면, 특정 투자자가 의도적으로 라운드를 쪼개서 미참여 투자자의 권리를 박탈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적격 투자의 조건으로 △최소 금액 △신규 현금 유입 여부 △다운라운드 정의 △전환증권 포함 여부를 엄격하게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참여 기준의 설정
전형적으로 완전희석 기준, 즉 보유 지분 비율에 따른 후속 투자 참여를 요구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일정 비율 참여 △최소 금액 △주요 투자자에게만 후속 투자 의무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정하기도 합니다.
후속 투자 참여 기준이 완전희석 기준인지, 아니면 이미 발행된 주식을 기준으로 하는지 여부 등을 명확하게 정해야 기존 투자자가 본인의 지분율에 따라 투자를 모두 이행했는지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3) 페널티 방식의 설계
가장 강한 형태의 PTP 페널티는 우선주를 보통주로 강제 전환하여 △상환권 △전환권 △배당우선권 △잔여재산분배우선권 등의 권리를 한 번에 없애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는 너무 과도하다고 해석될 수 있으므로, 일부 권리만 박탈하거나 다운그레이드 우선주로 전환시키는 방식도 많이 사용됩니다. 후속 투자 미참여에 따른 불이익은 한 번에 적용하기보다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이 바람직합니다. 즉, ① 일부 권리 상실 → ② 다운그레이드 우선주로의 전환 → ③ 최종적으로 보통주 전환의 순서로 단계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분쟁 가능성이 낮아집니다.
나.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
PTP는 단지 후속투자만을 위한 조정 장치가 아니라 지배구조를 위한 조정 장치이기도 합니다. 우선주주가 보유하던 상환권·전환권·잔여재산분배우선권 등의 권리가 줄어들게 되면 회사의 의사결정 구조와 향후 M&A·IPO 전략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조항 설계 단계에서 우선주주가 후속투자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에 어떤 권리를 줄일 것인지에 대해 전략적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4. 미국과 한국의 페이투플레이 구현 방식 비교
가. 미국의 방식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흔히 사용되는 PTP 방식은 피투자회사의 정관(Certificate of Incorporation, COI) 등에 해당 내용을 기재하고, 조건이나 이벤트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사전에 정해진 바에 따라 주식의 전환 등이 이루어지는 방식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23년 미국의 범죄 추적 앱 ‘시티즌(Citizen)’ 관련 딜이 있습니다. 세계 최대 VC 회사 세쿼이아 캐피털(Sequoia Capital)이 시티즌에 투자를 했는데, 후속 투자에 참여하지 않는 기존 투자자의 지분 가치가 사실상 10분의 1 수준으로 희석되는 내용의 PTP 조항이 적용되었습니다. 결국 후속투자에 참여하지 않은 세쿼이아 캐피털은 지분이 과도하게 희석되어 이사회 선임 권한을 행사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 사례는 PTP가 후속 투자를 위한 조건인 동시에 기존 투자자 내부의 이해관계와 지배구조를 재구성하는 강력한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나. 한국의 방식과 법적 구현
한국에서 우선주는 상법상 종류주식으로서, 피투자회사의 정관이 아닌 개별적 투자계약서에 해당 종류주식의 권리 관련 내용이 반영되고, 이사회 결의를 통해 주식 발행 및 증자등기가 이루어지면 그 내용이 등기되어 공표됩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PTP 조항을 구현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전환권 조항에의 포함
후속 투자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거나 특정 권리가 축소되는 우선주로 전환한다는 PTP 조항을 전환권 조항에 포함시키는 방식입니다. 상법 제346조는 회사가 종류주식을 발행하는 경우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주주는 인수한 주식을 다른 종류주식으로 전환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회사 역시 일정한 사유가 발생할 때 주주의 주식을 다른 종류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정관에 정할 수 있습니다. (상법 제346조 제1항, 제2항)
2) 투자계약 또는 주주간 계약에의 포함
추후 총주주 및 종류주주의 승인 또는 동의를 통해 보통주 또는 권리가 축소된 우선주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을 투자계약 또는 주주간 계약에 포함하는 방식입니다.
