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참고만 하겠다고 했는데, 설마 그게 책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수년간 공들여 집필한 전문 수험서의 전자파일을 동료에게 건네줬더니, 5년 뒤 그 내용이 고스란히 담긴 경쟁 도서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10년 넘게, 5,000부 이상이나요. – 수험서 저작권 침해 분쟁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5년 11월, 이 사건에서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고 5,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명하였습니다. 수험서·전문서적 저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판결입니다.

1. 사실관계 요약
가. 등장인물
- 원고 A: 2007년경 소방기술사 시험 수험서 ‘D’를 저술한 저자로, 이후 2016년, 2019년, 2022년에 걸쳐 개정판을 출간하고 온·오프라인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피고 C: 원고와 같은 소방기술사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 2015년경 수험서 ‘E’를 저술하여 피고 회사를 통해 출판·판매하고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피고 주식회사 B: 피고 C가 피고 도서를 출판·판매하는 데 활용한 회사입니다
나. 사건의 경위
원고는 2010년 3월경 피고 C로부터 “오로지 참고만 하겠다”는 요청을 받고 원고 도서의 전자파일(이하 ‘이 사건 전자파일’)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런데 피고 C는 전자파일을 받은 지 약 5년이 지난 2015년 2월경, 원고 도서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을 그대로 복제하여 피고 도서를 출판·판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피고들은 2023년에는 피고 도서를 개정하여 다시 출판·판매하였고, 피고 C는 피고 도서를 강의 교재로도 활용하였습니다
원고는 2024년 1월 2일 내용증명을 발송한 뒤, 같은 해 소를 제기하여 피고 도서의 판매 금지 및 3억 7,104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2. 쟁점 정리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 쟁점 | 내용 |
|---|---|
| ① 원고 도서의 저작물성 | 소방기술사 수험서가 저작권법상 창작성 있는 저작물에 해당하는가? |
| ② 실질적 유사성 | 피고 도서가 원고 도서와 실질적으로 유사한가? |
| ③ 의거관계 | 피고 도서가 원고 도서에 의거하여 작성되었는가? |
| ④ 저작권 이용허락·양도 여부 | 전자파일 제공이 저작권 이용허락 또는 양도에 해당하는가? |
| ⑤ 소멸시효 완성 여부 |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시효로 소멸하였는가? |
| ⑥ 손해배상액 산정 | 저작권법 제125조 또는 제126조에 따라 손해액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 |

3. 판시 내용
가. 원고 도서의 저작물성 — 인정
법원은 원고 도서가 저작권법상 보호받는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원고 도서는 소방기술사 시험 수험서로서, 화재·소화에 관한 개념과 이론, 소방시설의 구조와 원리, 소방관계 법령 등 전문적 지식을 담고 있습니다. 비록 그 내용이 해당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학술적·실용적 이론을 기초로 하고 있더라도, 원고는 수험생이 효율적으로 이해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각종 개념과 이론들을 선별·정리하여 문장, 표, 그림 등을 통해 설명하였고, 전체적인 목차, 구성, 쟁점 및 문제해결방법에 있어서도 저자로서 고유한 정신적 노력을 기울여 독자적인 방식을 취하였습니다
피고들은 원고 도서 일부가 선행문헌의 표현방법을 그대로 따른 것이어서 창작성이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수험서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알려진 개념이나 이론에 있어서 선행문헌을 일부 참고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원고의 정리·구성 방식 자체가 독창적이지 않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이 주장을 배척하였습니다
나. 실질적 유사성 — 대부분 인정
법원은 침해일람표에 기재된 항목 중 일부(순번 1, 9, 21, 23, 24, 27, 34, 47, 53, 56, 109, 119, 120, 123, 127, 176, 178번)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하 ‘이 사건 침해 부분’)에 대해 실질적 유사성을 인정하였습니다.
피고 도서는 원고 도서의 단어, 문장을 그대로 복제하거나 표현의 구조나 순서를 일부 변경한 것에 불과하여 문언적 표현과 서술 구조가 사실상 동일·유사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피고들이 표를 문장으로 바꾸거나 문장을 표로 구성하는 등 일부 차이를 두었더라도, 그 차이가 경미하여 실질적 유사성을 부정할 정도에는 이르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다. 의거관계 — 인정
법원은 피고 도서와 원고 도서 사이의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는 점, 피고들 스스로도 원고 도서를 참조하여 피고 도서를 저술·출판하였음을 인정하고 있는 점, 피고들이 원고 도서 외에 이용하였다는 자료들을 정확하게 특정하거나 제시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의거관계를 인정하였습니다
라. 저작권 이용허락·양도 여부 — 불인정
피고 C는 원고로부터 전자파일을 제공받았으므로 저작권 이용허락 또는 양도가 있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다음 사정들을 종합하여 이를 배척하였습니다
- 원고와 피고들 사이에 별도의 저작권 이용허락 계약이나 양도계약이 체결된 사실이 없는 점
- 단순히 전자파일이 전달되었다는 사정만으로 포괄적·일반적 이용허락이나 저작권 양도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 전자파일을 전달받은 2010년 3월경으로부터 약 5년이 지난 2015년 2월경에 피고 도서가 출판된 점
- 피고 C가 원고에게 저작권 이용료나 양도대가를 전혀 지급하지 않은 점
- 원고가 강의를 중단하거나 도서를 절판하지 않고 오히려 2016년, 2019년, 2022년에 개정판을 거듭 출간한 점
마. 소멸시효 항변 — 배척
피고들은 원고가 2015년 3월경 또는 늦어도 2018년 11월경에 저작권 침해를 인식하였으므로 3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원고가 해당 시점에 피고 도서의 내용을 원고 도서와 직접 비교하는 등 저작권 침해 여부를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하였다고 볼 만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고 보아 이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바. 손해배상액 산정 — 저작권법 제126조 적용, 5,000만 원 인정
법원은 저작권법 제125조 제2항에 따른 손해액 산정(원고 도서 가격 × 피고 도서 판매 부수)은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원고가 이용계약을 체결하거나 이용료를 받은 적이 없고, 업계 일반화된 이용료를 확인할 자료도 없으며, 도서 가격에는 출판·제작·유통 비용이 포함되어 있어 이를 곧바로 저작재산권 이용대가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에 법원은 저작권법 제126조에 따라 다음 사정들을 종합하여 손해액을 5,000만 원으로 산정하였습니다
- 피고들이 2015년경부터 변론종결일까지 약 10년 이상 피고 도서를 출판·판매하였고, 피고 스스로 인정하는 판매 부수만 5,000부 이상으로 초판 가격 기준 매출액이 약 2억 원을 초과하는 점
- 피고들이 원고에게 이용허락을 구하거나 이용료를 지급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출처도 표시하지 않은 점
- 다만, 이 사건 침해 부분의 비율이 피고 도서 전체 쪽수 기준 약 10% 정도에 불과한 점
- 피고 도서의 판매 부수에는 강의 교재 활용, 전체적인 구성과 내용, 마케팅 등 다양한 요소가 기여하였을 것이므로 전체 매출이 곧바로 저작권 침해의 결과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

