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도 함께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공동으로 만든 기술인데,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 왜 영업비밀 침해인가요?”-공동 개발 기술도 상대방 동의 없이 누설하면 안됩니다.
특허권이나 저작권의 공유자는 원칙적으로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 자신이 실시하거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업비밀도 마찬가지일까요? 이 판결은 영업비밀의 경우 공유자라 하더라도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 이를 누설하면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확히 선언하였습니다. 또한 개개 단위의 정보도 독자성과 경제성이 있으면 영업비밀로 보호된다는 점도 확인하였습니다. 반도체 설비 기술 유출 사건을 통해 이 판결의 핵심 법리를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사실관계 요약
피해회사 V는 반도체 관련 설비를 제조하는 회사로서, 피고인 H 주식회사(이하 ‘피고인 H’)는 V와 공동으로 AB 설비의 개발에 참여한 회사입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 된 자료(이하 ‘범죄일람표 1 자료’)는 설비제작사양서, 불합리 리스트, CTQ Check Sheet, 설비세팅기준서, 패널 도면 등으로 구성된 AB 설비 관련 기술 자료입니다.
피고인들(B, E, F, G, J, K, M, O, Q 및 피고인 H, I)은 V의 AB 설비 관련 영업비밀을 국내외로 누설하거나 취득·사용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피고인들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영업비밀누설등 및 영업비밀국외누설등),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등으로 기소되었습니다.
원심(수원지방법원 2021. 1. 21. 선고 2018고합586 등 판결)은 일부 무죄를 선고하였고, 검사가 항소하였습니다. 수원고등법원은 2023. 3. 7. 원심을 파기하고 검사의 항소이유를 받아들였습니다 (수원고등법원 2023. 3. 7. 선고 2021노69 판결).
쟁점 정리
첫째, 범죄일람표 1 자료 전체 및 개개 단위의 정보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가
피고인 측은 범죄일람표 1 자료 중 피고인 H이 기여한 부분이 있거나, 장비의 일반적인 목표나 기능 등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고, 실제 AB 설비에 반영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므로 그 전부를 영업비밀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영업비밀성 판단이 자료 ‘전부’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개개 단위의 정보도 독자적으로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둘째, 영업비밀의 공동보유자가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 영업비밀을 누설하는 행위가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하는가
피고인 H은 V와 공동으로 AB 설비를 개발하였으므로 범죄일람표 1 자료의 공동보유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공동보유자로서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 영업비밀을 사용·누설하더라도 영업비밀 침해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특허권 공유자(특허법 제99조 제2항)나 공동저작자의 경우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 자신이 실시·이용할 수 있다는 법리가 영업비밀에도 적용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제3호).
셋째, 영업비밀 보유자의 범위 — 공동개발자도 영업비밀 보유자가 될 수 있는가
검사는 영업비밀의 보유자는 해당 비밀정보를 단독으로 개발한 자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개발을 포함하여 정당한 권한을 취득한 자로서 해당 정보를 비밀로 관리하며 경쟁상 이익을 보유하고 있는 자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판시 내용
가. 영업비밀성 판단 법리 — 개개 단위의 정보도 보호대상
법원은 영업비밀성 판단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습니다.
연구개발 때의 실패 사례나 불사용 데이터 등의 이른바 네거티브 인포메이션(negative information) 등도 유용한 기술상의 정보로 영업비밀에 포함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영업비밀로서 보호되는 정보는 광범위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 중에서 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의 요건을 구비한 정보로서, 시각적으로 관찰할 수 있거나 물품 등으로 구체화한 유형적 정보뿐만 아니라 기능이나 작용과 같은 무형적인 정보를 포괄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대법원 2011. 7. 14. 선고 2009다12528 판결).
특히 그 자체 독립해서 보호되지 않는 개개 단위의 정보가 합하여 전체로서 하나의 유용한 정보를 구성하는 종합정보는 물론, 단편적인 개개 단위의 정보 역시 독자성이 있고 경제성이 있으면 보호대상이 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수원고등법원 2023. 3. 7. 선고 2021노69 판결).
이러한 법리에 따라 법원은 이 사건 AB 기술에 관한 유기적 일체로서의 범죄일람표 1 자료의 전체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개개 단위의 범죄일람표 1 자료는 모두 V가 단독으로, 또는 피고인 H과 공동으로 보유하는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피고인 H이 기여한 부분이 있거나 실제 AB 설비에 반영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사정은 영업비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수원고등법원 2023. 3. 7. 선고 2021노69 판결).
나. 공동보유 영업비밀의 누설 — 영업비밀 침해행위 해당 (핵심 판시)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판시 부분입니다. 법원은 공동보유 영업비밀의 누설이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습니다.
특허법 제99조 제2항·제4항에 의하면 특허권이 공유인 경우 각 공유자는 계약으로 특별히 약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공유자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그 특허발명을 자신이 실시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공동저작자가 다른 공동저작자와의 합의 없이 공동저작물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공동저작자들 사이에서 저작재산권의 행사방법을 위반한 행위가 되는 것에 그칠 뿐 다른 공동저작자의 저작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까지 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특허법 제99조 제2항·제4항, 저작권법 제48조).
