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범에게 속아 개인정보를 넘겨주고 원격조정 프로그램까지 설치했다면, 그 결과로 발생한 보험약관대출은 전부 내 책임일까요?” 보이스피싱 보험 분쟁
메신저피싱 피해자인 원고가 보험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보험약관대출약정 자체는 원고에게 유효하게 귀속되지만 보험회사가 본인확인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보아 그 손해배상책임을 대출금액의 50%로 제한하였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4. 11. 선고 2021가단5243198 판결). 대출계약의 효력과 손해배상책임이라는 두 층위의 쟁점이 어떻게 다르게 판단되었는지, 지금부터 핵심 쟁점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면 다음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① 보험약관대출이 금융실명법 적용대상이 아닌 이유와 그럼에도 보험회사에 본인확인의무가 부과되는 근거
② 공동인증서를 통한 본인확인절차를 거쳤음에도 대출계약의 효력이 원고에게 귀속되는 이유
③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의 ‘정당한 이유’ 법리가 공인인증서 폐지 이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
④ 전자금융거래법 및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본인확인조치의무 위반이 손해배상책임으로 이어지는 논리 구조
⑤ 피해자의 과실을 반영하여 책임을 50%로 제한한 구체적 근거

1. 사실관계 요약 — 당사자가 직면한 위기
가. 사건의 경위
원고는 2021. 4. 24. 자신의 막내아들을 사칭한 성명불상자로부터 휴대전화 고장을 이유로 운전면허증 사진과 프로그램 설치를 요구받았고, 이를 믿고 운전면허증 촬영사진, 은행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전송하는 한편 원격제어프로그램인 팀뷰어를 휴대폰에 설치하였습니다.
성명불상자는 이렇게 편취한 개인정보와 원격조정 권한을 이용하여 원고 명의의 공동인증서를 갱신 발급받았고, 피고 보험회사의 모바일 앱에 접속하여 원고가 체결한 5개 보험계약에 대하여 합계 5,000만 원의 보험계약대출을 신청하였습니다. 피고는 휴대전화 SMS인증과 공동인증서를 통한 본인확인만을 거쳐 대출을 승인하고 대출금을 원고의 기존 송금계좌로 송금하였습니다. 이후 성명불상자는 위 대출금과 다른 경로로 확보한 자금을 85회에 걸쳐 제3자 명의 사기이용계좌로 분산 송금하여 인출해 갔고, 원고의 피해는 거의 회복되지 못하였습니다.
나. 당사자들이 직면한 위기
| 구분 | 내용 |
|---|---|
| 원고의 위기 |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명의가 도용되어 5,000만 원의 보험약관대출 채무를 부담하게 된 상황. 향후 보험사고나 계약 해지 시 보험금·해약환급금에서 대출원리금이 공제될 처지 |
| 피고(보험회사)의 위기 | 비대면 전자금융거래 방식으로 대출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본인확인절차를 소홀히 하였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위험에 노출된 상황 |
| 핵심 쟁점 | 보험약관대출이 금융실명법 적용대상인지, 공동인증서를 통한 본인확인만으로 대출계약의 효력이 원고에게 귀속되는지, 본인확인의무 위반이 있다면 그 책임 비율은 어떻게 정해지는지 |
2. 핵심 쟁점 Q&A
Q1. 보험약관대출은 금융실명법이 적용되는 금융거래인가요?
A. 아닙니다. 보험약관의 대출 규정에 따른 대출계약은 약관상 의무의 이행으로 행하여지는 것으로서 보험계약과 별개의 독립된 계약이 아니라 보험계약과 일체를 이루는 하나의 계약이고, 그 경제적 실질은 보험회사가 장차 지급할 보험금이나 해약환급금을 미리 지급하는 선급금과 같은 성격을 가집니다(대법원 2007. 9. 28. 선고 2005다15598 전원합의체 판결). 따라서 ‘대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일반적인 대출과 같은 소비대차로서의 법적 성격을 가지지 않습니다.
법원은 보험료를 대상으로 하는 거래는 금융실명법 제2조 제3호의 ‘금융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9. 3. 26. 선고 2008도7874 판결)와 은행연합회의 금융실명거래 업무해설에서 보험거래를 실명거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이 사건 보험계약대출은 금융실명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였습니다.
Q2. 금융실명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보험회사는 본인확인의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법원은 금융실명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더라도 전자금융거래법 및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그 목적과 입법취지가 금융실명법과 다르므로, 금융실명법상 본인확인의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들 법률에서 요구하는 비대면 전자금융거래시의 본인확인의무 또는 통신사기피해방지의무까지 면제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특히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이용자가 비대면 전자금융거래 방식으로 대출을 신청하거나 저축성보험 등을 해지하는 경우 금융회사로 하여금 본인확인조치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아 손해가 발생한 경우 배상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2조의4). 보험회사도 위 법률이 정한 금융회사에 포함되므로, 보험계약대출을 비대면 전자금융거래 방식으로 실행하는 경우에도 이 본인확인의무가 적용된다고 본 것입니다.

