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코드 일부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고 해서 영업비밀이 아닌 걸까요? 법원은 그렇게 단순하게 보지 않습니다.” – 소스코드 영업비밀 사건
퇴사 후 전 직장의 소스코드를 복제해 경쟁사를 차린 사건, 그런데 법원은 오히려 ‘영업비밀이 아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판결은 영업비밀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1. 사실관계 요약
피해회사 K는 LMS(학습관리시스템) 솔루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온라인 학습 학원 등에 공급하는 업체입니다.
피고인 A는 피해회사에서 LMS 솔루션 영업 업무를 담당하다 퇴사한 후, 피고인 B과 함께 동종 업체인 주식회사 E를 설립하였습니다. 이후 피해회사에 재직 중이던 개발자 피고인 C, D에게 피해회사와 동일한 LMS 솔루션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고, C과 D은 피해회사의 LMS 솔루션 소스코드 파일 496개를 복제·수정하여 E의 LMS 프로그램을 완성한 후 A, B에게 제공하였습니다. A, B은 이를 E의 거래처에 제공하였습니다.
검사는 피고인들을 ① 업무상배임, ②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영업비밀누설등), ③ 저작권법 위반, ④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하였고, 원심은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습니다.
피고인들은 항소하면서 ① 이 사건 소스코드는 상당 부분이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어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고, ② 피고인 A, B은 배임행위 이전에 이미 피해회사를 퇴사하였으므로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2. 쟁점 정리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가. 영업비밀 해당 여부 — 요건 판단의 방법론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는 영업비밀을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밀로 관리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로 정의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통상 ① 비공지성, ② 경제적 유용성, ③ 비밀관리성의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영업비밀로 인정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각 요건을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아니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었습니다.
나. 업무상배임죄의 성립 여부 — 퇴사 후 공모 가담의 문제
피고인 A, B은 배임행위가 이루어진 시점(2018. 7.~11.)보다 앞서 이미 피해회사를 퇴사하였는데, 이 경우에도 업무상배임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가 문제되었습니다 (대법원 2016. 6. 23. 선고 2014도11876 판결 참조).

3. 판시 내용
가. 영업비밀 요건의 종합적 판단 기준
항소심 법원은 영업비밀 요건 판단 방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중요한 법리를 제시하였습니다.
“영업비밀로 인정할 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따지기 위해서는 각 요건의 충족 정도를 분리하여 개별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건전한 거래질서 유지라는 법 목적을 달성하면서 경쟁의 자유를 보장하고 개인의 직업선택의 자유 및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요건 상호간의 관계와 충족 정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그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증명의 정도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2. 8. 선고 2021노3419 판결)
법원은 특히 다음과 같은 현실적 문제를 지적하였습니다.
- 영업 정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공지된 것이라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대부분의 사람이 알아야만 공지된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 가치 없는 정보를 찾기 힘들지만, 많은 사람이 알고 있거나 저렴한 비용으로 구할 수 있는 정보를 경제적 유용성이 있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
- 대부분의 영업 정보가 디지털화되어 컴퓨터에 비밀번호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러한 모든 경우에 비밀관리가 된다고 하면 비밀관리가 되지 않는 정보를 찾기 힘들다. 비밀관리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점이 있어야 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2. 8. 선고 2021노3419 판결)
나. 이 사건 소스코드의 영업비밀 해당 여부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이 사건 소스코드가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이 사건 소스코드에 공지된 코드, 피고인 C이 기존에 보유하던 코드 등이 일부 사용되었고, 소스코드 일부가 샘플로 공개된 점
- 피해회사가 소스코드 판매를 시도한 사실이 있는 점
- 소스코드로 나타내려는 기능은 공개되어 있고 역설계가 어려워 보이지 않는 점
- 피해회사의 LMS 프로그램과 기능이 유사한 다른 프로그램 및 앱이 많은 점
- 보안플레이어가 없는 LMS 프로그램 자체만으로는 경제적 유용성이 크지 않아 보이는 점
- 소스코드에 개발업무를 하지 않은 직원 및 고객사들의 접속이 있었던 점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2. 8. 선고 2021노3419 판결)
결국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누설등)의 점은 무죄로 판단되었습니다.
다. 업무상배임죄의 성립 여부
법원은 피고인 A, B이 피고인 C, D의 배임행위에 가담·공모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배임행위가 이루어진 2018. 7.~11.경 이전에 이미 피해회사를 퇴사하였으므로 더 이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다만, 피고인 A, B에게는 형법 제33조 단서에 따라 신분 없는 공동정범으로서 배임죄(형법 제355조 제2항, 제1항)에 정한 형으로 처벌하였고, 저작권법 위반죄는 유죄로 인정하여 피고인 A, B, C, D 모두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였습니다.
4. 핵심 포인트
가. 영업비밀 요건은 ‘종합 판단’이 원칙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영업비밀의 세 가지 요건(비공지성·경제적 유용성·비밀관리성)을 각각 독립적으로 충족 여부를 따질 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와 충족 정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예컨대 비공지성이 다소 약하더라도 경제적 유용성이 매우 높고 비밀관리가 철저하다면 영업비밀로 인정될 여지가 있고, 반대로 비공지성이 높더라도 경제적 유용성이나 비밀관리성이 현저히 부족하다면 영업비밀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나. 형사사건에서의 증명 기준 — 합리적 의심의 배제
법원은 영업비밀 해당 여부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증명의 정도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였습니다. 이는 민사사건과 달리 형사사건에서는 더 엄격한 증명이 요구됨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다. 비밀관리성 판단의 실질화
단순히 컴퓨터에 비밀번호가 설정되어 있다거나 일반적인 보안 조치가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비밀관리성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비밀관리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가 있어야 하며, 해당 정보가 비밀로 유지·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인식 가능한 상태여야 합니다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도13791 판결 참조).
라. 퇴사 후 공모와 업무상배임죄의 한계
회사를 퇴사한 이후에는 원칙적으로 업무상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를 상실합니다. 다만 이 사건에서처럼 신분 없는 공동정범으로서 형법 제33조 단서에 따라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마. 영업비밀 무죄 ≠ 형사처벌 면제
이 사건에서 영업비밀 침해는 무죄로 판단되었지만, 피고인들은 저작권법 위반 및 업무상배임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영업비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영업상 주요한 자산’의 무단 반출은 업무상배임죄를 구성할 수 있고 (대법원 2016. 6. 23. 선고 2014도11876 판결), 소스코드 복제는 저작권법 위반이 될 수 있습니다.

마치며 — 영업비밀, ‘체크리스트’가 아닌 ‘맥락’으로 판단된다
이 판결은 영업비밀 해당 여부를 단순히 세 가지 요건의 체크리스트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비공지성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다른 요건이 강하면 영업비밀이 될 수 있고, 반대로 모든 요건이 어느 정도 충족되는 것처럼 보여도 종합적으로 보면 영업비밀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비밀번호를 설정하거나 서약서를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당 정보가 실질적으로 비밀로 관리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분쟁이 발생했을 때는 영업비밀 침해 외에도 업무상배임, 저작권법 위반 등 다양한 법적 수단을 함께 검토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