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변호사-영업비밀 침해 안됨, 손해배상 해야 – 업무상배임 불법행위

“형사재판에서 영업비밀 침해는 무죄, 업무상배임만 유죄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민사 손해배상은 어떻게 될까요?” 퇴사하면서 회사 자료를 들고 나간 직원들, 영업비밀 침해는 입증되지 않았지만 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직원들을 고용한 경쟁 회사는 책임을 면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영업비밀 침해와 업무상배임, 그리고 민법상 불법행위의 미묘한 경계를 이 판결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영업비밀 침해 안되어도 손해배상 가능
영업비밀 침해 안되어도 손해배상 가능

사실관계 요약

원고 주식회사 A는 자동차 부품의 제조에 사용되는 검사장비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국내외 주요 자동차 부품 제조사에 공급하는 회사입니다.

피고 B는 원고에서 퇴사한 후 산업처리공정 제어장비 제조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피고 회사 E를 설립하여 대표이사가 되었고, 피고 C는 원고에서 퇴사한 후 피고 회사에 입사하여 사내이사 겸 개발상무로, 피고 D는 원고에서 퇴사한 후 피고 회사에 입사하여 기구설계 관련 설계부장으로 각각 근무하였습니다.

자료 반출 경위

  • 피고 B : 원고 재직 시 사용하던 업무용 노트북에 ‘2015년 발주리스트’ 파일을 포함한 여러 자료를 복사
  • 피고 C : 자신이 사용하던 외장 하드디스크 등에 ‘이 사건 프로젝트 현황’을 포함한 여러 자료를 복사
  • 피고 D : 자신이 사용하던 USB에 ‘이 사건 공압회로도’를 복사

피고들은 위 자료들을 반납하거나 폐기하지 않은 채 퇴사하였습니다.

관련 형사사건에서 피고 B, C, D에 대하여 업무상배임의 범죄사실은 유죄로 인정되었으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영업비밀누설등)의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원고는 민사소송에서 ① 주위적 청구로 영업비밀 침해행위, ② 제1예비적 청구로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파)목 부정경쟁행위, ③ 제2예비적 청구로 민법상 불법행위를 각각 주장하였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4. 9. 13. 주위적 청구 및 제1예비적 청구를 기각하고, 제2예비적 청구인 민법상 불법행위 부분을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9. 13. 선고 2021가합538799 판결).

쟁점 정리

본 사건의 핵심 쟁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이 사건 자료(발주리스트, 프로젝트 현황, 공압회로도)가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에 해당하는가?

영업비밀이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합리적인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말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피고들이 이 사건 자료를 실제로 사용하거나 공개하였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둘째, 피고들의 행위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파)목의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하는가?

원고는 이 사건 자료가 원고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에 해당하므로, 피고들이 이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무단 사용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파목).

셋째, 피고 B, C, D의 업무상배임 행위가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가, 그리고 피고 회사 E는 공동불법행위 또는 사용자책임을 부담하는가?

형사재판에서 업무상배임 유죄판결이 확정된 피고 B, C, D의 행위가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그리고 이들을 고용한 피고 회사 E가 공동불법행위 또는 사용자책임을 부담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민법 제750조, 제756조).

영업비밀 침해금지_2021가합538799
영업비밀 침해금지_2021가합538799

판시 내용

가. 영업비밀 침해 해당 여부 — 불인정

법원은 이 사건 자료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더라도 피고들이 이를 실제로 사용하거나 공개하였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관련 형사사건에서 이루어진 피고 회사에 대한 압수수색에도 불구하고 원고의 영업비밀 침해 주장을 뒷받침할 뚜렷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고, 원고는 피고들이 발주리스트 및 프로젝트 현황을 이 사건 수주에 어떻게 사용하였는지에 관하여 아무런 주장·입증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피고 D가 공압회로도의 표제부를 삭제한 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이를 사용하여 공압회로도를 작성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3호 (라)목의 영업비밀 침해행위는 계약관계 등에 따라 영업비밀을 비밀로서 유지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자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그 영업비밀의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그 영업비밀을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요건으로 하므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라목), 단순한 보유만으로는 침해행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나. (파)목 부정경쟁행위 해당 여부 — 불인정

법원은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피고들이 이 사건 자료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파목).

다. 피고 B, C, D의 민법상 불법행위 — 인정

법원은 관련 형사사건에서 피고 B, C, D에 대하여 업무상배임의 범죄사실로 유죄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된 사실을 근거로, 피고 B, C, D가 업무상배임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민법 제750조).

