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할 때 전직금지 서약서에 사인하지 않았으니 경쟁사에 취업해도 괜찮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전직 임원이 있다면, 이 판결을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영업비밀 유출 분쟁
수원지방법원은 전직금지약정이 단 한 줄도 없는 상황에서도 부정경쟁방지법 제10조 제1항을 근거로 경쟁사 취업을 1년간 금지하는 가처분을 인용하였습니다. 연매출 603억 원 규모 식품회사의 공장장이 샐러드 배합비를 경쟁사에 유출한 혐의를 받은 이 사건, 법원은 어떤 논리로 약정도 없이 취업을 막았을까요?

1. 사실관계 요약
채권자 주식회사 A는 저온살균 샐러드를 기반으로 한 제품을 생산하여 국내 대기업과 대형매장에 납품하는 식품회사입니다. 2019년도 전체 매출액은 약 603억 원이었고, 그 중 샐러드 부문 매출만 약 365억 원에 달하는 핵심 사업 분야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채권자는 2009년부터 보안규정을 마련하여 비밀등급을 구분하고 주기적인 보안교육과 비밀서약서 작성을 통해 기업비밀을 관리해 왔습니다. 특히 샐러드 배합비는 비밀 최고 등급인 ‘1급 비밀’로 분류되었고, 1급 비밀 취급 인가자는 임원급으로만 한정되었습니다.
채무자 B는 2017년 채권자 회사에 혁신관리 팀장으로 입사한 후 공장장으로 승진하여 임원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채무자는 연구소로부터 샐러드 배합비를 전달받아 보관·관리하고, 샐러드 생산설비와 공정 전반을 관리하면서 채권자의 핵심 영업비밀을 취득하였습니다.
그런데 채무자는 2019년 2월부터 7월까지 3회에 걸쳐 경쟁사인 주식회사 C의 중국 자회사(D유한공사) 지사장을 업무 외 목적으로 방문하였습니다. 채권자는 주식회사 C의 샐러드 매출이 채무자의 청도 방문 시기 이후 급증한 사실을 확인하고 채무자를 해고한 뒤 영업비밀 유출 혐의로 고소하였습니다. 채무자는 이 사건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채권자가 주장하는 영업비밀 침해사실을 인정한다는 취지를 밝혔습니다.
2. 쟁점 정리
가. 전직금지약정 없이도 부정경쟁방지법 제10조 제1항으로 경업금지를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
이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법적 쟁점입니다. 일반적으로 경업금지 또는 전직금지는 근로계약서나 별도 약정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경우에 청구하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전직금지약정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약정 없이도 법률 규정만으로 경쟁사 취업을 금지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나. 샐러드 배합비 등 이 사건 정보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 (피보전권리)
채권자가 주장하는 저온살균 샐러드 생산 관련 정보가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의 요건인 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을 모두 갖추었는지가 두 번째 쟁점입니다.
다.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되는지 여부
가처분은 피보전권리뿐만 아니라 보전의 필요성도 소명되어야 인용됩니다. 채무자가 실제로 경쟁사에 취업하거나 영업비밀을 추가로 유출할 우려가 있는지가 세 번째 쟁점이었습니다.

3. 판시 내용
가. 전직금지약정 없이도 부정경쟁방지법 제10조 제1항에 의한 경업금지 가능
법원은 다음과 같은 법리를 명확히 제시하였습니다.
“근로자가 전직한 회사에서 영업비밀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고서는 회사의 영업비밀을 보호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구체적인 전직금지약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부정경쟁방지법 제10조 제1항에 의한 침해행위의 금지 또는 예방 및 이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 중의 한 가지로서 그 근로자로 하여금 전직한 회사에서 영업비밀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즉, 전직금지약정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라면 법률 규정 자체만으로도 경업금지 조치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나. 샐러드 배합비는 영업비밀에 해당 — 피보전권리 소명
법원은 채권자의 저온살균 샐러드 생산 관련 정보가 공연히 알려지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합리적인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 기술상·경영상 정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채무자가 공장장 임원으로서 해당 영업비밀을 지득하였고, 주식회사 C에 이를 공개하는 등으로 영업비밀을 침해하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아 피보전권리가 소명된다고 하였습니다.
다. 보전의 필요성 인정
채무자가 주식회사 C의 자회사 지사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회사를 수차례 방문한 점, 채무자 스스로 영업비밀 침해사실을 인정하는 취지의 답변서를 제출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전의 필요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라. 가처분 결정 내용 및 간접강제
법원은 채무자가 퇴직 후 1년의 기간 동안 주식회사 C에 근무하는 것을 금지하고, 제3자에 대한 영업비밀 공개·제공을 금지하는 가처분을 인용하였습니다. 아울러 간접강제금으로 취업금지 위반 시 1일당 500만 원, 영업비밀 공개·제공금지 위반 시 1회당 5,000만 원을 정하였습니다.
4. 핵심 포인트
가. “약정이 없으면 괜찮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전직금지약정이 없어도 경업금지가처분이 인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10조 제1항은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대한 금지·예방 청구권을 규정하고 있으며, 법원은 이 조항을 근거로 전직금지약정 없이도 경쟁사 취업 자체를 금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퇴사 시 전직금지 서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 영업비밀 해당 여부 판단 기준 — 3가지 요건
| 요건 | 내용 | 이 사건 판단 |
|---|---|---|
| 비공지성 |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지 않을 것 | 서버 접근 제한, 임원급만 취급 가능 → 인정 |
| 경제적 유용성 |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질 것 | 샐러드 매출 365억 원의 핵심 정보 → 인정 |
| 비밀관리성 | 합리적인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될 것 | 보안규정, 1급 비밀 지정, 비밀서약서 → 인정 |
다. 임원급 직원일수록 영업비밀 침해 위험이 크다
이 사건에서 채무자는 단순 직원이 아닌 공장장 임원이었습니다. 임원급 직원은 회사의 핵심 영업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넓기 때문에, 퇴사 후 경쟁사로 이직하는 경우 영업비밀 침해 위험이 그만큼 높습니다. 법원도 채무자가 임원으로서 영업비밀을 지득하였다는 점을 피보전권리 소명의 중요한 근거로 삼았습니다.
라. 간접강제금의 위력 — 위반 1회에 5,000만 원
이 사건에서 법원이 정한 간접강제금은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취업금지 위반 시 1일당 500만 원, 영업비밀 공개·제공금지 위반 시 1회당 5,000만 원입니다. 가처분 결정을 무시하고 경쟁사에 계속 출근하거나 영업비밀을 추가로 유출하는 경우 막대한 금전적 제재가 따른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마. 기업이 갖추어야 할 영업비밀 보호 체계
이 사건에서 채권자가 가처분을 인용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체계적인 보안관리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보안규정 수립, 비밀등급 구분(1급·2급 등), 접근권한 차등 부여, 비밀서약서 징구 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법원이 비밀관리성을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영업비밀 보호를 원하는 기업이라면 이러한 관리 체계를 사전에 구축해 두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마치며 — 약정이 없어도, 법은 영업비밀을 지킵니다
이 판결은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중요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전직금지약정을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영업비밀 보호 체계만 잘 갖추어 두면 부정경쟁방지법을 통해 경쟁사 취업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입니다. 반대로 임원이나 핵심 직원 입장에서는 약정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결코 안전망이 되지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입니다. 회사의 핵심 정보를 다루는 위치에 있었다면, 퇴사 후 경쟁사 이직은 법적 분쟁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영업비밀, 약정이 없어도 법은 지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