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회사가 다른 회사의 게임을 통째로 베껴 출시했다면, 그 게임의 캐릭터를 직접 디자인한 프리랜서 개발자는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 게임 캐릭터 무단 도용
게임사와 계약을 맺고 캐릭터를 납품한 외주 디자이너가 저작권자로서 독자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손해액은 어떻게 산정되는지를 정면으로 다룬 판결이 나왔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2025년 1월, 게임 캐릭터를 직접 디자인한 개발자들의 저작권 침해를 일부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명하였습니다. 게임 업계 종사자와 저작권 실무가라면 반드시 주목해야 할 판결입니다.

1. 사실관계 요약
원고 회사(주식회사 A, 이후 파산)는 3D 메카닉 액션 RPG 게임(이하 ‘원고 게임’)을 개발·유통한 게임사입니다. 원고 C는 원고 회사와 캐릭터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원고 게임의 메인캐릭터 71개, 서브캐릭터 38개 등을 디자인한 프리랜서 디자이너이고, 원고 D는 원고 회사와 그래픽 제작 계약을 체결하고 캐릭터 일러스트 등을 납품한 디자이너입니다.
피고 주식회사 E는 원고 회사로부터 원고 게임의 해외 독점 판매권한을 부여받는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원고 회사와 저작권 양도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채 2018. 5. 28.경 원고 게임에 경미한 변형만을 가한 실질적으로 유사한 게임(이하 ‘피고 게임’)을 콘솔 플랫폼으로 무단 출시하였습니다.
이에 원고 회사(파산관재인 수계), 원고 C, D는 피고를 상대로 저작권침해금지, 침해물건 폐기,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제1심은 원고 회사의 청구 일부를 인용하고 원고 C, D의 청구는 전부 기각하였으나,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원고 C, D의 항소를 일부 받아들여 각각 3,500,000원, 1,500,000원의 손해배상을 인정하였습니다.
2. 쟁점 정리
가. 피고의 저작권 침해 고의 및 권리남용 여부
피고는 원고 회사가 오랜 기간 저작권 침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이 사건 소 제기는 파산을 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원고 회사가 이미 게임 운영 능력을 상실하였으므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도 주장하였습니다.
나. 원고 게임의 창작성 인정 여부
피고는 원고 게임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창작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게임 저작물은 어문저작물, 음악저작물, 미술저작물, 영상저작물, 컴퓨터프로그램 저작물이 결합된 복합적 성격의 저작물로서, 창작성 인정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었습니다 (대법원 2019. 6. 27. 선고 2017다212095 판결).
다. 외주 디자이너(원고 C, D)의 독자적 저작권 귀속 여부
원고 C, D이 원고 회사와의 계약에 따라 납품한 캐릭터의 저작권이 원고 C, D 본인에게 귀속되는지, 아니면 원고 회사 또는 제3자에게 귀속되는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게임물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창작성이 인정되면 원저작물인 게임물과 별개로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7다63409 판결).
라. 고의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권과 상계 허용 여부
피고는 원고 회사에 대한 판결금 채권을 반대채권으로 하여 손해배상금 채권과 상계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고의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수동채권으로 한 상계가 허용되는지 여부가 문제되었습니다 (민법 제496조).
마. 손해액 산정 방법
저작권법 제125조 제1항(침해자 이익액 추정), 제2항(통상 받을 수 있는 금액), 제126조(법원의 재량에 의한 상당한 손해액 인정) 중 어느 규정을 적용하여 손해액을 산정할 것인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저작권법 제125조, 제126조).

3. 판시 내용
가. 피고의 저작권 침해 고의 인정, 권리남용 불인정
법원은 피고가 원고 회사로부터 저작권 양도가 불가능하다는 의사를 전달받고도 원고 게임과 실질적으로 유사한 피고 게임을 무단 출시한 사실에 비추어 저작권 침해에 대한 고의를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원고 회사가 파산 절차 진행 중에 소를 제기한 사정만으로는 오로지 피고를 괴롭히기 위한 목적의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나. 원고 게임의 창작성 인정
법원은 원고 게임과 피고 게임이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게임 규칙 외에 캐릭터, 배경, 이미지 사운드, 게임 시나리오 등이 거의 동일하고, 적어도 일부 캐릭터는 일반적인 로봇 디자인과 확연히 구분되며 창작자의 개성이 발현되어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대법원 2019. 6. 27. 선고 2017다212095 판결).