회사 직원이 경쟁업체 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할 의사로 무단으로 자료를 반출하는 행위는, 위 자료가 반드시 영업비밀에 해당할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적어도 불특정 다수인에게 공개되어 있지 않아 보유자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이를 입수할 수 없고 보유자가 자료 취득이나 개발을 위해 상당한 시간, 노력 및 비용을 들인 것으로 이를 통해 경쟁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정도의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업무상배임에 해당합니다.

법원은 피고 B에게 15,000,000원, 피고 C와 D에게 각 10,000,000원 및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하였습니다.

라. 피고 회사 E의 책임 — 불인정

법원은 피고 회사 E의 공동불법행위 책임 및 사용자책임을 모두 부정하였습니다.

① 공동불법행위 책임 불인정

회사 직원이 퇴사한 후에는 더 이상 업무상배임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고, 퇴사 시에 반환하거나 폐기하지 아니한 영업비밀 등을 경쟁업체에 유출하거나 스스로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하더라도 이는 이미 성립한 업무상배임 행위의 실행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퇴사한 회사 직원에 대하여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이상, 제3자가 위와 같은 유출 내지 이용행위에 공모·가담하였다 하더라도 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는 등의 사정이 없는 한 업무상배임죄의 공범 역시 성립할 수 없습니다 (대법원 2017. 6. 29. 선고 2017도3808 판결 참조).

피고 B, C가 원고에서 퇴사할 당시에는 피고 회사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 회사가 피고 B 등과 공동불법행위를 하였음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② 사용자책임 불인정

피고 B, C, D가 업무상배임의 불법행위를 저지를 당시 피고 회사의 피용자가 아니었으므로, 피고 회사는 사용자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민법 제756조).

민법 제756조의 사용자책임은 피용자가 그 사무집행에 관하여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 성립하는데, 피고들의 자료 반출 행위는 피고 회사에 입사하기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피고 회사의 사무집행과의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민법 제756조; 대법원 1992. 2. 25. 선고 91다39146 판결).

핵심 포인트 — 반드시 알아야 할 4가지

① 영업비밀 침해는 ‘보유’만으로는 부족하고, ‘사용 또는 공개’가 입증되어야 합니다.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침해행위는 영업비밀을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요건으로 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라목). 퇴사 시 자료를 반출하여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영업비밀 침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원고로서는 피고들이 해당 자료를 실제로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입증하여야 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

② 영업비밀 침해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업무상배임 유죄판결이 확정되면 민사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됩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영업비밀 침해 입증에 실패하더라도 업무상배임의 불법행위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민법 제750조). 특히 관련 형사사건에서 업무상배임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 그 판결은 민사소송에서 강력한 증거로 활용됩니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주위적 청구가 기각되더라도 예비적 청구로 민법상 불법행위를 병합하여 청구하는 전략이 유효합니다.

③ 퇴사 후 자료를 사용한 행위에 대해서는 업무상배임의 공범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퇴사한 직원은 더 이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지 않으므로, 퇴사 후 자료를 유출하거나 이용하는 행위는 이미 성립한 업무상배임의 실행행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이를 알고 활용한 경쟁 회사도 업무상배임의 공범이 되지 않습니다 (대법원 2017. 6. 29. 선고 2017도3808 판결 참조). 경쟁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업무상배임 공범 이외의 별도 법리 — 예컨대 영업비밀 침해행위(마목), 부정경쟁행위(파목), 또는 독자적인 불법행위 — 를 입증하여야 합니다.

④ 사용자책임은 불법행위 당시 피용자 지위가 있어야 합니다.

민법 제756조의 사용자책임은 피용자가 사용자의 사무집행에 관하여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에 성립합니다 (민법 제756조; 대법원 1992. 2. 25. 선고 91다39146 판결). 이 사건에서 피고들의 자료 반출 행위는 피고 회사에 입사하기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피고 회사는 사용자책임을 부담하지 않습니다. 경쟁 회사를 상대로 사용자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불법행위 당시 해당 직원이 이미 경쟁 회사에 재직 중이었어야 합니다.

기업 영업비밀 김정민 변호사
기업 영업비밀 김정민 변호사

마치며 — 영업비밀 소송, 예비적 청구를 빠뜨리지 마십시오

이 판결은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주위적 청구가 기각되더라도 예비적 청구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영업비밀의 ‘사용 또는 공개’를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압수수색을 통해서도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업무상배임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 이를 근거로 한 민법상 불법행위 청구는 유효한 구제 수단이 됩니다. 다만 경쟁 회사에 대한 책임 추궁은 별도의 법리가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사용자책임은 불법행위 당시의 피용자 지위를 전제로 한다는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주위적 청구만 준비하는 것은 절반의 준비입니다. 예비적 청구까지 철저히 설계하는 것이 완전한 소송 전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