4. 핵심 포인트
가. 전문 수험서도 저작권 보호를 받는다
이 판결은 소방기술사 수험서와 같은 실용적·기능적 저작물도 저작자의 창조적 개성이 발현된 경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내용이 공지의 이론이나 학설을 기초로 하더라도, 저자가 이를 선별·정리하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였다면 창작성이 인정됩니다. 전문 자격시험 수험서, 기술 교재, 실무 지침서 등을 집필하는 분들은 자신의 저작물이 충분히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 전자파일 제공 ≠ 저작권 이용허락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전자파일을 건네주는 행위가 저작권 이용허락이나 양도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법원은 저작권에 관한 의사표시가 명백하지 않은 경우 저작자에게 권리가 유보된 것으로 추정한다는 원칙을 적용하였습니다. 파일을 공유할 때는 반드시 이용 범위와 조건을 서면으로 명확히 해두어야 합니다. “참고만 하겠다”는 구두 약속은 법적 보호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다. 소멸시효의 기산점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인식’ 시점이다
피고들은 원고가 피고 도서를 수령하거나 피고 회사에서 강의를 시작한 시점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단순히 도서를 수령하거나 같은 회사에서 강의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저작권 침해를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소멸시효 항변을 검토할 때는 피해자가 침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인식한 시점을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라. 손해배상액 산정에서 ‘침해 비율’과 ‘기여 요소’가 감액 근거가 된다
원고는 3억 7,104만 원을 청구하였으나 법원은 5,000만 원을 인정하였습니다. 감액의 핵심 근거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이 사건 침해 부분이 피고 도서 전체의 약 10%에 불과하다는 점, 둘째, 피고 도서의 판매 성과에는 강의 교재 활용, 마케팅 등 저작권 침해 외의 다양한 요소가 기여하였다는 점입니다. 저작권 침해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침해 부분의 비율과 그 기여도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손해액 산정의 핵심 변수가 됩니다.
마치며
이 판결은 전문 수험서 저자의 저작권이 어떻게 보호받는지, 그리고 그 보호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참고만 하겠다”는 말 한마디를 믿고 전자파일을 건네준 것이 10년 넘는 법적 분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지식 콘텐츠를 창작하는 모든 분들께 드리는 당부가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저작물 파일을 타인에게 제공할 때는 반드시 이용 범위와 조건을 서면으로 명확히 하십시오. 둘째, 유사한 경쟁 도서가 출시되었다면 즉시 내용을 비교하고 침해 여부를 확인하십시오. 저작권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보호받지만, 그 권리를 지키는 것은 저작자 스스로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