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주고 개발 맡긴 AI 번역 기술을, 개발해준 회사가 자기 기술이라며 홍보하고 있습니다. 용역 결과물의 소유권이 수급인에게 있다면 마음대로 공개해도 될까요?” 법원의 답은 단호했습니다. “안 됩니다.” 비밀준수 용역 결과물 개발 사건
용역계약에 비밀준수 조항이 있는 이상, 결과물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든 수급인은 관련 정보와 기술을 외부에 공개할 수 없습니다. AI 번역 기술을 둘러싼 이 사건은 용역계약에서 비밀준수 의무의 범위와 가처분의 보전 필요성에 관한 중요한 법리를 담고 있습니다.

1. 사실관계 요약
채권자 주식회사 A는 정보통신 관련 회사로, 대표이사 D이 보유한 특허발명에 기초하여 인공지능 자가 학습을 활용한 실시간 다국어 채팅 플랫폼 서비스 사업을 추진 중이었습니다.
채무자 주식회사 B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유아놀이학습 콘텐츠 회사이고, 채무자 주식회사 C는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 회사입니다.
채권자는 채무자 B과 ‘LAMP 개발의 딥러닝 다국어 번역 솔루션 및 데이터 수집 환경 구축’ 용역계약(이하 ‘이 사건 용역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채무자 B은 채권자의 양해 하에 채무자 C의 도움을 받아 이 사건 용역계약의 결과물인 추론엔진 등을 개발하여 채권자가 지정하는 서버에 설치·구축하는 방법으로 제공하였습니다.
그런데 이후 채무자 B은 자사 홈페이지 ‘보유기술’란에 게시글을 올려 방문자들이 14개국 언어 번역이 가능한 번역기를 체험하게 하였고, 채무자 C는 전시회(J)에 참가하여 자사가 ‘인공지능 다국어 실시간 기계번역 솔루션(동시 14개 언어 지원)’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홍보하였습니다.
이에 채권자는 채무자들의 관련 정보나 기술의 공개·사용행위 금지 및 예방을 위하여 영업비밀침해금지가처분을 신청하였습니다.
2. 쟁점 정리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가. 피보전권리의 존부 — 비밀준수 의무의 범위
이 사건 용역계약 일반조건은 채무자 B에게 용역계약의 해지·만료일로부터 5년이 경과할 때까지 용역계약 또는 용역 내용과 관련하여 얻게 된 정보를 외부로 공개하지 않을 비밀준수 의무를 부과하고 있었습니다.
채무자 B은 이 사건 특수조건의 해석상 용역 결과물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고, 결과물을 판매·구축할 경우에만 채권자의 동의를 얻으면 되므로, 판매·구축 이전 단계의 홍보·공개 행위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이 사건 용역계약의 비밀준수 조항이 홍보·공개 행위에도 적용되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었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라목).
나. 보전의 필요성 — 금전으로 전보받기 어려운 손해의 존재
채무자들은 채권자와 유사한 실시간 다국어 채팅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존 업체들이 다수 있어 채권자에게 현저한 손해나 급박한 위험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가처분의 보전 필요성이 인정되는지가 문제되었습니다 (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

