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로 관리된’-비밀관리성 인정 기준 완화-영업비밀 변호사

“비밀유지서약서도 받고, 정보보호교육도 했고, 전산망도 분리했습니다. 그런데 피고인 측은 ‘영업비밀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투어지는 쟁점 중 하나가 바로 비밀관리성입니다.-‘비밀로 관리된’ 문구의 해석.
2019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으로 비밀관리성 요건이 ‘상당한 노력’ → ‘합리적인 노력’ → ‘비밀로 관리된’으로 단계적으로 완화되었습니다. 이 판결은 그 개정 취지에 비추어 비밀관리성 인정 기준이 적절하게 완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선언한 중요한 사례입니다. 방역 회사의 고객리스트를 유출한 전직 직원과 경쟁업체의 형사책임을 다룬 이 판결의 핵심 법리를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비밀관리성 기준 완화_비밀로 관리된
비밀관리성 기준 완화_비밀로 관리된

사실관계 요약

피해 회사는 국내 최대의 방역 및 환경·위생 분야 전문기업입니다. 피고인 B는 2001년 피해 회사에 입사하여 2021년 퇴사할 때까지 법인영업 실무 총괄 및 영업기획 등 업무를 담당하였습니다. 피고인 C는 피해 회사의 경쟁업체인 피고인 주식회사 D의 환경사업부문 상무입니다.

피해 회사의 고객정보는 ‘고객 마스터 데이터’에 저장되고 ‘K’ 고객관리프로그램을 통해 조회·관리되었으며, 매출 금액이 높은 중요 고객들의 정보는 ‘RM 고객리스트’로, 해약한 고객들의 정보는 ‘해약 고객리스트’로 별도 작성·관리되었습니다.

피고인 B는 피고인 C로부터 ‘채용보장각서’를 받는 등 D로의 이직을 확약받은 대신, 피해 회사의 고객정보를 프린터로 출력하거나 휴대전화로 모니터 화면을 사진촬영하는 방법으로 유출하여 C에게 제공하였습니다. 피고인 C는 이를 취득하여 고객사에 전화로 연락하며 D의 해충 방제 서비스 가입을 제안하는 등 영업활동에 사용하였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3. 8. 18. 피고인 B에게 징역 1년(2년간 집행유예), 피고인 C에게 징역 8월, 피고인 주식회사 D에게 벌금 3,000만 원을 선고하였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8. 18. 선고 2022고단6399 판결).

쟁점 정리

첫째, 이 사건 자료(RM 고객리스트, 해약 고객리스트)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가

피고인과 변호인은 이 사건 자료가 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현행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는 영업비밀을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밀로 관리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둘째, 비밀관리성 요건의 개정 취지에 비추어 그 인정 기준이 완화되어야 하는가

부정경쟁방지법은 1992년 영업비밀 보호제도 도입 당시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될 것을 요구하였다가, 2015. 1. 28. 개정으로 ‘합리적인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로 완화되었고, 2019. 1. 8. 개정으로 ‘합리적인 노력’이라는 문구 자체도 삭제되어 단순히 ‘비밀로 관리된’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이러한 개정 취지에 비추어 비밀관리성 인정 기준이 어느 정도로 완화되어야 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대법원 2020. 1. 9. 선고 2019마6016 결정).

셋째, 고객리스트의 비공지성 및 경제적 유용성이 인정되는가

피고인 측은 고객사 중 일부는 계약 사실을 공개하고 있으므로 비공지성이 없고, 경제적 유용성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비공지성이란 정보가 간행물 등의 매체에 실리는 등 불특정 다수인에게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보유자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정보를 통상 입수할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대법원 1996. 12. 23. 선고 96다16605 판결).

영업비밀 누설_2022고단6399
영업비밀 누설_2022고단6399

판시 내용

가. 비공지성 — 인정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이 사건 자료의 비공지성을 인정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① 이 사건 자료에 포함된 내용(과거·현재 계약 고객사 목록, 계약 금액, 담당자 이름·직책·연락처 등)은 간행물 등의 매체에 실리는 등의 방법으로 불특정 다수인에게 공공연히 알려진 바 없습니다.

② 피해 회사와 계약 관계에 있는 고객사 중 일반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회사의 경우 계약 사실을 공개하기도 하나, 계약금액, 담당자의 이름과 직책, 연락처까지 공개하지는 않습니다.

③ 피고인이 위 연락처를 영업에 이용하자 고객사 담당자가 연락처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문제 삼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통상 피해 회사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입수할 수 없는 것으로 비공지성이 인정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8. 18. 선고 2022고단6399 판결).

나. 경제적 유용성 — 인정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이 사건 자료의 경제적 유용성을 인정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① 이 사건 자료에 포함된 고객사의 수는 해약리스트 400여 개, RM 고객리스트는 2,000여 개에 이릅니다.

② 이는 피해 회사 직원들이 오랫동안 영업활동을 하면서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여 결과물을 축적한 자료들입니다.

③ 이러한 많은 수의 고객사에 접촉하여 그 정보를 취득하는 데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이고, 피해 회사를 통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정보의 수집이 사실상 어려워 보이므로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집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8. 18. 선고 2022고단6399 판결).