3) 정관 개정의 필요성
이렇게 정한 내용이 정관에 위배되지 않도록 정관의 전환권 조항을 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관 개정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이므로(상법 제434조), 이 과정에서 종류주주총회 결의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상법 제435조)
5. 실무상 법적 쟁점과 분쟁 예방 체크리스트
PTP 조항으로 인해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점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가. 트리거 조건의 불명확성
PTP 조항의 조건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분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소규모 브릿지 라운드까지 모두 PTP의 트리거로 두게 되면 특정 투자자가 의도적으로 라운드를 쪼개서 미참여 투자자의 권리를 박탈할 수 있습니다.
체크리스트
- 적격 투자(Qualified Financing)의 최소 금액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였는가?
- 다운라운드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는가?
- 전환증권 포함 여부를 명시하였는가?
- 신규 현금 유입 여부를 트리거 조건으로 포함하였는가?
나. 참여 기준 산정의 불명확성
후속 투자 참여 기준이 완전희석 기준인지, 이미 발행된 주식을 기준으로 하는지 여부 등을 명확하게 정해야 합니다.
체크리스트
- 완전희석 기준(fully diluted basis)인지 발행주식 기준인지 명시하였는가?
- 주요 투자자(Lead Investor)와 소액 투자자를 구분하여 참여 기준을 달리 정하였는가?
- 최소 참여 금액 또는 비율을 명시하였는가?
다. 페널티의 과도성
특히 엔젤투자자·소액 개인투자자·창업기획자처럼 추가 투자 여력이 높지 않은 투자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경우에는 주요 투자자에 한정해 PTP 조건을 설정하거나 참여 기준을 완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체크리스트
- 페널티를 단계적으로 설계하였는가? (일부 권리 상실 → 다운그레이드 우선주 전환 → 보통주 전환)
- 소액 투자자·엔젤 투자자에 대한 예외 조항을 두었는가?
- 강제 전환 시 상법 제346조의 요건(전환 사유, 전환 조건, 전환 기간, 전환으로 발행할 주식의 수와 내용)을 충족하였는가? (상법 제346조 제2항)
라. 절차적 정당성의 결여
후속 투자 참여를 위한 통지 기간, 정보 제공, 참여 의사 확인 절차, 후속 투자 기회 제공, 이사회 및 주주총회 승인 등의 전반적 절차를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절차가 확보되지 않으면 PTP 관련 절차 하자 또는 신의칙 위반 등으로 공격받을 수 있습니다.
체크리스트
- 후속 투자 참여 기회를 위한 충분한 통지 기간을 설정하였는가?
- 후속 투자자와 동일한 수준의 정보를 기존 투자자에게 제공하였는가?
- 이사회 결의 및 주주총회(종류주주총회 포함) 승인 절차를 거쳤는가?
- 강제 전환 시 상법 제346조 제3항에 따른 주주 통지 절차를 이행하였는가? (상법 제346조 제3항)

6. 페이투플레이 조항 설계 시 유의사항 요약
| 구분 | 핵심 내용 | 유의사항 |
|---|---|---|
| 트리거 조건 | 적격투자(Qualified Financing) 또는 다운라운드로 한정 | 브릿지 라운드 등 소규모 라운드 포함 여부 명확히 |
| 참여 기준 | 완전희석 기준 또는 발행주식 기준 | 주요 투자자와 소액 투자자 구분 가능 |
| 페널티 방식 | 단계적 적용 권장 | 일부 권리 상실 → 다운그레이드 우선주 → 보통주 |
| 절차적 요건 | 통지·정보 제공·승인 절차 | 상법상 종류주주총회 결의 필요 여부 검토 |
| 정관 정합성 | 정관 전환권 조항과의 정합성 확보 | 정관 개정 필요 시 주주총회 특별결의 |
7. 결론
페이투플레이 조항은 다운라운드 국면에서 피투자회사의 생존을 위한 신규 자금 유입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기존 투자자 간의 이해관계와 지배구조를 재편하는 강력한 법적 장치입니다.
한국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에서 PTP 조항이 실효성 있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상법상 종류주식 및 전환권 규정(상법 제346조)과의 정합성을 확보하고, 트리거 조건·참여 기준·페널티 방식·절차적 요건을 모두 명확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PTP 조항은 투자자에 대한 일방적 페널티가 아니라,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자를 구분하는 공정한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신규 투자자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기존 투자자와의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며, 궁극적으로 회사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