3. 판시 내용
가. 채무자 B에 대한 신청 — 일부 인용
1) 비밀준수 의무의 범위 — 홍보·공개 행위도 포함
법원은 이 사건 용역계약 일반조건이 채무자 B에게 용역계약 또는 용역 내용과 관련하여 얻게 된 정보를 외부로 공개하지 않을 비밀준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법원이 비밀준수 의무의 대상으로 인정한 정보의 범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이 사건 용역 결과물 자체와 그에 사용된 기술
- 위 결과물을 번역기의 형태로 체험할 수 있는 홈페이지 게시 내용
- 이 사건 용역계약 체결 상대방에 관한 정보
- 이러한 정보기술들을 기재한 홈페이지 게시물
법원은 채무자 B의 주장, 즉 이 사건 특수조건을 결과물의 판매·구축 시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하여 그 이전 단계에서는 소유자로서 관련 정보나 기술을 자유롭게 공개·사용할 수 있다는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용역계약의 비밀준수 조항은 결과물의 소유권 귀속과 별개로 적용되는 독립적인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계약당사자 간에 어떠한 계약 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내심의 의사 여하에 관계없이 문언의 내용과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계약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법리에 따른 것입니다 (대법원 2014. 6. 26. 선고 2014다14115 판결).
2) 보전의 필요성 — 인정
법원은 보전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습니다.
채권자와 유사한 실시간 다국어 채팅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존 업체들이 일부 있기는 하나, 채권자가 이 사건 용역계약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나 수준에 부합하는 번역 기능을 제공하거나 관련 시장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확보한 업체는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채무자 B이 해당 정보나 기술을 공개·사용한다면 채권자의 경쟁 업체나 잠재적인 경쟁 관계에 있는 업체들이 관련 기술 정보나 사업상 아이디어 등을 취득함에 따라 채권자가 금전으로 전보받기 어려운 손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
나. 채무자 C에 대한 신청 — 기각
법원은 채무자 C에 대한 신청은 기각하였습니다. 채권자가 제출한 자료들만으로는 채무자 C가 채권자에게 이 사건 용역계약 일반조건의 비밀준수 의무를 부담하기로 합의하였다거나, 채무자 B과 위 용역계약의 체결·수행 및 그 결과물의 귀속 등에 관하여 조합 관계에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채무자 C는 채무자 B의 이행보조자로서 용역 수행에 참여하였을 뿐, 채권자와 직접적인 비밀준수 의무 관계를 형성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라목).
4. 핵심 포인트
가. 용역 결과물의 소유권과 비밀준수 의무는 별개다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용역 결과물의 소유권이 수급인에게 귀속되더라도, 비밀준수 의무는 별개로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수급인이 결과물의 소유자라는 이유만으로 관련 기술이나 정보를 자유롭게 공개·홍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용역계약에 비밀준수 조항이 있는 이상, 결과물의 판매·구축 이전 단계의 홍보 행위도 비밀준수 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용역계약을 체결할 때 비밀준수 조항의 적용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 비밀준수 의무의 대상 — ‘용역 내용과 관련하여 얻게 된 정보’ 전반
법원은 비밀준수 의무의 대상을 용역 결과물 자체에 한정하지 않고, 결과물에 사용된 기술, 홈페이지 게시 내용, 계약 상대방에 관한 정보 등 용역계약 또는 용역 내용과 관련하여 얻게 된 정보 전반으로 넓게 인정하였습니다. 이는 용역계약에서 비밀준수 조항의 문언을 폭넓게 해석한 것으로, 용역계약 체결 시 비밀준수 조항의 대상 정보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것이 분쟁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다. 이행보조자는 비밀준수 의무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다
이 판결은 이행보조자(채무자 C)는 원칙적으로 용역계약상 비밀준수 의무의 직접 당사자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채무자 C가 비밀준수 의무를 부담하기 위해서는 ① 채권자와 직접 비밀준수 의무를 부담하기로 합의하였거나, ② 채무자 B과 조합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이 소명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용역계약에서 수급인이 제3자의 도움을 받아 용역을 수행하는 경우, 도급인은 그 제3자에게도 직접 비밀준수 의무를 부과하는 별도의 약정을 체결하거나, 수급인으로 하여금 이행보조자에게 비밀준수 의무를 부과하도록 계약에 명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라. 영업비밀 침해 가처분에서 보전의 필요성 — 시장 선점 우려
법원은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쟁 업체가 일부 존재하더라도, 채권자가 목표로 하는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업체가 없는 상황에서 기술 정보가 공개되면 경쟁 업체들이 이를 취득하여 채권자가 시장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보전의 필요성을 인정하였습니다. 영업비밀 침해 가처분에서 보전의 필요성은 금전으로 전보받기 어려운 손해의 우려가 있으면 인정될 수 있으며, 시장 선점 기회의 상실도 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마. 실무적 시사점 — 용역계약 체결 시 체크리스트
| 점검 사항 | 이 사건에서의 시사점 |
|---|---|
| 비밀준수 조항의 대상 정보 | 결과물뿐 아니라 관련 기술·정보 전반을 명시 |
| 비밀준수 의무의 존속 기간 | 계약 해지·만료 후 기간을 명확히 규정 |
| 이행보조자에 대한 비밀준수 의무 | 수급인이 이행보조자에게 의무 부과하도록 명시 |
| 결과물 소유권과 비밀준수 의무의 관계 | 소유권 귀속과 무관하게 비밀준수 의무 적용됨을 명시 |
| 홍보·공개 행위의 제한 | 판매·구축 이전 단계의 홍보 행위도 제한 대상임을 명시 |

마치며 — 용역계약의 비밀준수 조항, ‘개발 후’에도 살아있습니다
이 판결은 용역계약에서 비밀준수 의무가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용역 결과물의 소유권이 수급인에게 있더라도, 비밀준수 조항이 있는 이상 수급인은 그 결과물과 관련된 기술·정보를 외부에 공개하거나 홍보할 수 없습니다. 특히 AI·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용역계약을 체결할 때는 비밀준수 조항의 대상 정보, 존속 기간, 이행보조자에 대한 의무 부과 방법을 꼼꼼히 설계하는 것이 핵심 기술의 유출을 막는 첫 번째 방어선입니다. 계약서 한 줄이 수억 원짜리 기술을 지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