그러나 법원은 영업비밀의 경우 이와 달리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구 부정경쟁방지법에는 영업비밀 공유자 사이의 영업비밀 사용에 대한 규정이 없기는 하나, 이미 일반에 공지되어 있는 특허권과 저작권과는 달리 영업비밀의 경우 영업비밀 공유자 사이에 아무런 제한 없이 각자 사용을 인정하게 되면, 자칫 영업비밀이 일반에게 공개됨으로써 영업비밀로서의 속성(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을 상실하게 될 위험을 초래하게 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수원고등법원 2023. 3. 7. 선고 2021노69 판결).
따라서 영업비밀의 공동보유자라 하더라도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 영업비밀을 누설하는 행위는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제18조 제1항, 수원고등법원 2023. 3. 7. 선고 2021노69 판결).
다. 영업비밀 보유자의 범위 — 공동개발자 포함
법원은 영업비밀의 보유자는 해당 비밀정보를 단독으로 개발한 자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최초로 생산·개발하였거나(공동개발 포함), 유효한 거래행위 등으로 영업비밀에 관한 정당한 권한을 취득한 자로서, 해당 정보를 비밀로 관리하며 경쟁상 이익을 보유하고 있는 자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수원고등법원 2023. 3. 7. 선고 2021노69 판결).
이에 따라 V와 피고인 H은 범죄일람표 1 자료의 공동보유자에 해당하고, 피고인 H이 V의 동의 없이 이를 누설한 행위는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합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라목, 제18조 제1항, 수원고등법원 2023. 3. 7. 선고 2021노69 판결).
핵심 포인트 — 반드시 알아야 할 4가지
① 영업비밀성 판단은 자료 전체를 기준으로 하되, 개개 단위의 정보도 독자성과 경제성이 있으면 독립적으로 보호됩니다.
이 판결에서 법원은 범죄일람표 1 자료의 전체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개개 단위의 정보도 모두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대법원 2011. 7. 14. 선고 2009다12528 판결). 실패 사례나 불사용 데이터 등 네거티브 인포메이션도 영업비밀에 포함될 수 있으므로, 기업은 개발 과정에서 생성된 모든 자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여야 합니다. (정상조, 『부정경쟁방지법 주해[제2판]』, 박영사(2024년), 368-369면)
② 영업비밀의 공동보유자라 하더라도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 영업비밀을 누설하면 영업비밀 침해행위가 됩니다 — 특허권·저작권의 공유 법리와 다릅니다.
이 판결에서 법원은 특허권이나 저작권의 공유 법리와 달리, 영업비밀의 경우 공유자 사이에 아무런 제한 없이 각자 사용을 인정하면 비공지성·경제적 유용성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공동보유자의 무단 누설도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제3호, 제18조 제1항). 공동개발 계약 체결 시 영업비밀의 사용·공개 범위와 조건을 명확히 약정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윤선희, 『영업비밀보호법[제3판]』, 법문사(2019년), 235면)
③ 영업비밀 보유자는 단독 개발자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 공동개발자, 정당한 권한 취득자도 보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판결에서 법원은 영업비밀 보유자의 범위를 단독 개발자로 한정하지 않고, 공동개발자나 유효한 거래행위로 정당한 권한을 취득한 자도 포함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따라서 공동개발 계약에서 영업비밀의 귀속 주체와 보유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분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④ 비밀관리성 판단은 현행법상 ‘비밀로 관리된’ 것으로 완화되었으나, 물리적·기술적·인적·조직적 관리가 균형 있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범죄일람표 1 자료의 비밀관리성이 인정된 것은 피해회사가 설비제작사양서, 설비세팅기준서 등 핵심 기술 자료에 대하여 접근 제한, 비밀 표시, 비밀유지서약 등 체계적인 비밀관리 조치를 취하였기 때문입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도13791 판결). 비밀관리성 판단에서는 ① 물리적·기술적 관리, ② 인적·법적 관리, ③ 조직적 관리가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의정부지방법원 2016. 9. 27. 선고 2016노1670 판결).

마치며 — “공동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영업비밀은 특허권·저작권과 다릅니다”
이 판결은 영업비밀의 공동보유자라 하더라도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 영업비밀을 누설하면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확히 선언한 중요한 판결입니다. 특허권이나 저작권의 공유 법리를 영업비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개개 단위의 정보도 독자성과 경제성이 있으면 영업비밀로 보호된다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① 영업비밀의 귀속 주체와 보유 범위를 계약서에 명확히 규정하고, ② 공동보유 영업비밀의 사용·공개 조건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약정하며, ③ 개발 과정에서 생성된 모든 자료(네거티브 인포메이션 포함)에 대한 비밀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④ 공동개발 참여자 전원에게 비밀유지서약서를 징구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공동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업비밀은 특허권이나 저작권과 다릅니다. 공동보유자라 하더라도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 영업비밀을 누설하는 순간, 그것은 영업비밀 침해행위입니다. 공동개발 계약서에 영업비밀 조항을 빠뜨리는 것은 분쟁의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수원고등법원 2023. 3. 7. 선고 2021노69 판결, 대법원 2011. 7. 14. 선고 2009다12528 판결,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도13791 판결, 의정부지방법원 2016. 9. 27. 선고 2016노1670 판결,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제3호, 제18조 제1항, 특허법 제99조 제2항·제4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