다. 외주 디자이너의 독자적 저작권 귀속 인정
법원은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원고 C이 디자인한 14개 캐릭터(원고 C 창작캐릭터), 원고 D이 디자인한 6개 캐릭터(원고 D 창작캐릭터)의 저작물성과 피고 게임 캐릭터와의 실질적 유사성을 인정하였습니다. 반면 분류번호 2, 4, 12, 18, 22 캐릭터는 저작물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분류번호 3, 7, 16, 21, 23, 25, 28 캐릭터는 저작물성은 인정되나 실질적 유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피고가 원고 C, D의 동의 없이 위 창작캐릭터를 사용하여 피고 게임을 출시한 행위는 저작인격권(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 저작재산권(복제권, 배포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7다63409 판결).
라. 고의의 불법행위에 기한 상계 불허
법원은 피고의 원고 회사에 대한 저작권 침해 손해배상채무가 고의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를 수동채권으로 한 상계는 민법 제496조에 의하여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민법 제496조). 피고가 보복적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 아닌 이상 상계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배척하였습니다.
마. 저작권법 제126조에 의한 손해액 재량 인정
법원은 저작권법 제125조 제1항(침해자 이익액 추정)과 제2항(통상 받을 수 있는 금액)에 의한 손해액 산정이 모두 어렵다고 보아, 저작권법 제126조에 따라 침해행위 태양, 침해 정도, 침해 기간, 원고 회사가 원고 C에게 캐릭터 1개당 약 300,000원을 지급하기로 협의한 사실 등을 종합하여 원고 C의 손해액을 3,500,000원(14개 × 250,000원), 원고 D의 손해액을 1,500,000원(6개 × 250,000원)으로 각 인정하였습니다 (저작권법 제126조).
4. 핵심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
① 외주 디자이너도 독자적 저작권자 — 게임사와 별개의 권리 주장 가능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게임사와 계약을 맺고 캐릭터를 납품한 외주 디자이너도 독자적인 저작권자로서 침해자에게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게임물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창작성이 인정되면 원저작물인 게임물과 별개로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이 됩니다 (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7다63409 판결). 게임 개발 계약 시 저작권 귀속 조항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외주 디자이너가 독자적 저작권자로 남아 추후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② 게임 저작권 침해 판단 — 아이디어와 표현의 이분법
게임의 규칙, 장르, 진행방식 등은 아이디어의 영역으로서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캐릭터, 배경, 이미지 사운드, 게임 시나리오 등 구체적인 표현 요소들의 선택·배열·유기적 조합에 창작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경우에는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19. 6. 27. 선고 2017다212095 판결).
③ 저작권법 제126조 — 손해액 산정이 어려울 때 법원의 재량
저작권 침해 사건에서 침해자의 이익액(제125조 제1항)이나 통상 받을 수 있는 금액(제125조 제2항)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 법원은 변론의 취지 및 증거조사 결과를 참작하여 상당한 손해액을 재량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저작권법 제126조). 이 사건에서는 원고 회사가 원고 C에게 캐릭터 1개당 약 300,000원을 지급하기로 협의한 사실 등이 손해액 산정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었습니다.
④ 고의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권 — 상계 불허
민법 제496조는 고의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수동채권으로 한 상계를 금지합니다 (민법 제496조). 이는 고의에 의한 불법행위의 발생을 방지하고 피해자에게 현실의 변제를 받게 하려는 취지입니다. 저작권 침해가 고의에 의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침해자가 피해자에 대한 반대채권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상계로 손해배상채무를 소멸시킬 수 없다는 점을 실무상 유의해야 합니다.
⑤ 한국저작권위원회 감정의 실무적 중요성
이 사건에서 법원은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저작물성과 실질적 유사성 여부에 대한 감정을 촉탁하였고, 그 감정 결과를 존중하여 판단의 기초로 삼았습니다. 감정방법 등이 경험칙에 반하거나 합리성이 없는 등의 현저한 잘못이 없는 한 감정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는 법리가 적용된 것입니다.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감정 신청 전략이 승패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이 판결은 게임 업계에 여러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첫째, 게임사와 계약을 맺고 캐릭터를 납품한 외주 디자이너도 독자적인 저작권자로서 침해자에게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둘째, 게임 전체를 베끼더라도 개별 캐릭터의 저작물성과 실질적 유사성을 하나하나 입증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감정이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셋째, 고의로 저작권을 침해한 경우 반대채권으로 상계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게임을 개발하거나 퍼블리싱하는 모든 관계자라면, 계약 단계에서부터 저작권 귀속 조항을 명확히 하고, 타사 게임의 캐릭터와 표현 요소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가 얼마나 심각한 법적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반드시 인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