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직전에 설계도면을 USB에 담아 나간 직원, 막을 수 있을까요?”
퇴사를 앞둔 직원이 회사의 사무용 가구 설계도면 파일을 USB에 저장해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경쟁사에 입사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수년간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쌓아온 핵심 자산이 경쟁사로 넘어간 것입니다.
“이 설계도면은 우리 회사의 영업비밀 아닌가요? 저 직원이 경쟁사에서 일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나요?” 이 판결은 그 두 가지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내놓았습니다. 설계도면의 영업비밀 해당성은 인정하였지만, 전직금지 청구는 기각하였습니다. 왜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 그리고 기업이 이 판결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사실관계 요약
채권자 A는 사무용 가구의 제작과 판매를 하는 회사로, 직원 약 300여 명 규모의 중견 기업입니다. 채무자 B는 채권자 회사에 재직하다가 퇴사한 직원입니다.
채무자는 2017년 6월 19일 채권자에게 퇴직보안서약서(비밀유지약정)를 제출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서약서를 제출한 날부터 퇴사일인 2017년 6월 30일 사이에, 채무자는 채권자 회사의 설계도면 파일(이하 ‘이 사건 설계도면파일’)을 도면관리시스템에서 다운로드하여 이동식저장매체인 USB에 저장한 후 가지고 나갔습니다.
채무자는 퇴사 후 불과 3일 만인 2017년 7월 3일 주식회사 G에 입사하여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G는 채권자와 동종 업종의 경쟁 회사였습니다.
이에 채권자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제10조 제1항에 따라 영업비밀침해금지를, 제2항에 따라 그에 필요한 조치로서 전직금지를 신청하였습니다.
2. 쟁점 정리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가. 이 사건 설계도면파일이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에 해당하는가?
영업비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① 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을 것(비공지성), ②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질 것(경제적 유용성), ③ 합리적인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될 것(비밀관리성)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채권자의 설계도면파일이 이 세 가지 요건을 갖추었는지가 첫 번째 쟁점이었습니다.
나. 전직금지 청구의 피보전권리와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되는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전직금지약정이 별도로 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정경쟁방지법 제10조 제1항에 근거한 영업비밀 침해 예방 조치로서 전직금지가 인정될 수 있는지가 두 번째 쟁점이었습니다.

3. 판시 내용
가. 영업비밀 해당성 — 세 가지 요건 모두 인정
법원은 이 사건 설계도면파일이 영업비밀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① 비공지성 인정
법원은 이 사건 설계도면이 채권자가 각종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축적한 제품에 대한 설계도면으로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정보이고, 직접 제작하지 않고서는 불특정 다수가 쉽게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비공지성을 인정하였습니다.
② 경제적 유용성 인정
법원은 이 사건 설계도면이 채권자가 수년 동안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인적·물적 비용을 투입하여 얻은 결과물이라는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경쟁업체에 유출된다면 유사한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상당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그로 인하여 시간적·경제적 비용의 절약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아 경제적 유용성을 인정하였습니다.
③ 비밀관리성 인정
법원은 채권자가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비밀관리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비밀관리성을 인정하였습니다.
- 지문인식출입시스템, CCTV 등 보안장치 설치 및 외부인 출입 통제
- 사내 컴퓨터에 의해서만 도면관리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도록 직원들에게 개별 ID 부여 및 비밀번호 설정
- 직원들 사이에서도 부서별로 업무상 필요한 범위에 따라 접근 권한을 달리 설정
- 취업규칙 등에 보안규정 마련 및 입·퇴사 시 비밀유지서약서 제출
법원은 이러한 조치들이 합리적인 노력에 의한 비밀관리에 해당한다고 보아 비밀관리성을 인정하였습니다.
나. 전직금지 청구 — 기각
법원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비밀유지약정이 체결된 사실은 인정하였으나, 전직금지약정은 체결되었다고 볼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전직금지약정이 없는 상황에서 부정경쟁방지법 제10조 제1항에 의한 침해 예방 조치로서 전직금지가 인정되려면, ‘채무자가 G에서 영업비밀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고서는 채권자의 영업비밀을 보호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이어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법원은 이에 대하여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어 더욱 신중히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채권자가 제출한 자료들만으로는 피보전권리와 보전의 필요성에 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보아 전직금지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4. 핵심 포인트
이 판결에서 실무적으로 반드시 기억해야 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구분 | 내용 |
|---|---|
| 비밀관리성의 구체적 요건 | 일반적 보안규정만으로는 부족 — 개별 ID·비밀번호 설정, 부서별 접근 권한 차등, 입퇴사 시 서약서 징구 등 구체적·체계적 관리 조치가 필요 |
| 경제적 유용성의 판단 기준 | 정보 자체의 가치보다 ‘경쟁사가 이를 활용할 경우 시행착오 절감 및 비용 절약이 가능한지’를 기준으로 판단 |
| 비밀유지약정 ≠ 전직금지약정 | 비밀유지서약서를 받았다고 해서 전직금지 효력이 자동으로 발생하지 않음 — 전직금지를 원한다면 별도의 전직금지약정을 명시적으로 체결해야 함 |
| 전직금지의 엄격한 요건 | 전직금지약정 없이 법률에 근거한 전직금지를 구하려면 ‘전직 금지 없이는 영업비밀 보호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소명해야 함 |
| 직업선택의 자유와의 균형 | 전직금지는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므로 법원은 더욱 신중하게 판단 — 단순히 경쟁사에 입사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 |
| 퇴사 전 다운로드 행위의 위험성 | 퇴직보안서약서 제출 이후의 다운로드 행위는 영업비밀 침해의 고의를 강하게 뒷받침하는 증거가 됨 |

비밀유지서약서와 전직금지약정, 반드시 구별해서 받아두세요
이 판결이 기업 실무에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비밀유지서약서를 받았다고 해서 전직금지까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약정입니다. 핵심 인력이 퇴사할 때 경쟁사 취업을 제한하고 싶다면, 반드시 전직금지약정을 별도로 명시적으로 체결해야 합니다.
반대로 이 판결은 설계도면과 같은 기술 정보를 영업비밀로 보호받기 위한 조건도 잘 보여줍니다. 지문인식, CCTV, 개별 ID, 부서별 접근 권한 차등, 비밀유지서약서 — 이 모든 조치가 갖추어졌기 때문에 비밀관리성이 인정되었습니다. 하나라도 빠졌다면 결론이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핵심 기술 정보를 보유한 기업이라면 지금 당장 두 가지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영업비밀로 보호받고 싶은 정보에 대한 구체적인 비밀관리 체계가 갖추어져 있는지. 둘째, 핵심 인력과의 계약서에 비밀유지약정과 전직금지약정이 각각 명확하게 포함되어 있는지. 분쟁이 생긴 후에는 이미 늦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