Q3. 공동인증서를 통한 본인확인을 거쳤다면 대출계약의 효력은 당연히 원고에게 귀속되나요?
A. 법원은 이 사건에서 대출계약의 효력 귀속 문제와 본인확인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 문제를 분리하여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종전에 구 전자서명법에 따라 공인인증기관이 발급한 공인인증서로 본인확인이 된 경우, 설령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작성·송신되었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의 ‘정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의한 송신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8. 3. 29. 선고 2017다257395 판결).
이 사건 법원은 이 사건 보험계약대출약정이 보험계약과 일체를 이루는 계약으로서 이미 실명확인을 거친 기존 계좌를 통한 거래이고, 원고 본인의 휴대전화를 통한 SMS인증과 공동인증서를 통한 본인확인절차를 거쳐 체결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에 따라 그 법률효과가 원고에게 유효하게 귀속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즉 대출계약 자체는 무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Q4. 선행 대법원 판결의 법리는 공인인증서 제도가 폐지된 현재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나요?
A. 법원은 이 부분을 상세히 검토하였습니다. 선행판결이 공인인증서에 기초한 전자서명에 강력한 효력을 인정한 이유는, 구 전자서명법 하에서 공인인증서가 국가의 관리·감독을 받는 공인인증기관이 개입함으로써 안전성과 신뢰성이 확보된 전자서명수단이었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2020. 6. 9. 법률 제17354호로 전자서명법이 전부 개정되어 2020. 12. 10.부터 공인인증서 제도가 폐지되고, 전자서명의 추정적 효력 규정 및 공인인증서를 이용한 본인확인 가능 규정이 삭제됨으로써 전자서명수단이 국가 위주에서 민간 위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선행판결의 법리는 구 전자서명법이 적용되는 사안에 한하여 적용될 수 있고, 신 전자서명법이 적용되는 사안에서는 더 이상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이러한 법리 변화와 별개로, 통신사기피해환급법 및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른 본인확인의무·피해방지책임의 이행 여부라는 독자적인 기준으로 손해배상책임을 판단하였습니다.
Q5. 피고는 본인확인의무를 어떻게 소홀히 하였다고 판단되었나요?
A. 법원은 여러 사정을 근거로 피고의 본인확인의무 위반을 인정하였습니다. 이 사건 공동인증서는 대출 신청 직전에 갱신 발급된 것이었고, 대출 신청 시각은 토요일인 2021. 4. 24. 14:49경으로 1일 대출한도를 모두 신청하는 등 전자금융거래의 진정성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고는 원고 본인의 휴대전화를 통한 SMS인증과 공동인증서를 통한 본인확인절차만을 거쳤을 뿐 다른 확인절차 없이 곧바로 대출을 승인하였습니다. 은행연합회·금융투자협회가 정한 ‘비대면 실명확인방안’은 실명확인증표 사본 제출, 영상통화, 접근매체 전달과정 확인, 기존계좌 활용, 바이오정보 대조라는 5가지 필수적 확인방법 중 2가지 이상을 중첩 적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데, 피고가 사용한 SMS인증과 공동인증서 확인은 이러한 필수적 확인방법이 아니라 이를 보완하기 위한 추가적·권고적 확인방식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피고는 필수적 확인방법은 하나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Q6. 법원은 왜 피고의 책임을 대출금액의 50%로 제한하였나요?
A. 법원은 피고의 본인확인의무 위반으로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함을 인정하면서도, 원고 측의 과실 요소를 함께 고려하여 책임을 제한하였습니다. 그 근거로는 원고가 성명불상자에게 속아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휴대폰에 원격조정 프로그램까지 직접 설치하여 사고 발생에 상당히 기여하였다는 점, 원고가 약 30년간 직장생활을 한 만 51세 여성으로서 보이스피싱 범행이 만연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던 점, 원격제어 상태였음에도 피고가 발송한 대출 안내 문자를 원고가 실제로 확인하였음에도 적시에 조치를 취하지 못한 점 등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여 법원은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대출금액의 50%로 제한하였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4. 11. 선고 2021가단5243198 판결).
Q7. 원고는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려 하였고,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A. 원고는 이 사건 보험계약대출약정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하며, 성명불상자가 원고의 명의를 도용하여 체결한 계약이므로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의 ‘정당한 이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채무부존재확인을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대출계약 자체의 효력은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피고의 본인확인의무 위반이라는 별도의 책임 근거를 인정하여 원고를 구제하는 방식을 택하였습니다. 즉 대출계약은 유효하게 성립하였으나 피고의 의무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고, 그 손해배상채권과 대출원리금 채무가 실질적으로 상계되는 결과에 이르러, 원고는 대출금액의 50%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하여는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결국 원고의 청구는 전부 인용되지는 않았으나, 절반 범위에서는 목적을 달성하였습니다.

마치며
“그렇다면 비대면 전자금융거래를 취급하는 금융회사와 보이스피싱 피해가 우려되는 이용자는 각각 무엇을 준수해야 할까요?” 이 판결은 두 가지 층위의 기준을 분명히 제시합니다. 금융회사는 금융실명법 적용 여부와 무관하게 전자금융거래법 및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비대면 실명확인방안이 정한 필수적 확인방법을 2가지 이상 중첩 적용해야 하며, SMS인증이나 공동인증서 확인과 같은 보완적 수단만으로는 본인확인의무를 다하였다고 볼 수 없습니다. 특히 대출 신청 시각이나 한도 소진 여부 등 거래의 진정성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는 경우에는 더욱 엄격한 확인이 요구됩니다. 한편 이용자 입장에서도 원격조정 프로그램 설치와 같이 사고 발생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행위가 있었다면 손해배상책임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출처가 불분명한 프로그램 설치나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 판결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