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게임의 핵심 시스템을 그대로 베껴서 새 게임을 출시했습니다. 저작권 침해 아닌가요?” – 게임 시스템 도용 분쟁
이 질문, 게임 업계에서 일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떠올려봤을 것입니다. 누적 회원수 약 2,950만 명, 연 평균 매출액 약 6,312억 원을 기록한 대형 모바일 게임의 개발사가 경쟁사를 상대로 1조 원 규모의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패소했습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서울고등법원 2026. 3. 12. 선고 2025나206159 판결을 통해 게임 저작권 소송의 냉혹한 현실을 살펴보겠습니다.

1. 사실관계 요약 — 당사자가 직면한 위기와 문제
가. 원고의 게임과 피고들의 게임
원고 주식회사 A는 대형 모바일 MMORPG 게임 ‘E'(이하 ‘원고 게임’)를 개발·서비스하는 회사입니다. 원고 게임은 약 2년 4개월에 걸쳐 400여 명의 인력을 투입하여 개발되었고, 출시 직후 약 6개월 동안 국내 구글플레이 게임 매출 1위를 차지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피고 주식회사 B와 주식회사 C는 ‘D’라는 이름의 모바일 게임(이하 ‘피고들 게임’)을 출시·제공하였습니다. 원고는 피고들 게임이 원고 게임의 핵심 구성요소들을 그대로 모방하였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나. 원고가 주장한 침해 구성요소
원고가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의 대상으로 특정한 구성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번호 | 구성요소 |
|---|---|
| ① | 클래스 – 무기 – 스킬 각성 연계 시스템 |
| ② | 신탁 시스템 |
| ③ | BL 시스템 (소환수 시스템) |
| ④ | 아이템 강화 시스템 |
| ⑤ | 아이템 컬렉션 시스템 |
| ⑥ | PvP(Player versus Player) 시스템 |
| ⑦ | 튜토리얼 시스템 |
| ⑧ | 환경 설정 |
다. 원고가 직면한 위기
원고가 직면한 핵심 위기는 게임 시스템의 저작권 보호 가능성 문제였습니다. 게임의 규칙, 진행 방식, 시스템은 아이디어에 해당하여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고, 구체적인 표현 형식에 창작성이 인정되어야만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원고는 자신들이 독창적으로 개발했다고 믿는 시스템들이 법적으로는 보호받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2. 핵심 쟁점 Q&A
Q1. 게임 시스템도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나요?
A. 원칙적으로 게임의 규칙이나 진행 방식 자체는 아이디어에 해당하여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저작권법은 아이디어가 아닌 그 아이디어를 표현한 구체적인 표현 형식을 보호합니다. 따라서 게임 시스템이 저작권 보호를 받으려면, 그 시스템을 구현하는 구체적인 UI, 화면 구성, 연출 등의 표현에 창작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원고가 주장하는 각 구성요소들이 기존에 이미 존재하던 게임 규칙 및 진행 방식을 차용하여 조합·변형한 것에 해당한다고 보아 창작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Q2. ‘클래스 – 무기 – 스킬 각성 연계 시스템’은 왜 창작성이 부정되었나요?
A. 원고는 전투나 사냥 중에도 실시간으로 직업과 무기 및 스킬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가변적이고 비종속적인 클래스 시스템’이 원고 게임만의 독창적인 요소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와 유사한 시스템이 ‘AY'(1991년 출시), ‘AZ'(2004년 출시), ‘BA'(2005년 출시), ‘BB'(2008년 출시), ‘BC'(2009년 출시), ‘AD'(2013년 출시), ‘BD'(2013년 출시), ‘BE'(2018년 출시) 등 수많은 선행 게임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특히 ‘AD’에는 원고 게임의 클래스–무기–스킬 연계 시스템의 각 구성요소 및 그 유기적 결합과 유사한 요소들이 상당 부분 구현되어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원고는 선행 게임들이 원고 게임과 장르가 다르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게임 개발자가 참고할 수 있는 선행 게임이 반드시 같은 장르로 한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일축하였습니다.

