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면서 회사 서버의 파일을 몰래 개인 서버로 빼돌렸다면?” 게임 업계에서 핵심 개발자의 이직과 기술 유출은 오랜 숙제였습니다. -게임 정보 영업비밀 유출 분쟁
그런데 단순히 ‘아이디어를 기억해서 나간 것’이 아니라, 자동 전송 스크립트까지 심어두고 소스코드를 통째로 빼간 뒤 경쟁 게임을 출시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5년 2월, 이 질문에 85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이라는 묵직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1. 사실관계 요약
가. 등장인물
- 원고 주식회사 A: 게임 소프트웨어 제작·배포업을 영위하는 회사로, ‘F 게임’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 피고 C: 원고 소속으로 F 프로젝트의 디렉터 업무를 수행하다가 징계해고된 인물입니다.
- 피고 D: F 프로젝트의 파트장 업무를 수행하다가 퇴직한 인물입니다.
- 피고 주식회사 B: 피고 C, D가 피고 D를 대표자로 하여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공급을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입니다.
나. 사건의 경위
원고는 2020년 8월경 F 프로젝트에 착수하였고, 2021년 11월 얼리 액세스 방식으로 출시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고 C는 2021년 4월경부터 원고 서버에 빌드 파일이 생성될 때마다 FTP(File Transfer Protocol)를 통해 해당 파일이 자신의 개인 서버로 자동 전송되도록 설정하는 방법으로 F 프로젝트 관련 소스코드 등을 조직적으로 유출하였습니다.
피고 C, D 등은 2021년 9월 3일 E 게임 개발에 착수하였고, 2023년 8월 8일 얼리 액세스 방식으로 E 게임을 출시하였습니다. 피고 회사는 2024년 6월부터 복수의 플랫폼 스토어에서 E 게임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2. 쟁점 정리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 쟁점 | 내용 |
|---|---|
| ① F 게임 파일의 영업비밀 해당 여부 | 유출된 소스코드·빌드파일 등이 영업비밀로 특정되는가? |
| ② F 게임 정보의 영업비밀 해당 여부 | 게임의 구성요소·기획 정보가 영업비밀 3요건을 충족하는가? |
| ③ 영업비밀 보호기간 | 퇴직 후 얼마나 오랫동안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는가? |
| ④ 부정경쟁행위 해당 여부 | E 게임 출시가 부정경쟁방지법 (파)목의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하는가? |
| ⑤ 손해배상액 산정 | 영업비밀 침해로 인한 손해액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 |

3. 판시 내용
가. F 게임 파일 — 영업비밀 특정 불충분
법원은 유출된 F 파일에 대해서는 영업비밀 해당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원고가 파일명과 분류 정보만 제출하였을 뿐, 개별 파일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아 다른 정보와 구별될 수 있고 어떤 내용에 관한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단,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25. 12. 4. 선고 2025나206557)에서는 1심과 달리 F 게임 파일 자체도 폭넓게 영업비밀로 인정하였습니다.
나. F 게임 정보 — 영업비밀 3요건 모두 충족
법원은 F 게임의 구성요소 및 그 조합에 관한 정보(이하 ‘F 정보’)에 대해서는 영업비밀의 3요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① 비밀관리성: 게임 업계는 국내외 경쟁이 매우 치열하고 신규 게임의 라이프 사이클이 점차 짧아지는 추세여서 신규 게임 개발 프로젝트의 보안 유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원고의 보안지침 및 복무지침은 소속 사원들에게 비밀유지의무를 부여하고 있어 비밀관리성이 인정됩니다.
② 비공지성 및 경제적 유용성: F 정보에 포함된 게임 구성요소의 구체적 내용 및 그 조합은 선행 게임에서 확인되지 않는 내용으로 판단되며, 원고는 F 프로젝트 진행에 상당한 규모의 자금과 인력을 투여하였습니다.
③ 영업비밀 보호기간: 법원은 F 정보의 영업비밀 보호기간을 피고 C, D가 원고를 퇴직한 때로부터 약 2년으로 보았습니다. 변론종결일 현재 그 보호기간이 이미 경과하였으므로, 영업비밀 침해금지 및 침해예방 청구권은 모두 소멸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항소심에서는 보호기간을 2년 6개월로 보았습니다.
다. 영업비밀 침해행위 인정
법원은 피고 C, D가 F 정보를 이용하여 E 게임을 개발·출시한 행위는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3호 (라)목의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하고, 피고 회사는 (가)목의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라. 부정경쟁행위 — 불인정
원고는 E 게임 출시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파)목(타인의 상당한 투자·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의 무단 사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F 게임 개발 결과물 일체가 원고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보아 이 부분 주장을 배척하였습니다.
마. 손해배상액 산정
법원은 피고들이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원고에게 영업비밀 침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14조의2 제5항에 따라 손해액을 산정한 결과, 원고의 손해액은 85억 원을 초과함이 명백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 항소심에서는 영업비밀의 기여도를 15%로 고려하여 57억 원 상당으로 감액하였습니다.

4. 핵심 포인트
가. 영업비밀은 ‘내용’까지 특정해야 한다
1심에서 F 파일이 영업비밀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파일명과 분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준비할 때는 해당 정보가 무엇인지, 다른 정보와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구체적으로 특정하는 것이 소송 전략의 출발점입니다.
나. 게임 기획 정보도 영업비밀이 될 수 있다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완성된 코드나 파일이 아니더라도, 게임의 구성요소와 그 조합에 관한 기획 정보 자체가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입니다. 선행 게임에서 확인되지 않는 독자적인 구성요소의 조합이라면, 그것이 아직 출시되지 않은 게임의 기획 단계 정보라 하더라도 영업비밀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다. 퇴직 후에도 영업비밀 보호기간이 있다
법원은 영업비밀 보호기간을 퇴직 후 약 2년(항소심 2년 6개월)으로 한정하였습니다. 이는 영업비밀 보호와 직원의 직업 선택의 자유 사이의 균형을 고려한 것입니다. 실무적으로는 퇴직 후 경쟁사 설립·이직 시점과 영업비밀 보호기간의 관계를 면밀히 검토해야 하며, 보호기간 경과 후에는 침해금지 청구가 아닌 손해배상 청구만 가능하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라. 손해배상액 산정에서 ‘기여도’가 핵심 변수
1심은 85억 원 이상의 손해를 인정하였으나, 항소심은 영업비밀의 기여도를 15%로 평가하여 57억 원으로 감액하였습니다. 이는 E 게임의 성공이 유출된 영업비밀만의 결과가 아니라, 피고들의 독자적인 개발 노력 등 다른 요인도 기여하였다는 점을 반영한 것입니다. 영업비밀 침해 손해배상 소송에서 기여도 입증은 원고와 피고 모두에게 핵심 전략 포인트가 됩니다.
마치며
이 판결은 게임 업계의 기술 유출 분쟁에서 법원이 어떤 기준으로 영업비밀을 판단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FTP 자동 전송 스크립트를 심어두고 소스코드를 빼간 행위, 퇴직 직후 경쟁 게임 개발에 착수한 정황, 그리고 수십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 이 모든 것이 게임 회사의 영업비밀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게임 개발사라면 지금 당장 점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의 보안지침이 실질적인 비밀관리성을 갖추고 있는지, 핵심 개발 정보가 충분히 특정되어 관리되고 있는지, 그리고 퇴직자와의 비밀유지약정이 제대로 체결되어 있는지입니다. 영업비밀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관리되어야 비로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