다. 비밀관리성 — 인정 (핵심 판시)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판시 부분입니다. 법원은 먼저 비밀관리성 요건의 개정 취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습니다.

구법상 ‘영업비밀’에서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다’는 것의 법리는 현행법상으로도 그 고려요소 등은 원칙적으로 적용될 수 있지만, 법 개정 취지(‘상당한 노력’이 ‘합리적 노력’으로 개정되었다가 이 또한 삭제되면서 단순히 ‘비밀로 관리된’으로 개정되었다)에 비추어 그 인정 기준은 적절하게 완화되어야 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8. 18. 선고 2022고단6399 판결).

법원은 이러한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여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이 사건 자료가 비밀로 관리되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① 피해 회사는 정보보호규정 등을 제정하고 임직원들에게 비밀유지서약서 등을 받고, 정기적으로 영업비밀보호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사내시설에 대한 출입을 통제하였습니다 (인적·법적 관리, 조직적 관리).

② 피해 회사는 이 사건 자료를 영업비밀로 분류하여 관리하였습니다.

③ 이 사건 자료는 원칙적으로 피해 회사 내부에서만 접근 가능하도록 전산망이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물리적·기술적 관리).

④ 이 사건 자료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암호화를 해제하여야 하는데 그 권한은 팀장과 그 상사인 임원에게만 있었습니다 (접근 제한)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8. 18. 선고 2022고단6399 판결,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핵심 포인트 — 반드시 알아야 할 4가지

① 비밀관리성 요건은 2019년 개정으로 ‘비밀로 관리된’으로 완화되었고, 그 인정 기준도 적절하게 완화되어야 합니다.

이 판결은 2019. 1. 8.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으로 비밀관리성 요건이 ‘상당한 노력’ → ‘합리적인 노력’ → ‘비밀로 관리된’으로 단계적으로 완화된 입법 취지에 비추어, 법원의 비밀관리성 인정 기준도 적절하게 완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선언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대법원 2020. 1. 9. 선고 2019마6016 결정). 중소기업이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기업도 합리적인 수준의 비밀관리 조치를 취하였다면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② 비밀관리성 인정을 위한 핵심 요소는 ① 물리적·기술적 관리, ② 인적·법적 관리, ③ 조직적 관리의 세 가지입니다.

이 판결에서 법원은 전산망 분리·암호화(물리적·기술적 관리), 비밀유지서약서·정보보호규정(인적·법적 관리), 영업비밀보호교육·출입통제(조직적 관리)를 종합하여 비밀관리성을 인정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기업은 이 세 가지 요소를 균형 있게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③ 고객리스트는 비공지성과 경제적 유용성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 일부 정보가 공개되어 있더라도 전체 리스트의 비공지성은 유지됩니다.

이 판결에서 법원은 고객사 중 일부가 계약 사실을 공개하더라도 계약금액, 담당자 연락처 등 세부 정보까지 공개되지 않는 이상 비공지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대법원 1996. 12. 23. 선고 96다16605 판결). 이는 앞서 살펴본 스핀 척 판결에서 개별 부품이 시중에 유통되더라도 최적화된 구성품으로서 특정되어 공지된 것이 아니라면 비공지성이 인정된다는 법리와 궤를 같이 합니다.

④ ‘채용보장각서’를 매개로 한 영업비밀 유출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과 업무상배임의 중한 범죄입니다.

이 판결에서 피고인 B는 경쟁업체로부터 채용보장각서를 받는 대가로 영업비밀을 유출하였습니다. 이는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3호 라목의 “계약관계 등에 따라 영업비밀을 비밀로서 유지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자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그 영업비밀의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그 영업비밀을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라목, 제18조 제1항, 대법원 2009. 10. 15. 선고 2008도9433 판결). 이직을 앞둔 직원의 영업비밀 유출 위험에 대한 사전 예방 조치가 필수적입니다.

기업 영업비밀 김정민 변호사
기업 영업비밀 김정민 변호사

마치며 — “법이 바뀌었습니다 — 이제 ‘비밀로 관리된’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판결은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으로 비밀관리성 요건이 완화된 취지에 비추어 법원의 인정 기준도 적절하게 완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선언한 중요한 판결입니다. 과거에는 엄격한 비밀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기업이 영업비밀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으나, 이제는 합리적인 수준의 비밀관리 조치만으로도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① 정보보호규정 제정 및 비밀유지서약서 징구, ② 정기적인 영업비밀보호교육 실시, ③ 핵심 정보에 대한 전산망 분리 및 접근 권한 제한, ④ 영업비밀 분류·관리 체계 구축, ⑤ 퇴직 예정 직원에 대한 영업비밀 반환·폐기 확인 절차 마련이 필수적입니다.

“법이 바뀌었습니다.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 ‘비밀로 관리된’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관리도 하지 않으면 여전히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합리적인 수준의 비밀관리 체계를 갖추는 것, 그것이 영업비밀 보호의 출발점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8. 18. 선고 2022고단6399 판결, 대법원 2020. 1. 9. 선고 2019마6016 결정, 대법원 2009. 10. 15. 선고 2008도9433 판결, 대법원 1996. 12. 23. 선고 96다16605 판결,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제3호, 제10조, 제11조, 제18조 제1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