Q3. ‘신탁 시스템’은 왜 창작성이 부정되었나요?
A. 원고는 신탁 시스템의 핵심 요소로 ① 신탁서 아이템 습득을 통한 추가 퀘스트 수행, ② 대가를 지불하고 신탁 내용을 ‘새로고침’하는 기능, ③ 신탁서의 다양한 활용 방법, ④ 랜덤한 보상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① 요소는 선행 게임 ‘BF’에 이미 도입되어 있었고, ② 퀘스트 교체·갱신 기능은 ‘H’, ‘BG(2014년경)’, ‘BH(2017년경)’에 이미 존재하였으며, ④ 랜덤 보상 요소는 ‘BI(2016년경)’, ‘BJ(2016년경)’에도 도입되어 있었다고 인정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원고 게임보다 한 달 반가량 먼저 출시된 ‘AA’에도 원고 게임의 신탁 시스템과 상당 부분 유사한 ‘의뢰 시스템’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은, 오히려 해당 구성요소가 기존에 존재하던 게임 규칙을 차용·변형한 것임을 방증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Q4. 구성요소들의 선택·배열·조합 전체로 보면 창작성이 인정되지 않나요?
A. 원고는 개별 구성요소의 창작성이 부정되더라도, 이 사건 각 구성요소의 선택·배열 및 조합 전체에 창작성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법원은 이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판단하였습니다. 각 구성요소들이 공통적·전형적인 것이거나 이미 존재하던 유사한 결합관계를 차용·변형한 것인 이상, 원고 게임의 선행 게임인 ‘X’에도 이 사건 각 구성요소의 결합과 유사한 형태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구성요소들의 조합이 원고 게임의 구체적인 표현 형식에 영향을 주어 뚜렷한 창작적 개성을 드러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습니다.
Q5. 저작권 침해가 안 된다면, 부정경쟁방지법으로는 구제받을 수 없나요?
A. 원고는 저작권 침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파)목을 예비적 근거로 주장하였습니다. (파)목은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무단 사용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합니다.
원고는 두 가지 방향으로 주장을 전개하였습니다.
첫째, 원고 게임 전체가 (파)목의 ‘성과’에 해당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게임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영역이 상당 부분 존재하므로, 원고 게임 전체를 원고의 성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둘째, 이 사건 각 구성요소와 그 선택·배열·조합이 성과에 해당한다는 주장입니다. 법원은 원고가 ‘F’과 구분되는 독창적 요소로 강조하는 ‘클래스–무기–스킬 각성 연계 시스템’과 ‘신탁 시스템’ 모두 선행 게임에 유사한 구성요소가 이미 존재하거나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게임에 도입되어 있었다는 점, 원고가 위 두 구성요소 개발에 들인 노력과 비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 위 구성요소들이 원고 게임의 고객흡인력에 주된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종합하여 성과 해당성을 부정하였습니다.
설령 성과에 해당하더라도, 피고들 게임이 원고 게임과 PvP 중 제공 정보의 내용과 양,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값 설정, AI 시스템의 구체적 구현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어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무단 사용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Q6. 이 소송에서 전략적으로 잘한 점과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이 소송의 전략적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잘한 점 ✅
① 저작권 침해와 부정경쟁행위의 병행 주장 저작권 침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부정경쟁방지법 (파)목을 예비적 근거로 함께 주장한 것은 올바른 전략이었습니다. 게임 시스템의 저작권 보호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목을 통한 구제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소송 구조 설계 측면에서 적절하였습니다.
② 구성요소의 선택·배열·조합 논리 전개 개별 구성요소의 창작성이 부정될 경우를 대비하여 구성요소들의 선택·배열·조합 전체에 창작성이 있다는 주장을 병행한 것은 법리적으로 타당한 접근이었습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게임저작물의 창작성을 구성요소들의 유기적 조합 차원에서 인정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아쉬운 점 ❌
① 선행 게임에 대한 사전 조사 부족 이 소송의 가장 큰 패인은 원고가 독창적이라고 주장한 구성요소들 대부분에 대해 피고 측이 수십 개의 선행 게임을 증거로 제출하였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소송 제기 전에 자신의 게임 구성요소와 유사한 선행 게임이 존재하는지를 철저히 조사하고, 선행 게임과의 차별성을 구체적으로 특정하는 작업이 선행되었어야 했습니다.
② ‘F’의 창작성에 관한 주장·증명 부재 원고는 원고 게임의 여러 구성요소가 전작 ‘F’에서 승계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F’ 출시 당시를 기준으로 ‘F’의 각 구성요소의 창작성이나 성과 해당성에 관하여 구체적인 주장·증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 점을 명시적으로 지적하였습니다. ‘F’의 창작성을 먼저 확립하고 원고 게임이 이를 발전시킨 것임을 체계적으로 입증하는 전략이 필요하였습니다.
③ 성과 특정의 불완전성 법원은 원고가 ‘신탁 시스템’을 성과로 주장하면서도 신탁 시스템의 중요한 보상 요소인 ‘L’에 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성과로 주장하는 구성요소의 내용을 완전하게 특정하지 못한 것이 성과 해당성 판단에 불리하게 작용하였습니다.

마치며
“그렇다면 게임 시스템은 아무리 베껴도 괜찮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판결은 게임 시스템 자체가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선행 게임에 이미 존재하는 요소를 조합·변형한 것만으로는 창작성이나 성과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진정으로 새로운 게임 경험을 창출하는 독창적인 시스템이라면, 그리고 그 독창성을 소송에서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면, 법적 보호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게임 개발 단계부터 자신의 창작 과정과 선행 게임과의 차별성을 꼼꼼히 기록해 두는 것, 그것이 미래의 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